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6년 개항 이후 일본 불교의 각 종파가 개항지와 도성에 포교를 전개하였다. 이에 자극 받은 조선불교계와 정부는 1902년 전국 사찰의 으뜸 사찰로서 元興寺를 창건하고 寺社管理署를 설치하여 불교를 국가 관리 대상으로 수용하였다.
숭유억불 정책의 변화였으며 불교의 대중화와 도시화를 이루는 계기가 되었다. 國內寺刺現行細則 전문 36조를 반포하였다. 제6조는 원흥사를 大法山으로 삼고 각도 首寺刺 16개소를 中法山으로 지정하였다. 이로서 敎政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고자 하였다.
경상도는 경상우도 해인사, 경상남도 통도사, 경상좌도 동화사 등 3개 중법산이 있었다. 1910년 일제 강점기에 불교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일제는 불교계를 포섭하고 강제하기 위해 寺()令을 발표하였다. 조선불교를 30본산으로 나누어 확정한 것이다.
사찰령시행규칙 제2조는 30본산을 규정하고 있다. 경상북도는 동화사, 은해사, 고운사, 김룡사, 기림사 등 5본산이 지정되었다. 각 본사법을 통해 末寺를 구성하고 통제하였다. 1912년 말 대부분의 본산이 寺法을 제 정하여 조선총독부의 인가를 받았다.
1913년 말까지 각 본말사법이 인가됨에 따라 각 본사 별로 말사가 확정되었다. 경북 5본산은 각기 평균 40개 말사를 거느렸다. 말사는 首班地 말사와 일반적인 方等地 말사로 구성되었다. 수반지 말사는 결제, 안거 등을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규모와 역사가 있는 사찰이다.
1910년 12월 말 전국적으로 사찰은 966개소에 승려는 5,779명으로 비구승 5,210명, 비구니승 569명이었다. 1912년 경북불교계는 사찰 수 177개소 승려 수 1,342명 이었다. 1915년 전국 각 본산이 30본산연합사무소를 설치한 이후 연합활동을 벌였다.
필요한 경비를 각 본산의 사세에 따라 등급을 나누고 차등 있게 경비를 조달하였다. 전국 30본산을 1등지에서 9등지로 나누어 사세에 따른 분담금을 할당하였다. 경북지역 본사는 김룡사가 2등지, 동화사는 3등지, 은해사와 고운사가 4등지, 기림사는 7등지로 분류되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