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성 손씨 종가댁이 밀양향교와 등허리를 잇대고 있다. 과객으로 넘쳐 열두 대문 문턱이 닳을 지경이었다. 종가의 품은 너르고 깊어, 길손이 끊이지 않는 법. 종가 또한 중요한 손님이나 사돈이 오시거든 겸상을 하지 않고, 독상을 내어 여유와 기품을 지켰다.
♣ 늘 한결같이 정성을 다하는 손님맞이 외상
밀성 손씨 종가댁이 밀양향교와 등허리를 잇대고 있다. 과객으로 넘쳐 열두 대문 문턱이 닳을 지경이었다. 종가의 품은 너르고 깊어, 길손이 끊이지 않는 법. 종가 또한 중요한 손님이나 사돈이 오시거든 겸상을 하지 않고, 독상을 내어 여유와 기품을 지켰다.
손님맞이 외상은 칠첩이 기본이었다. 여기에 특별한 음식이 한두 가지 더해지면 구첩이 된다. 때에 따라 오이선이나 육만두, 삼색전으로 찬을 달리한다. 조반을 올릴 때는 속을 부드럽게 하도록 죽을 먼저 올리고 죽을 먹으면 밥과 국을 올렸다.
죽은 계절에 따라 호박죽, 검은깨, 죽, 잣죽 다양하게 한다. 간장, 초고추장, 초간장, 물김치를 기본찬으로 준비하고, 자반은 빠지지 않고 꼭 올린다. 민어나 조기, 농어를 쓰고, 가을에는 전어를 구워서 올렸다.
가을이면 추어탕을 별미로 올리고, 계절마다 굴, 조기, 민어 같은 생선을 넣은 어김치를 담가 먹었다. 이 댁에는 교동방문주가 전한다. 방문주는 누룩과 찹쌀로만 빚는 술이다. 100일 정도 숙성시켜야 제맛을 낸다. 색깔이 황금색이라 황금주라고도 한다.
♣ 귀한 손님 대접하는 손님맞이 상차림
칠첩 외상은 문어수란챗국, 황태보푸리, 약장, 전복초, 갈비찜, 자반, 돔장 등 칠첩과 검은깨죽, 밥, 쇠고기무국으로 차린다. 죽을 올릴 때는 죽을 먹는 작은 숟가락을 따로 준비한다.
▪ 문어수란챗국
챗국은 시원하게 먹는 오이챗국, 미역챗국 같은 것을 말한다. 문어수란챗국은 문어와 수란이 들어가는, 여름에 먹는 음식이다. 팔팔 끓는 물에 식초를 몇 방울 넣고 달걀을 넣어서 흰자가 익으면, 수란국자로 노른자가 터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수란을 뜬다.
차가운 물에 담가서 식힌다. 문어는 삶아서 얇게 썰고, 실파와 미나리도 썰어 넣은 후 설탕, 식초, 간장, 깨소금, 참기름, 간 잣을 넣고 섞어서 30분에서 1시간 정도 재워둔다. 간이 배면 냉수를 부어 간을 맞춘다. 석이버섯, 실고추, 쇠고기 다져서 볶은 것을 고명으로 얹고, 잣 국물을 둘레에 한 번 더 끼얹는다.
▪ 전복초
예부터 전복은 귀한 음식으로 어른이나 귀한 손님상에만 올라가던 것이다. 참기름을 발라뒀다가 소금 간을 해서 찐다. 전복을 쪄낸 물에 마늘, 파를 넣어 양념장을 만들고, 그 양념장을 전복에 발라서 한 번 더 찐다. 다 되면 잣가루를 뿌린다.
▪ 약장
명절이나 손님이 오셨을 때 소를 잡아서 하던 특별한 음식이다. 쇠고기를 갈아서 불고기 양념을 하고 고기 1킬로그램에 녹말 한 숟가락 정도 넣어 주물러서 반죽을 만든다. 저녁에 하면 아침까지 뒀다가 프라이팬에 아주 얇게 펴서 굽는다. 다 되면 한 장 깔고 간장 양념 바르고, 한 켜 한 켜 놓고 조린다.
