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들어온 며느리는 명주실로 곱게 묶은 푸른 미나리 한 단을 정성스레 상에 올린다. ‘잘 살게 해주십사’ 하는 의미다. 이어 신랑과 신부가 각각 두 번, 네 번씩 조상께 큰절을 올린다.
♣ 명주실 곱게 묶은 미나리 한 단
광주 안씨 감찰공 안종생 종가에서는 예부터 집에 새 식구를 들이면 종손은 조상께 차례를 드리고 새 식구가 들어왔음을 고했다. 집안의 제주인 종손(감찰공 19대손 안갑환)과 종부(권명자)가 향을 피우고 술을 올려 차례의 시작을 알린다.
종손은 두 번, 종부는 네 번 절을 올린다. 이어 집안 남자 어른들이 배례를 올린 후, 4대에 걸친 조상과 불천위께 술을 올린다. 술을 다 올리고 나면 시아버지가 다시 두 번 절하며 새 식구를 인사시킨다.
새로 들어온 며느리는 명주실로 곱게 묶은 푸른 미나리 한 단을 정성스레 상에 올린다. ‘잘 살게 해주십사’ 하는 의미다. 이어 신랑과 신부가 각각 두 번, 네 번씩 조상께 큰절을 올린다. 조상들이 음식을 드시도록 숟가락과 젓가락을 올린 뒤, 모두 함께 절을 올려 차례를 마친다.
이 댁에서는 사당폐백상을 사당차례상으로 부른다. 사당차례를 마친 후에 신랑 신부 앞에는 임매상이라 하여 국수장국상을 차려주고, 부모와 손님들 모두 국수장국을 먹었다. 국수는 오색으로 고명을 얹어 오행에 순응하는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았다.
♣ 새 식구가 올리는 사당폐백 상차림
차례 음식은 맨 앞줄 왼편부터 북어, 대추, 밤, 배, 곶감, 사과, 수박, 참외, 약과, 식혜를 진설한다. 두 번째 줄에는 삼탕, 삼적, 삼나물을 진설하고 오른편에 떡을 놓는다. 물김치, 간장, 설탕을 올리고 밥과 국 대신 오색 고명을 얹은 국수를 올린다.
국수는 4대 조상과 불천위 조상께 열 그릇을 모두 올린다. 삼탕은 탕국에 두부를 한 장 깔고, 그 위에 쇠고기, 달걀, 북어를 올린다. 삼나물로는 고사리, 숙주와 함께 묵나물인 굴싸리 순을 무쳐냈다. 적은 녹두빈대떡과 간납을 올린다.
▪ 생미나리 묶음
사당차례상에 생미나리 묶음을 올린다. 미나리는 간장(肝臟)의 열을 내리고 염증을 없애 준다고 한다. 제사 공간을 정화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 축하 다과상, 큰상과 임매상
신랑 신부에게 혼인을 축하하는 의미로 큰상을 차려준다. 큰상은 검은깨, 참깨, 들깨, 검정콩으로 만든 엿강정과 약과, 이색 약식, 청포묵, 송편, 오색 다식, 청포묵, 호박식혜로 차렸다.
▪ 엿강정과 약과
볶은 검은깨, 참깨, 들깨와 튀긴 검은콩을 물엿에 버무려 엿강정을 만든다. 약과는 반죽할 때 들기름과 청주를 넣으면 딱딱하지 않고 잡내가 없다.
▪ 이색 약식
간장을 넣은 약식과, 간장 대신 소금과 흰설탕을 넣어 만든 약식을 함께 담는다. 잣, 대추, 밤으로 화려하게 고명을 얹는다.
▪ 청포묵
껍질을 벗긴 녹두를 곱게 갈아서 체에 거른 다음, 가라앉은 앙금 한 컵에 물을 넣고 저어가며 끓인다. 되직해지면 소금 간을 하여 더 끓인 후 틀에 부어 굳힌다.
♣ 이열치열 불 지켜온 종부의 삶 권명자 종부
권명자 종부는 막 시집와서부터 두부며 조청이며 음식은 빠짐없이 다 만들어야 했다. 그때는 아궁이 앞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 불조절을 잘하지 못하면 부르르 끓어 넘쳐버리니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이제는 힘들어서 다 만들어 먹지는 못한다.
다과상차림 솜씨가 예사롭지 않은데도 솜씨자랑은 슬쩍 뒤로 하고, 그저 살아가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라 한다. 일 년이면 제사와 차례가 열세 번이니 평균 한 달에 한 번이 넘는 횟수다.
여름에는 시할머니, 시어머니, 불천위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가 연이어 있어서 더위에도 불 앞을 피할 도리가 없다. 사당차례를 올린 신랑(안재방)과 신부(안나영, 죽산 안씨니 본관이 다르다)는 서른 둘, 스물여섯 꽃다운 나이다.
신랑은 광주 안씨 집성촌에서 자라면서, 자연 스레 종가의 대를 이어야 하는 자신을 받아들이게 되었단다. 사당차례가 마냥 신기한 신부는, 종가에 시집온 것에 대해 “제가 선택한 삶인 걸요”하며 활짝 웃는다.
두 사람은 머지않아 다시 종택에 들어와야 하겠지만 결혼하고 얼마간은 직장 근처에서 신혼을 보낼 계획이다. ‘신부가 무척 복스럽다’, ‘신랑 이랑 잘 어울린다’ 사당 차례를 도우러 찾아온 일가붙이들이 던지는 덕담이 훈훈하다.
♣ 부족한 것은 채우며 채우며, 이택재(麗澤齋)
광주 안씨가 경기도 광주시 중대동 터골에 자리 잡은 것은 600여 년 전이다. 감찰공파는 조선시대 최초의 청백리(淸白吏)인 사간공(思簡公) 안성(安省)의 넷 째 아들인 감찰공 안종생에서 이어져 온 가문이다. 불천위로 모셔진 분은 감찰공의 5대손인 안황이다.
안황은 선조와 처남 . 매부 사이로, 가장 가까이에서 왕을 모셨다. 임진왜란에는 의주까지 왕을 모셨고, 돌아오는 길에 병사하였다. 선조 37년(1604년) 호성공신 2등에 책록되고 광양군(廣陽君)에 추봉되었다.
옛 사당은 너무 낡아 허물어지고, 지금의 사당은 30여 년 전에 새로 지었다. 순암 안정복 선생은 성호 이익의 제자로 실학의 대가였으며, 『동사강목』, 『임관정요』, 『천학고』 같은 수백 편의 저술을 남겼다.
이택재(麗澤齋)는 선생의 강학당으로 “두 개의 연못이 연결돼 서로를 적셔주듯 제자들이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며 학문과 덕행을 갈고 닦는다”는 뜻이다.
300여 년 세월을 이겨낸 이택재에서는 순암의 학문을 연구하는 모임이 열리곤 한다. 이택재에는 선생이 계실 때부터 자리를 지켜오던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여러 그루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