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의 재료가 되는 명태에 대한 제반 사항들을 검토해본다
명태와 관련한 이름으로 무태어(無泰魚)를 곧잘 인용한다
이 이름이 문헌에 처음 나타나는 것이 1530년(중종25년)에 편찬한 『신증동국여지승람』 길주·명원 조항이다
이 책에 보면 함경도길주와 명원(명천을 이름)의 토산물로 기재되어 있다
1611년(광해군3년) 허균이 지은 「도문대작」에 보면 이와 관련한 기록이 없다
그래서 이 무태어가 정말로 명태인지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현재 기록에서 찾기는 1652년(효종3년) 『승정원일기』에 명태가 처음 보인다
강원도에서 진상한 대구 어란에 명태 어란이 첨가되어 있어 문제를 삼았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1820년(순조20년) 서유구가 편찬한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는 “명태어라 하였고, 생것을 명태, 말린 것을 북어라 하였다
명태가 다산하여 전국에 넘쳐 흐르고 우리나라 수산물 중 명태는 청어와 더불어 가장 많이 나는 것”이라고 하였다
명태란 이름은 1891년(고종8년) 이유원이 편찬한 『임하필기(林下筆記)』에도 보이고, 조재삼이 지은 『송남잡지(松南雜識)』에도 보인다
조선조 후반기에 이르러 명태란 어종이 비로소 전국적인 어종으로 부상한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황태는 함경도 원산지역이 그 원산지라고 한다
남한에서 황태덕장이 처음 생긴 것은 확실하지는 않지만, 한국전쟁 이후 원산에서 덕장을 하던 이들이 피난하여 내려오면서 원산과 기후가 비슷한 인제의 용대리 일대에서 덕장을 만들면서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기온이 영하10도 이하로 떨어지기 전인 11월이 되면 통나무를 엮어서 덕대를 만든다
기둥을 세우고 도리(세로대)와 고랑대(가로대)를 만들면 덕대는 완성된다
빡빡하게 걸린 코다리의 무게가 무겁기 때문에 덕대가 튼튼하지 않으면 무너질 수도 있다
또 덕대가 땅에서 얼어붙어 튼튼하도록 물을 붓기도 한다
12월 초순에 내장이 제거된 명태를 수입해 비닐끈으로 20마리씩 코를 꿰어 덕장 옆에 흐르는 차디찬 계곡의 물에 집어넣어 하루이틀을 재운다
지금은 환경보호 차원에서 계곡의 물을 직접 이용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이후 5달 정도를 덕장에서 말리는데, 이 과정에 황태의 주인인 화주(貨主)와 덕장의 주인인 덕장주가 같이 고사를 올리기도 하고 과거에는 굿을 한 적도 있었다
날이 차가우면 명태는 금방 얼어붙는다
그렇다가 해가 들면 다시 녹았다가 또 마른다
하루 중에서도 이와 같이 얼고 녹고 마르는 과정을 반복하지만 날짜별로 따져 이와 같은 과정을 반복하는날씨면 더욱 좋다
바로 삼한사온이라 칭하는 우리나라의 겨울 날씨가 황태를 만들기에는 제격인 셈이다
수십 번 반복하는 사이에 명태는 어느덧 속살이 솜처럼 연하게 부풀어오르고 노란 색깔을 띈 황태가 된다
황태를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날씨다
날씨가 너무 따뜻해도 안 되지만, 비가오는 것도 문제가 있기에 큰비가 오면 천막을 덕장 위에 씌우기도 한다
이렇게 하여 이듬해 3~4월이 되면 비로소 황태를 출하한다.
전통식품의 명칭(이명, 영문명 등), 출전문헌, 식재료 및 배합량, 조리법 등의 상세정보와 한의학적 병증에 따라 전통식품이 처방으로 활용된 기록, 한의학 고문헌이나 학술논문 속에서 발견되는 전통식품의 건강기능 정보, 일반 고전문헌이나 학술논문들 속에서 발견되는 전통식품의 지역, 역사, 문화 정보들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