▪ 황태보푸리
황태를 갈아서 손으로 보슬보슬 비벼서 보푸리를 만든다. 참기름, 간장, 설탕, 깨소금을 넣고 주물러서 잣가루를 솔솔 뿌려낸다.
▪ 돔장
썰어 놓은 무를 깔고, 그 위에 도미를 놓고 양념해서 조린다. 도미를 손질할 때 소금으로 밑간해야 안 부서진다. 대가리가 물렁거리도록 푹 조려야 맛이 나기 때문이다. 자반과 함께 상에 자주 오르는 음식이다.
♣ 아직도 문어수란챗국만은 그의 손이 닿아야 한다 강정희 종부
11대 종부 강정희 할머니는 올해 여든아홉이다. 경북 봉화 춘양의 진주 강씨 집안에서 시집왔다. 종부의 친정어머니가 음식솜씨가 좋으셨다. 약장, 문어수란챗국, 북어보푸리, 전골은 친정어머니께 배운 솜씨다. 18살에 초례를 치르고, 19살에 시집왔다.
고개도 못 들고 신행 왔던 날 밝혔던 화톳불이 활활 타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한다. 혼례를 마치고 유학길에 올라 일본으로 떠난 남편은 유학 도중 학병으로 전쟁에 끌려간다. 그가 돌아올 때까지 시조모님, 시어머님, 시누이 셋, 시동생 셋과 함께 살게 된다.
시조부님이 자신의 손을 거친 약장, 자반, 전복을 참 좋아하셨다. 시조모님, 시조부님의 사랑을 위안 삼아 지낸 세월이었다. 지난 1988년 시어머니가 88세에 돌아가시고 나서야 자연스레 곳간 열쇠를 이어받았다.
지금은 둘째 아들과 며느리가 손맛을 이어받아 ‘열두대문’이라는 이름으로 종가의 음식 맛을 전하고 있다. 그래도 문어수란챗국만은 종부의 손이 가야 제맛이 난다. 그는 아직도 집안의 귀한 손님을 맞는 마음으로 음식을 차린다.
♣ 밀성 손씨 만석꾼집과 열두대문
경남 밀양시 교동은 밀성 손씨 집성촌으로 수백 년을 이어온 한옥마을이다. 그 안에 99칸 밀성 손씨 열두대문 고택이 있다. 조선 숙종 때 효자로 이름이 높았던 인묵재 손성증(1700~1756) 선생부터 12대가 살아온 종가다. 종택의 안채인 정침은 손성증 선생이 지었다고 전해진다.
17세기 조선 숙종 때 지었다고 하니 어림잡아도 300년이 넘었다. 경남문화재자료 제161호로 지정되었다. 정침과 함께 1902년 지은 사랑채가 있다. 손성증 선생의 9대손이자 현 종손의 증조부인 손영돈(孫永暾) 어른이 지은 집이다.
일본, 중국, 미국, 러시아, 한국 5개국 기술자를 불러 지었다는데 한옥과 양옥을 결합한 구조가 독특하다. 기역자 구조로 누마루는 붉은 벽돌로 받치고, 화강석 누대 위에 건물을 지었다. 외벽을 유리문으로 두르고, 화장실을 내부로 들여 기능성을 높였다.
사랑채에 붙은 ‘몽맹헌’이란 현판은 도산서원 원장을 지낸 5대조 할아버지께서 쓰신 글이다. 1935년 화재로 정침과 사랑채를 제외한 모든 건물이 불에 탔으나, 그 후 재건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솟을대문부터 대문이 12개가 넘어 열두대문집으로도 불렸는데, 지금은 9개가 있다. 종택은 만석꾼집으로도 불린다. 대지가 천평이 넘는 종택은 만석꾼 살림을 고스란히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