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0년 씨간장, 종가의 위용을 떠받치고
350년 내력을 가진 종가의 씨간장이 아흔아홉 칸 대가의 위용을 떠받치고 있다. 무릇 큰 집안의 이야기는 묵은 장맛부터다. 선영홍 종가에 맛의 바탕이 스며 있다. 종부는 귀한 손님이 찾으면 주안상부터 차려내었다.
음식을 놓을 때는 맛있는 것을 더 가까이 놓아 젓가락이 자주 가도록 했다. 손님상은 외상이나 겸상을 하는데, 술은 왼쪽에 놓고 대접한다. 외상으로 손님을 대접할 때는 마주 보지 않고 옆에 앉았다.
일제강점기 때 선친이 운영한 무료교육기관 관선정의 뜻을 이어, 종손 내외는 고시원 ‘관선정’을 열었다. 용문(龍門)에 오르기[登] 위해 부단히 공부하던 이들이 시험에 합격해 다시 찾는다. 금의환향이다. 늦은 책거리를 겸해 술상을 본다.
아름다운 집이 있는 골짜기, 아당골이라 불리는 보성 선씨 선영홍공 종가에는 350년 된 씨간장이 전해온다. 햇간장에 씨간장을 더해 한결같은 장맛을 이어오고 있다. 발효균을 살리기 위해서 간장을 불에 달이는 과정을 생략하고, 옻나무 숯 등으로 잡균을 막는다.
전통에 보은의 특산 대추를 넣어 장맛을 더욱 새롭게 하고 있다. 종부는 보은 특산인 대추를 넣어 고추장을 만든다. 대추를 푹 고아서 앙금을 내려서 고추장을 만들 때 섞어 만든다.
♣ 등용을 축하하는 책거리상차림
청포묵, 전, 육회, 육포와 편강, 나박김치, 파강회, 쇠고기완자탕에 취하지 않을 만큼 가양주를 곁들인다.
▪ 청포묵
녹두로 만든 청포묵은 손님맞이에 빠지지 않는 음식이다. 충청도는 도토리묵이 유명하지만, 반가에서는 청포묵을 먹었다. 청포묵을 채 썰어 끓는 물에 한 번 데쳐서 만들어야 탱탱하다. 데친 청포묵에 참기름과 간장, 식초로 간한 다음, 볶은 쇠고기와 황백지단, 김을 고명으로 얹는다. 궁에서는 탕평채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 쇠고기완자탕
새우전을 부치고 남은 껍질과 머리로 육수를 내서 무를 넣고, 버섯, 쇠고기완자를 넣어 끓인 탕이다. 쇠고기완자는 으깬 두부를 섞어서 밑간하고, 완자를 빚어서 밀가루를 살짝 입혔다. 그래야 부스러지지 않는다. 끓일 때도 국물이 팔팔 끓을 때 하나씩 넣어야 한다.
▪ 새우전
손질한 대하를 씹는 맛이 있도록 어슷하게 썰어서 양파, 파 흰 부분, 버섯, 쇠고기 등을 넣고 간을 한 다음 밀가루, 달걀을 넣어 반죽해서 한입 크기로 지져낸 것이다.
▪ 파강회
달걀노른자 지단과 데친 갑오징어, 당근을 한입 크기로 납작하게 썰어서 데친 쪽파로 묶은 것이다. 갑오징어 대신 오징어나 쇠고기편육을 쓰기도 한다. 강회를 접시에 돌려 담고 초고추장을 함께 낸다. 초고추장에는 대추고추장을 쓴다.
▪ 육회
육회는 쇠고기를 채 썰어 대추를 넣어 만든 간장, 설탕, 참기름 등 양념을 넣고 무친다. 채 썬 배를 접시에 깔고 육회를 가운데 담는다. 마늘을 편으로 썰어서 고명으로 얹는다.
♣ ‘고시원 관선정’으로 선친의 교육 의지를 되살리다 김정옥 종부
김정옥(62세) 종부는 친정이 전라도 광주다. 시할머님이 음식 솜씨가 좋으셨다. 이 댁 음식은 종가의 원 고향 전라도의 맛과 시할머님의 고향인 서울의 멋이 합해져 깔끔하고 맛깔스럽다. 거기에 종부의 친정 손맛이 더해져, 이 집 음식 맛을 보려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줄을 잇는다.
종가음식, 종가생활을 체험하기 위해 찾아오기로 한 사람들의 연락처며 일정이 달력에 빼곡하다. 그는 20여 년 전부터 고시원 관선정을 운영했다. 돈 되는 일도 아니고, 하루에 수십 명씩 밥 차려주는 일이 녹록지 않다.
그래도 선조의 뜻을 이어간다는 자랑스러운 마음이 더 크다. 맨 처음 고시원을 시작할 때 60명 가까이였다. 운전면허 하나 못 따고 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더 기억에 남는다.
아직 대법관까지는 나오지 않았지만 법관, 변호사, 검사, 경찰공무원까지 다양하다. 지금까지 천 명 가까운 젊은이들이 1년 반에서 길게는 5~6년을 관선정의 아침상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 아침 그가 다시, 시험 준비에 지친 청년수험생들의 든든한 밥상이 된다.
♣ 보성 선씨 선병국 고가와 관선정
보은군 장안면 개안리 153번지, 속리산에서 흘러나온 물줄기로 생긴 삼각주에 선병국 고가가 자리 잡고 있다. 섬처럼 물에 뜬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지세의 명당이라고 한다. 보성 선씨 선영홍 가문은 고려시대 대제학을 지낸 선윤지를 시조로 한다.
100여 년 전에 18대손인 영홍 공이 고향인 전남 고흥군 금산면에서 명당을 찾아 보은으로 이사했다. 사랑채, 안채, 사당채로 나뉜 집은 당대 제일의 목수들을 데려다 지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개량된 한옥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가치 있는 집이다.
선영홍 공은 고향인 전남 고흥에서 대흥사라는 서숙을 만들어 인재를 양성했다. 소작인들에게도 선정을 베풀어, 전남 고흥군의 두원, 점암, 남양, 남면 등 네 개면 소작인들이 뜻을 모아 세운 선공영홍시혜비(宣公永鴻施惠碑)가 전한다.
아들인 남헌 선정훈 선생도 뜻을 이어 관선정이라는 무료교육기관을 열어 일제의 탄압 속에서도 후학을 양성했다. 당대 최고의 재력가로 지역 주민들에게도 선정을 베풀었으니, 이런 행적은 관선정기적비(觀善停紀蹟碑) 등에 남아있다.
‘선을 베푸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는 뜻의 위선최락, 선대의 뜻을 이어서 종부가 20여 년 전부터 고시원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