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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15. 베풂, 마음으로 채우는 내림상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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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남파고택의 어린이 외상과 손님상 「밀양 박씨 남파 박재규 종가」

♣ 종손의 너른 품과 종부의 손맛이 빚어내는

1년 내내 이어지는 제사에 밀양 박씨 나주 종가는 예로부터 손님이 많았다. 대대로 부농이라 이 댁의 일을 해주면 배불리 먹는다 하여 몰려들곤 하던 이웃도 그러하거니와 사학자 함석헌 선생 같은 민족지도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나주문화원장과 도의원을 지낸 종손의 너른 인품에 이 댁의 정성 어린 손맛이 담긴 손님상이 더해지니 손님의 발길은 오늘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깊고 깔끔한 간장 맛, 손님상과 외상 「밀양 박씨 남파 박재규 종가」

밀양 박씨 나주 종가의 간장은 깊고 깔끔한 맛으로 유명한데, 대대로 이어져 온 씨간장을 넣고 만들며 메주를 맑게 띄우고 달일 때 갱엿을 넣는다는 것이 종부의 설명이다. 음식을 먹기 전에 숟가락으로 간장을 살짝 찍어 맛보도록 권한다.

위나 식도의 긴장을 풀고 침이 잘 나오게 해서 소화가 잘되도록 하기 위함이다. 손님상은 홍어찜, 낙지꾸리, 육전, 고추전, 방앗잎전, 토하젓 등으로 푸짐하게 차려냈다. 남파 가문에서는 집안의 아이가 자라 만 다섯 살이 되면 외상을 차려주었다. 이는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하고 대접해준다는 표현이었다.

남파고택의 어린이 외상과 손님상 「밀양 박씨 남파 박재규 종가」

♣ 깊고 깔끔한 간장 맛, 손님상과 외상

종손도 어렸을 때 솜씨 좋은 장인이 만든 나주반에 고기 찬이 중심을 이루는 외상을 받았다. 잡곡밥과 곰국, 김부각, 가시 바른 조기구이, 떡갈비, 장조림, 숙주나물, 호박나물, 반동치미가 오른다. 이 댁 종손이 받았던 소반과 외상 상차림이다.

▪ 반동치미

종가음식 반동치미

모든 재료가 동치미의 반이라서 붙인 이름이다. 설 전에 먹는다. 중간 크기의 무와 배추를 골라 세로로 십자로 자른 다음 소금을 뿌려 한나절 절인다. 그 안에 생밤채, 마늘채, 채 썬 당근, 파, 쪽파, 미나리, 굴, 조기살, 무 등과 갈아놓은 새우젓을 넣고, 고춧가루에 버무려 항아리에 쟁여둔다.

사과, 배 조각, 청각을 사이사이에 끼워둔다. 쟁여둔 동치미김치 위를 자른 납작 무로 막고 맨 위에 우거지를 덮는다. 생수에 소금, 새우젓국물을 끓여 섞어 두었다가, 3일 후에 동치미 위에 부어준다. 슴슴하면서도 깊은 맛이 개운하다.

남파고택 손님상 「밀양 박씨 남파 박재규 종가」

▪ 낙지꾸리

종가음식 낙지꾸리

낙지꾸리는 낙지호롱구이라고도 한다. 손질한 낙지머리를 볏짚에 꿰고 다리를 꼬아 볏짚에 만 다음, 간장에 파, 마늘, 깨소금, 참기름을 넣은 양념을 발라가며 굽는다.

▪ 나주집장

종가음식 나주집장

보리밥을 지어 메줏가루를 넣고 소금 간 해 잘 버무린 뒤 고춧가루, 고춧잎, 고추를 섞어 따뜻한 곳에서 숙성시킨다. 감칠맛이 일품인 찬이다.

▪ 홍어찜

종가음식 홍어찜

나주 영산포홍어는 유명하다. 조선 후기의 학자 정약전의 『자산어보』에서 “나주인들은 삭힌 홍어를 즐겨 먹는 데, 탁주 안주로 곁들여 먹는다”고 기록되어 있을 만큼 오래된 발효음식으로 전통과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홍어에 간장, 깨, 파, 참기름 양념을 발라 찐다.

▪ 깨송이부각, 김부각

종가음식 깨송이부각, 김부각

들깨송이에 설탕, 참기름, 소금을 넣은 찹쌀풀을 살짝 입혀 튀겨낸다.

♣ 배움의 뜻 키워주던 손길로 종가를 이끌다 강정숙 종부

「밀양 박씨 남파 박재규 종가」강정숙 종부

강정숙(64세) 종부는 해남에서 4남 1녀 외동딸로 자랐다. 대학을 졸업한 뒤 한별고등공민학교 설립자 박준삼 선생의 뜻에 감동하여 대도시의 삶을 포기하고 이 학교 교사가 된다. 당시 학비가 없어 학업을 포기했던 학생들은 학비 걱정 없는 한별고등공민학교에서 꿋꿋이 배움의 꿈을 키웠다.

존경하던 설립자는 자신의 손자를 인생의 반려자로 소개해주었다. 4년 전 84세의 일기로 작고하신 시어머니 임묘숙 노종부는 아이를 가져 입덧이 심한 종부를 위해 남몰래 떡갈비를 해주셨다. 다른 음식은 냄새만 맡아도 속이 거북했는데, 그 떡갈비만은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뱃속에서부터 떡갈비 맛을 본 두 아들 역시 떡갈비를 아주 좋아한다. 조부님의 손길이 녹아있는 고택을 관리하는 일은 이젠 종부의 몫이다. 외국에서 방문한 손님들이 고택의 아름다움을 극찬할 때는 마치 애국자가 된 듯 가슴이 뿌듯하다.

또 고택의 건축양식을 공부하러 오는 학생들을 만날 때는 보존 관리를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하룻밤 묵으며 머리를 식히러 온 손님들을 만나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가 싶어 힘든 것도 잊는다고 한다.

♣ 독립 정신이 살아 숨 쉬는 민족사학의 산실

「밀양 박씨 남파 박재규 종가」종가

조선 인종 때 밀양 박씨 청재공파의 나주공 박부동의 고조부께서 나주의 지방관헌을 맡으면서 경기도에서 나주로 옮겨 자리를 잡았다. 박부동의 조부 청재공 박심문 선생은 조선 초 세조 때의 문신으로 이름이 높았다.

이른바 남파고택(南坡古宅)으로 유명한 이 고택은 1884년(고종21년)에 지어진 고택으로, 중요민속문화재 제263호로 등재되어 있다.

남파 박재규 선생이 초당채를 짓고 살림을 시작한 이후 한 채씩 늘린 안채, 바깥 사랑채, 아래채, 헛간채, 바깥행랑채, 문간채 등 총 7동은 호남지방의 대표적인 상류계층의 가옥을 보여준다. 박준삼 선생은 열렬한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였다.

스물한 살 때 3·1운동에 앞장섰다가 옥살이를 했으며, 신간회 나주지회 상무위원,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며 나주협동상회를 만들어 일본상인들의 상권과 경쟁하면서 독립운동을 펼쳤다. 한편, 가난한 아이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개인재산을 털어 1960년 나주 한별고등공민학교의 문을 열었다.

1982년 국가 정책으로 영세민 교육비가 지원되면서 한별고등공민학교는 문을 닫았지만, 폐교한 그 자리에 종부는 한별유치원을 설립하여 그 맥을 지금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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