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이 살아있는 생활문화공간
민중의 화려하지 않고 질박한 음식문화는 사찰음식 속에 면면히 이어진다. 조선왕조 5백년의 억압 속에서 불교는 가장 낮은 민중 속에서 살아남으며 그들과 애환을 함께 해왔기 때문이다.
국가적 수탈과 박해 속에서도 수행을 이어온 불교는 민중들의 얼마 안 되는 보시와 주변 산과 들에서 먹을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이용하는 지혜를 발달시켰다.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을 때 풀과 나무껍질까지도 이용한 민중들의 생존지혜는 사찰로 이어지고 사찰에서 쌓은 생존의 지혜는 민간으로 다시 전파되었다.“ 이런 것도 먹을 수 있을까?” 하고 사람들이 신기해하는 사찰음식 재료들은 이런 지혜의 결정판이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현재의 사찰음식으로 정립되었다. 음식에 담긴 생명의 가치와 고마움에 감사하는 마음, 화려하지 않고 검소 소박한 식탁, 그리고 수행을 제일가치로 두는 정신이다. 비록 맛과 모양이 만족스럽지 않아도 담긴 정성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풍족하다.
직접 담근 장류와 제철 야채, 정성을 다한 조리법이 곁들여져 특별해진다. 높은 자들의 향연에 봉사하는 음식이 아니라 스스로 힘써 일한 자들이 고픈 배를 채우기 위해 먹던 음식, 계절에 따라 근처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를 활용한 일상음식문화는 사찰음식 속에 이어지고 있다.
20세기에 들어 한국의 전통문화는 대부분 파괴되었다. 전쟁으로 파괴되고 산업사회로 급격하게 변화되면서 농경사회의 지혜는 대부분 단절되었다. 주요 식품들은 공장에서 대량생산되어 시장에서 유통된다. 장을 담고 김치를 만드는 어머니의 지혜가 딸들에게 이어지지 못한다.
그러나 사찰에서는 여전히 우직하게 장을 만들고 김장을 담그며 예전에 먹던 나물반찬을 만들어 먹는다. 사찰만이 여전히 살아있는 생활문화공간으로 전통을 온전히 계승하면서 한국 음식문화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