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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10. 종가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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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종가, 마을에서 문화의 구심으로

♣ 종가의 역사

우리나라의 종가는 대부분 조선 중기 이후에 형성되어 4백 년 가까이 유지되어 온, 씨족사회의 전통을 보여주는 고유한 가족제도다.

현대에 와서도 종가는 전통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산으로 세계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으며, 동양권에서도 중국, 일본과도 차별되는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유산이다. 종가는 한 문중에서 맏이로만 이어온 큰집으로서, 종손이 사는 집을 이른다.

종가는 중국의 유교 이념인 종법 사상에 기초해 형성된 것으로, 대종은 부계 친족집단 전체이며, 소종은 자신을 포함하여 5대까지의 친족집단으로, 대종의 종가를 대종가라 부르고 소종의 종가를 소종가라 한다. 중국과 달리 한국에는 파종이 있다.

파종은 대종과 소종의 중간 형태로 불천위 조상을 파조(派祖)로 형성된 종가이다. 나라에 큰 공이 있거나, 도덕적 학문적으로 특출한 업적이 있는 분을 불천위로 모시는데, 신주를 사당에 안치하고 자손 대대로 제사를 모신다. 국불천위, 향불천위, 사불천위로 나뉜다.

국불천위는 나라에서 향불천위는 유림에서 사불천위는 문중에서 결정한다. 대종이든, 파종이든, 소종이든 조상에 대한 존숭의 차원에서 조상을 모실 사당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 결과 종가에서는 사당을 축조하였다. 사당에는 종가를 성립한 조상이나 불천위 조상을 모셨다.

종가의 역사

♣ 종가의 분포

예부터 선비들은 경제적 여건이 좋거나 산수가 아름다운 곳을 즐겨 찾고, 세거하는 풍속이 계승되었기에 종가도 이에 따라 분포했다. 경기도는 토지가 메마르고 백성들이 가난해서 적지가 되지 못했다.

반면 강원도 지역으로 토풍이 왕성한 강릉, 비옥하고 넓은 토지를 가진 춘천, 몸을 숨기고 쉽게 나갈 수 있는 원주, 산과 물의 정기를 가진 횡성 등지는 선비들이 많이 거처하였다.

충청도 지역은 산천이 평평하고 아름다우며, 서울 남쪽에 위치하여 풍속이 서울과 다르지 않으므로 회덕 송씨, 온양 이씨 선비와 유사들이 많았다. 전라도는 기대승, 고경명, 윤선도 같은 인재를 많이 배출했다.

경상도는 가장 번창했던 곳으로, 영남지역 종가는 집마다 한 분의 조상을 모시고, 한 자원을 점유하여 흩어지지 않고 일가끼리 모여 살아서 종가가 오래 계승되었다. 그리고 선비가 행세하며 농장을 마련하기 어려웠던 서울 근교와 달리, 삼남지역은 경제여건이 마련되어 그 지위를 오랫동안 지키며 가세를 보존해왔다.

문중은 친족원이 한 조상의 자손임을 알고, 친족집단의 결속을 강화하기 위해 조직된 집단이다. 한국의 문중은 대개 고려 말 내지는 조선시대 전기부터 조직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불천위 조상을 가진 문중인 경우 대단한 자긍심을 가졌다.

문중에는 맏이로 이어진 종손이 있다. 종손은 문중의 실제적인 대표자로서 문중의 중요한 권리를 가진다. 문중의 대표권과 통솔권, 문중의 중요행사 및 조상 숭배의식인 제축(祭祝)권을 가지고, 문회의 의사 결정 시 존중되며, 생산노동에서 제외되었다.

종손의 이러한 권리는 그 가문을 대표하는 큰 사람으로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 임무라는 것은 사당이 있는 집을 지킬 것과 다른 사람에게 모범이 되는 생활 자세를 가질 것, 종가에 찾아온 손님을 부끄럽지 않게 대접할 것 등이다.

살림살이가 어려웠던 과거에는 큰집 대문을 두드리는 과객이 유난히 많았다. 종가는 자기 집을 찾는 이는 유가의 유사이든, 타향의 과객이든 박대하지 않고 모두 받아들여 숙식을 제공했다. 그리고 객이 피곤을 풀고 염치를 차려서 떠날 때가 되면 버선과 옷, 노자를 챙겨 보내기도 하였다.

이 집의 평판이 바로 객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종부의 일생은 제사 모시기와 손님접대에 소모되었다고 해고 과언이 아닐 정도로, 종가에는 하루도 손님이 없던 적이 없었다. 종가도 시대 흐름에 발맞춰 변화하고 있다.

오랫동안 이어온 음식문화와 제례 문화를 바탕으로, 일반인들과 전통문화를 나누는 도우미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 예부터 종가는 ‘마을’의 구심점으로, 친족과 마을을 돌보고 이끌어가는 역할을 해왔다. 이에 종가는 ‘문화’ 구심점으로, 사라져가는 정신과 전통문화를 현재의 사람들에게 나누어 되살릴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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