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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11. 섬김, 조상의 얼을 기리는 제사상차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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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실학 정신이 깃든 불천위 제사상 「반남 박씨 서계 박세당 종가」

서계 선생은 늘 앞에 나서지 말고 근신하라고 당부했다. 자신이 죽은 후 상례도 간소화해 무늬가 있는 비단을 쓰지 말고, 3년 상식(上食)은 예가 아니므로 졸곡(삼우제를 지낸 뒤의 제사) 후에는 그칠 것을 강조했다.

♣ 나서지 말고 근신하라, 소박하고 정갈한 젯상

서계 선생의 실학 정신은 상차림에도 이어진다. 서계 선생은 만년에 남긴 『계자손문(戒子孫文)』에서 늘 앞에 나서지 말고 근신하라고 당부했다.

서계 선생 불천위 제사상차림 「반남 박씨 서계 박세당 종가」

또 자신이 죽은 후 상례도 간소화해 무늬가 있는 비단을 쓰지 말고, 3년 상식(上食)은 예가 아니므로 졸곡(삼우제를 지낸 뒤의 제사) 후에는 그칠 것을 강조했다. 제사음식도 15가지 이상 차리지 말라고 하셨다. 그래서인지 이 댁의 음식은 소박하고 정갈하다.

실학 정신이 깃든 불천위 제사상 「반남 박씨 서계 박세당 종가」

♣ 서계 선생 불천위 제사상차림

탕을 끓여낸 국물과 건더기로 국과 면을 준비한다. 일상식으로 먹는 잡채가 제사음식에 오르는 것도 특이하다. 제수로는 칠과, 삼포, 삼적, 삼전, 생간납, 삼탕, 삼색 나물, 편(떡), 잡채, 혜(식혜), 메(밥), 면(국수), 갱(국), 물김치, 간장, 초간장, 청을 올린다.

▪ 삼포, 삼전

「반남 박씨 서계 박세당 종가」불천위 제사 삼포, 삼전

포는 쇠고기 육포, 염장한 대구포, 북어포 등 세가지 포를 차례로 한 제기에 쌓는다. 삼전은 육전, 간납, 어전의 순으로 쌓는다. 육전은 다진 돼지고기, 어전은 동태, 간납은 소간과 처녑으로 부친 전이다. 삼전 앞에 초간장을 놓는다. 서계 종가에서는 어적과 어포의 머리가 서쪽을 향하도록 놓는다.

▪ 삼적

「반남 박씨 서계 박세당 종가」불천위 제사 삼적

적은 두부적, 쇠고기적을 차례로 쌓고, 맨 위에 적사지를 입에 물린 조기를 올린다. 예전에는 어적으로 숭어를 썼다. 적사지는 적을 드신 후 조상께서 손을 닦으라는 의미이며, 생선에서 나오는 즙이 제상에 흐르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

▪ 생간납

「반남 박씨 서계 박세당 종가」불천위 제사 생간납

생간과 처녑을 포 떠, 굵게 썬 무나 배를 가운데 끼워 말아서 제기에 돌려 담는다. 복지를 올리고 가운데 굵은 소금을 함께 올린다. 생간납은 사당차례나 시제 같은 큰 제사에만 올린다.

▪ 편(떡)

「반남 박씨 서계 박세당 종가」불천위 제사 편(떡)

시루에 찐 녹두편과 대추와 국화잎을 고명을 얹은 찹쌀 화전을 웃기떡으로 준비한다. 녹두편 위에 웃기를 얹는다. 보통 제물로 올라가는 떡은 쌀 한 말 이상을 쓰는데, 서계 선생은 넉 되 이상을 쓰지 말라고 하셨다. 꿀, 설탕, 조청 같은 청(설탕)을 함께 올린다.

▪ 삼탕

「반남 박씨 서계 박세당 종가」불천위 제사 삼탕

서계 선생은 자신이 죽은 후 제사도 간소히 할 것을 강조했다. 탕과 갱은 한꺼번에 끓여서 탕은 건더기로 갱은 국물 위주로 담는다. 무와 다시마로 국물을 내고 쇠고기, 북어, 두부를 넣어 끓인다. 삶은 무를 굵게 깍둑썰기해서 탕기에 나눠 담고 각각 두부, 쇠고기, 북어를 얹는다. 그 위에 팔각으로 손질한 다시마를 덮는다.

♣ 종가의 구심점에서 마을의 구심점으로 김인순 종부

 「반남 박씨 서계 박세당 종가」 최영간 종부

제수를 준비하는 아침, 약속이나 한 듯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문을 열고 들 어선다. 6개월만 하면 된다던 ‘시집살이’가 오늘까지 이어졌다. 시집오니 일 중에 농사일이 으뜸이었다. 예전에는 오곡을 비롯한 갖은 곡식을 2천 평 땅에 농사지었다.

고추농사며 포도농사며 안 지은 게 없다. 마당에 은행을 주워서 경동시장에 팔러 간 적도 있다. 차분한 성격의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배움에 적극적인 걸 좋아하셨다. 그래서 배운 것들이 차, 그림, 서예다. 거실에 그 흔적이 소소히 걸려 있다.

서계 선생의 불천위 제사는 양력 10월 3일 개천절에 지낸다. 많은 자손이 제사에 참석해, 집안일도 의논하고 음복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004년 서계문화재단을 설립해, 앞으로 선친의 뜻이 숨 쉬는 서계마을을 만들려고 한다.

그가 생각하는 종가는 하나의 구심점이다. 그 생각처럼 자연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객지에서 살다가도 언제나 ‘나 돌아가 편히 쉴 곳’으로 위안삼는 곳이 종가다. 사람이 없어도 동네 어른들이 찾아, 텔레비전도 보고 낮잠도 슬쩍 청하고 가신다. 서계 종택은 오늘, 마을 사랑방이다.

♣ 서계 박세당 선생과 종택

「반남 박씨 서계 박세당 종가」종가

경기도 의정부시 장암동 197번지, 수락산을 병풍 삼아 도봉산이 한눈에 보이 는 자리에 조선 후기 실학의 선구자였던 서계 박세당(朴世堂, 1629~1703)의 고택 이 있다. 선생이 심었다는 300년 넘은 은행나무가 종가의 역사를 말해준다.

서계는 4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 10세가 넘어서야 글 을 배웠지만, 빼어난 재주로 일취월장했다. 현종1년(1660년) 증광문과에 장원급제하며 벼슬에 올랐으나, 당쟁에 염증을 느껴 8년 만에 벼슬을 버리고 은거하며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길렀다.

당시는 송시열을 주축으로 한 노론이 정국을 주도했다. 서계는 반주자학적 입장으로 1703년 주자학을 비판하는 『사변록(思辨錄)』을 저술했다. 이로 인해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려 관직을 삭탈당하고 유배형을 받았다.

이인엽(李寅燁)의 상소로 유배형이 집행되지 않았으나 얼마후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오래지 않아 신원(伸老)되었으며, 20년 후 경종2년(1722년)에 문절(文節)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서계 선생은 아들에게 “장례를 지낸 후에는 상식(上食)을 올리지 말라”고 유언했다. 이는 서계의 실사구시적(實事求是的)인 정신세계를 잘 볼 수 있는 예다. 지금도 서계 종가에 서는 선생의 뜻을 받들어 소박한 제례음식으로 제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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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출처 •농촌진흥청 •농사로 •Rda 인트라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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