♣ 임 향한 그리움 달랬을, 유재공 종가의 밥상
서해를 거슬러 웅어 떼가 돌아오는 한강은 갖은 산물을 키워내었다. 그 산물이 그의 손에서 생명의 밥상으로 차려지고 있다. 배천조씨 휴재공 종가 김현숙 종부가 자연을 빌어 차린 손님맞이 밥상이다.
넉넉한 이 밥상을 받고, 한양을 떠나 강화로 향하던 늙은 유배객은 뒤돌아 임금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기도 했을 것이다. 배천조씨 가문의 손님밥상은 황해도 배천의 종가 내림음식과 300여 년 전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한 김포의 맛과 향이 만나 빚어낸 것이다.
‘주방에 가장 중요한 양념은 식초와 청’이라는 김현숙 종부의 단언처럼, 손님맞이 상차림은 그가 손수 담근 식초와 청을 기본으로한다.
‘토종치즈’라고 일컫는 두부장과 두부비빔장, 김포순무로 맛을 낸 순무김치와 순무청고추씨김치, 발효음식의 상징 무채장아찌와 돼지감자장아찌, 무릇으로 만든 무릇곰, 무릇장아찌를 비롯해, 서대껍질묵, 돼지고기수육과 안성맞춤으로 어울리는 생태식해로 차려낸다.
① 순무청고추씨김치
절인 순무청을 쪽파와 함께 씻어 물기를 뺀다. 순무청에 다진 마늘, 생강, 고춧가루와 고추씨, 갖은 양념을 넣어 버무린다.
② 서대껍질묵
말린 서대를 물에 30분쯤 불린 다음 껍질을 벗겨 건져놓는다. 물과 생강을 넣어 끓인 뒤, 서대껍질을 넣고 은근한 보통 불에서 조린다. 조린 서대를 틀에 부어 굳힌 다음, 서대묵을 잘 썰어 접시에 담고 계란지단과 석이버섯, 홍고추 같은 고명을 올린다.
③ 생태식해
생태식해는 돼지고기수육, 새우젓과 함께 홍어삼합처럼 상에 올렸다. 때에 따라 무채장아찌, 김치를 같이 곁들이기도 했다.
생태를 곱게 씻어 채반에 받쳐 물기를 뺀다. 무를 곱게 채 썰어 절이고, 쪽파, 미나리는 적당한 크기로 썬 다음 준비된 갖은 양념재료로 버무린다. 생태의 살부분에 양념을 꼭꼭 채운 뒤 굵은 실로 묶어, 항아리에 담아서 땅에 묻어 발효시킨다.
④ 두부장과 두부비빔장
겨울철 부족해지기 쉬운 단백질을 보충하는 배천조씨 종가 내림음식이다. 밥에 비벼 먹거나 찌개를 만들어 먹어도 좋다. 두부를 작은 그릇에 넣고 메주가루, 천일염과 함께 주물러 버무린다. 두부비빔장은 고춧가루를 함께 넣어 버무린다. 버무린 것을 항아리에 꼭꼭 눌러 담고, 보름 정도 그늘에서 숙성시킨 뒤 보관한다.
⑤ 무채장아찌 ⑥ 순무김치
무채장아찌는 무를 씻어 껍질을 벗기고 굵게 채 썬다. 김장을 담글 때, 배추 안에 버무려 넣는 소처럼 만든다. 거기에 꼴뚜기와 미나리, 쪽파를 넣는 것이 일반 장아찌와 다르다. 맛내기 육수를 부어 만드는 일반 장아찌와는 달리 휴재공 가문에서는 김치에 가깝다.
제사를 마치고 탕국을 나눌 때, 오늘날 다진양념(다대기)처럼 무채장아찌 한 숟가락을 넣어 휘휘 저어 드셨다. 순무잎을 소금에 절여 씻은 다음, 항아리에 순무와 순무잎을 번갈아가며 넣는다.
사과와 배를 갈아 거른 즙을 항아리에 넣는다. 소금, 설탕, 새우젓국물을 넣고 간을 한다. 삼베보자기에 싼 통마늘, 생강, 파뿌리, 양파, 청각을 항아리에 넣는다. 2~3일 발효시킨다.
⑦ 무릇곰, 무릇장아찌
봄철에 혈액순환에 도움을 주는 무릇을 4~5일을 가마솥에 고아, 춘궁기 구황식품으로 이용했고, 이웃의 살림살이를 살폈다. 무릇을 씻어 말려서 속껍질을 벗긴 후, 뿌리 부분을 가마솥에 삶거나 물에 담가 우려낸 쑥과 둥글레, 질경이, 민들레를 차례로 넣어 삶기도 한다.
무릇잎을 찹쌀가루와 조청을 넣고 물과 엿기름을 충분히 잠기도록 붓는다. 은근한 보통 불에 조린 것이 무릇곰이다. 먹을 때 콩가루를 뿌려 먹는다. 무릇장아찌는 봄에 새순을 따 끓는 물에 데쳐 물기를 말린 후 식초와 고추장에 버무려 숙성시킨 것이다.
♣ 종가의 문턱을 사뿐 넘어 대한민국 발효음식 전도사 최영간 종부
“식사를 하고 삼십 분 정도 지나 목이 마르거나 더부룩하면 식재료가 문제라고 보면 됩니다.”그는 서울 남대문초등학교를 나온 서울 토박이다. 진명여고 출신 시어머니는 인간극장 촬영 제의를‘그저 싫다’한마디로 거절하신 분이다.
그 슬하, 1남 6녀 가운데 외동 아들과 혼인한다. 만만치 않은 시집생활에도 20년 가까이 꿋꿋하게 이어가던 편집자 생활을 그만둔 것은, 남편의 건강 때문이었다. 그리고‘배천조씨 종부, 한식당 개업’이라는 일대 사건을 일으킨다.
가문 일각에서는‘종택을 식당으로 만들었으니, 이제 땅 팔아 먹을 일만 남았구나’탄식하기도 했다. 그리고 10여 년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그는 종가음식의 귀한 흥취를 새로운 방식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다양한 음식 강좌를 열어 세상에 종가음식의 면모를 알리는 데 분주했다.
경기 김포시 고촌면 풍곡리 306번지‘고가 풍경’이 그 진원지다. 종택을 현대식으로 조금 고쳐 한정식당으로 꾸민 곳. 직접 담근 초와 청을 기본으로 인공조미료를 사용하지 않아 깔끔한 종가의 전통음식 상차림을 맛볼 수 있다.
♣ 배천조씨 가문 이야기
배천조씨 시조 공화공 지린은 송나라 태조의 손자로 난을 피해 고려 황해도에 정착해, 고려 목종 때 좌복야ㆍ참지정사를 지낸 분이다. 고경명, 김천일, 곽재우와 함께 임진(壬辰) 4충신으로 꼽히는 중봉(重峰) 조헌(趙憲) 또한 배천조씨로, 임진왜란 때 금산에서 7백여 의사와 함께 왜적을 맞아 싸우다 순절한 의병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