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선은 단순히 한약재가 들어간 음식에서부터 고전 문헌에 수록된 식치(食治) 음식, 변증시치나 체질에 따라 새롭게 조합된 음식처방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넓고, 약선에 대한 정의도 전문가마다 다양하여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없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약선에 대한 대중의 인식은 높은 편이어서 약선 식당 이용자들은 약선을 영양가가 풍부하고, 성인병 예방, 장수, 체력증진, 질병예방 및 치료에 도움이 되는 음식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19,20).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약선이 몸에 좋은 음식이라는 인식은 높아지고 있다.
약선에 대한 관심으로 약선 관련 서적 출판이 늘고 있고, 대학의 사회교육원이나 요리학원, 문화센터 등에서 약선 강좌가 개설되고 있으며, 약선 연구소나 약선 전문 교육 기관도 생겨나고 있는 추세다. 중국과 일본에서도 약선에 대한 관심이 높다.
중국은 1980년대에 국가중의약관리국 주도로 약선을 중의연구 범위에 공식적으로 포함시키면서21) ‘중의약선학’이 중의약의 중요 분야로 정립되어 중의약 교육기관 내에 학과도 개설되어 체계적으로 교육되고 있다22). 최근에는 중의치미병(中醫治未病)표준화 사업의 일환으로 ‘약선 기술표준’ 마련에 힘쓰고 있다23).
일본도 중국의 약선 개념이 도입되어 약선 관련 교육기관이 생겨나고 있으며 자국의 식문화와 결합된 일본약선 개발이 관심을 끌고 있다. 우리나라도 우리 고유의 ‘한국약선’에 대한 개념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고전 문헌속의 약선이나 현대의 약선 관련 교재에 나오는 다분히 이론적인 약선 외에 현재 약선 전문 식당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약선에 대한 연구도 필요할 것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학문적인 분야나 이론이 아닌 실생활과 밀접한 외식업 분야의 조사를 통해 약선 식당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약선 재료인 한약재를 조사하여 분석하였다.
그러나 조사대상이 약선 식당만이 아니라 사찰음식 전문점 4곳과 약선과 사찰음식 메뉴를 동시에 제공하는 식당 1곳을 포함하기 때문에 약선 식당을 대표한다고는 볼 수 없고, 인터넷을 통해 검색된 일부 약선 식당 및 사찰음식 전문점을 조사하였기 때문에 대표성에 한계를 가진다.
조사대상 약선 식당에서 사용하는 한약재는 주위에서 구하기 쉽고 식품용도로도 쓰이는 친숙한 것들이 많았다. 선행연구20,24)에서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고, 친숙하다고 여기는 오가피, 황기, 구기자, 계피, 감초, 당귀, 국화, 치자, 지황, 하수오, 오미자, 복분자 등과 같은 재료들이 약선 식당에서도 사용 빈도가 높았다.
특히 당귀는 조사대상 모든 약선 식당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최근의 쌈 채소 열풍과 함께 당귀 잎이 주목받는 이유와 연관있어 보인다25). 약재로는 일당귀나 토당귀의 뿌리를 사용하지만 약선 재료로는 일당귀의 잎이 주로 샐러드, 장아찌, 쌈 채소의 재료로 많이 쓰이고 있다.
당귀는 특유의 향 때문에 한약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약재로 알려져 있어서 약선 식당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연잎과 연자육의 사용빈도가 높은 것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약선이라고 할 만큼 친숙해진 연잎밥 때문이다.
연잎밥은 찹쌀과 각종 잡곡과 견과류, 연자육 등을 연잎에 싼 다음 스팀에 쪄서 만든다26). 연잎이나 연자육과 함께 건강에 좋은 재료들이 들어간 약선으로 사랑 받으면서 거의 모든 약선 식당이나 사찰음식 전문점에는 연잎밥이 메뉴로 올라 있다.
치자는 특유의 노란 색깔 때문에 예로부터 염색 재료로 쓰였는데 최근에는 밥을 짓거나 떡과 전을 만들 때 색을 내는 용도로도 많이 사용되면서 사용 빈도가 높다. 오가피, 감초, 구기자, 육계, 해동 피, 황기, 하수오 등은 육수를 만드는 재료로 활용도가 높은 재료들이다.
약선에 사용되는 한약재를 부위별로 살펴보면 뿌리나 줄기껍질, 가지와 같은 목질부의 사용빈도가 높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열매나 잎에 비해 뿌리류 한약재의 비중이 높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활용도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약선에 열매나 잎이 다양한 형태로 활용되는데 비해 뿌리는 상대적으로 활용도가 떨어진다. 끓여서 육수로 활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더한다면 술이나 차 재료로 사용되는 것이 전부다. 약선 재료의 발굴이라는 측면에서 한약재의 잎에 대한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앞서 당귀의 예에서 보았듯이 약용으로 쓰이는 당귀 뿌리 대신에 당귀 잎을 약선에 이용함으로써 활용도가 높아 졌다. 실제로 민간에서는 예전부터 오가피잎(오가피 순), 뽕잎, 해동피잎(엄나무순), 방풍잎, 백출잎 등이 식 재료로 쓰이기도 했었다.
이런 한약재의 잎이나 순을 활용한 밥, 죽, 샐러드, 쌈 채소, 나물, 찌개, 떡, 전 등 과 같은 형태의 약선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약선 식당에서 사용하는 한약재는 평균 32종으로 조사되었는데 식당에서 사용되는 실제 한약재는 본 연구에서 조사된 32종보다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본 연구에서 설문조사한 한약재 목록은 2007년 식약공용 한약재 관리 방안 회의에서 선정한 식약공용 한약재 187개 품목 중에서 117종의 식약공용 한약재를 선정하였다.
한약재보다 식품용도로 사용 빈도가 높은 갱미(멥쌀), 건율(밤), 고추, 꿀, 석류, 호도 등 44개 품목을 포함한 70개 품목을 배제시켰기 때문이다17).
보다 실제적이고 정확한 결과를 위해서 후속 연구에서는 사용 한약재 조사 목록에 식품용도로 사용빈도가 높은 44개의 품목 중 한약재로써도 사용빈도가 높은 인삼, 대추, 의이인 등의 한약재를 선택적으로 포함시킬 필요가 있다.
약선 식당에서 사용하는 한약재를 본초서에 기재된 효능별로 분류하여 분석해보니 보익약, 청열약, 수삽약 순이었다. 당귀, 감초, 구기자, 상심자 같은 보익약류 한약재의 사용빈도가 가장 높게 나타난 것은 약선의 효과로 보신(補身)이나 건강증진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보익약에 속하는 재료들 중에는 약으로 뿐만 아니라 식품용도로 사용되는 것들이 많다. 고미(苦味)가 많은 청열약류와 산미(酸味)가 많은 수삽약류가 많이 쓰이는 것도 특징적이다. 특히 오미자, 복분자, 산수유와 같이 신맛이 강한 수삽약류 한약재는 다양한 형태의 약선에 활용되고 있었다.
본 연구에서는 약선 식당에서 사용한 식약공용 한약재 종류를 본초서의 효능별로 분류한 결과만 제시하였는데 후속 연구에서는 약선 식당에서 한약재를 사용할 때 효 능, 맛, 색, 가격, 희소성 등 어떤 이유로 한약재를 사용하는지 각 한약재별로 사용목적을 조사해 보는 것도 약선에 사용되는 한약재 연구의 기초자료로 유용할 것으로 생각된다.
한약재를 사용한 주요 약선 음식의 형태는 당귀쌈밥, 하수오죽, 연자육떡 같은 밥⋅죽⋅떡류의 형태가 가장 많았다. 밥과 죽의 조리형태는 소화와 흡수에 용이하고, 재료를 변화시키는 것만으로 다양하게 조리가 가능하므로 밥⋅죽⋅떡 형태의 약선이 많이 이용된다27)28)29).
다음으로 많은 형태는 나물⋅샐러드류였다. 방풍나물, 도라지나물, 더덕나물과 같은 나물류와 샐러드 재료나 소스에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물⋅샐러드류에 한약재 사용빈도가 높은 것은 한약재 자체를 그대로 이용 할 수 있고, 한약재 고유의 맛과 향을 쉽게 살릴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또한 조림⋅찌개⋅전골과 국⋅탕류도 많이 사용되는 음식 종류로 조사되었다. 전통적으로 약선의 육수를 만드는 재료로 한약재가 많이 활용되는 것과 연관 있어 보인다20).
약선 식당에서 한약재를 선정하는 기준을 조사한 결과 효능이 뛰어난 한약재를 선택한다는 곳과 맛과 향이 뛰어난 한약재를 선택한다는 곳이 비슷하게 나타났다. 효능을 얼마나 중요하게 고려하는가에 대한 설문조사 항목에 대해서는 모든 약선 식당이 한약재의 효능을 ‘중요’이상으로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러한 결과를 반영하듯 약선 식당들은 약선과 한약재의 효능을 식당 내에 설명문을 부착하거나 종업원들의 설명을 통해 약선 식당 이용자들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하는 효과가 있는 한약재가 들어가서 몸에 좋은 음식이 약선이고, 이론적으로 음양오행, 사기오미와 같은 한의학이론으로 약선을 설명하지만 약선도 결국에는 입으로 먹는 음식이기 때문에 맛이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최근 약선 식당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색, 냄새, 향, 씹는 맛 등과 같은 약선의 맛에 대한 요인이 약선 식당 이용자들의 애호도에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도 보고되었다30).
특히나 약선 식당의 성패에 콘셉트보다는 맛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최근에는 약선의 맛이 강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 측면에서 약선의 재료가 되는 한약재의 맛, 향, 색 등에 대한 연구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