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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6. 가을철 사찰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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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향적세계 동원스님

♣ 사찰음식 교육의 중심

동원(東元)스님을 만난 건 4~5년 만이었다. 수원 봉녕사의 후원에서 처음 만나 이야기꽃을 피웠던 스님을 오랜만에 서울 향적세계에서 재회 했다. 구성진 입담과 맛깔난 손맛은 그대로였다. 담백하고 고소한 가을 향기가 스님의 요리에 담겼다. 한국불교의 총본산이라 불리는 서을 조계사.

전국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모던한 일주문이 있는 그 건너편에 템플스테이 통합정보센터가 있다. 이곳 2층에 사찰음식 교육의 중심지인 향적세계가 새로 둥지를 틀었다. 그간 목동 국제선센터에서 사찰음식 대중화의 기능을 톡톡히 하던 곳이다. 이 건물의 2층은 원래 사찰음식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콩’이라는 식당이 있었다.

인근의 직장인에게는 저렴하고 건강하게 한 끼를 해결할 수 있어 꽤 선호도가 높았던 곳이었다. 그 공간에 향적세계가 들어오면서 완전히 새롭게 변모했다. 들어서는 순간부터 이곳이 이렇게 변했나 싶을 만큼 잘 정돈한 교육시설이 됐다. 동원 스님은 이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스님은 새로운 향적세계에서 사찰음식을 널리 알리는 강사로 활동 중이다. 스님은 일찌감치 나와 오늘 사용할 식재료를 다듬고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어떻게 지냈어요? 스님께서 먼저 인사를 건네고 예의 그 다정다감한 말투로 그간의 사정을 물었다. 오랜만에 보아도 어제 만난듯 정이 넘치는분이다.

스님은 오랫동안 수원 봉녕사에서 활동하며 사찰음식을 알리는 역할을 해왔다. 수원 봉녕사가 사찰음식으로 유명해질 수 있었던 것도 스님의 그 열정적인 활동 덕이 컸다. 음식은 사람을 닮는다. 푸짐하고 맛 좋은, 그러나 뒷맛이 깔끔한 그런 음식이 동원 스님의 사찰음식이었다.

옥동식 셰프도 앞치마를 두르고 스님 곁에서 식재료를 다듬는다. 옥 셰프는 지난 봄 서울 역삼동에 ‘옥동식’ 역삼점을 새로 낸 후로 더 바쁜 삶을 살고 있다. 지난해 미슐랭가이드를 비롯해 블루리본 서베이 등 6개의 레스토랑 사설 평가지표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식당으로 선정된 만큼 그의 음식을 찾는 사람이 많아진 덕분이다.

고수와 고수는 통한다. 동원 스님과 선 옥동식 셰프는 나란히 한 주방에 서서 어느 새 음식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가을하면 우엉이잖아요. 우엉은 버릴게 하나도 없어요. 깨끗히 씻은 뒤애 벗겨낸 껍질은 잘 말려 차를 끊여 먹으면 좋거든요. “선방수행을 많이 하는 특성상 건강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스님들 차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분들이 많아요.”

“일반 레스토랑에서도 우엉은 요리사가 좋아하는 재료예요. 일본의 어떤 돈가스 집은 우엉 분말을 이용해서 돈가스를 만들어내는데, 이게 돼지고기랑 참 잘 맞아요. 우엉 분말을 쓰니까 특유의 잡내가 사라지더라고요.” “오, 그것도 신기하네 . 우리야 고기 먹을 일이 없으니까 그런 것까지는 잘 몰라요.

보통 절에서는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 별로 없어요. 식재료의 맛을 살려서 간단하게 해먹는 요리가 많거든요. 그래서 사찰음식이라는 게 알고 보면 참 간단해요. 어렵지 않게 누구나 배워서 일상에서 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에요.” 오늘의 사찰음식은 두 사람의 주고받는 대화에서 이미 시작했다. 시작부터 맛깔나다.

향적세계 동원(東元)스님
<향적세계 동원(東元)스님>

♣ 스님 이 뜨면 산천초목이 벌벌

두 요리사의 식재료 이야기는 끝을 모르고 이어진다.스님이 들려주는 절집 식재료 이야기에는 일반인뿐 아니라 옥 셰프에게도 쉽게 듣기 어려운 사찰의 문화가 담겨 있다. 대중 생활을 하는 특성상 레스토랑처럼 늘 많은 식재료를 만져야 하지만, 레스토랑과는 달리 봄과 가을에 대량으로 미리 준비해 뒀다가 두고두고 먹는 저장 형태인 경우가 다반사다.

봄이면 표고버섯을 300kg씩 주문해서 말리고 그걸 잘 저장해서 1 년 내내 먹는다. 봄에 표고버섯을 준비하는 건 겨울을 이겨낸 표고가 그 모양이나 맛, 향이 월등하기 때문이다.“사찰에서는 모든 걸 우리가 다 하잖아요. 이전에는 고춧잎 훑어서 준비하고 고추도 종류별로 다 분류하곤 했어요.

예전에 우리 스님이 그런 이야기도 하십디다. 스님이 떴다 하면 산천초목이 다 벌벌 떤다고. 스님들이 오면 하도 남김없이 다 훑어가니까.” 스님들의 살뜰한 식재료 사용기는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시래기로 이야기가 옮겨간다. 시래기 같은 것은 어느 사찰이든 직접 다만들어 먹는 줄 알았다.

그런데 꼭 그렇지도 않았던 모양. 예전에는 김장철에 스님들이 직접 시장을 돌아다녔다며 스님이 뒷이야기를 풀어낸다. 김장철에는 배추를 더 보기 좋게 하려고 겉잎을 떼어 버렸는데, 그냥 두면 어차피 다 버리니까 스님들이 그걸 주워 왔다는 것. 쓰레기라고 생각하면 쓰레기가 되지만, 먹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잘 씻어서 쓰면 귀중한 식재료가 된다.

김치도 마찬가지다. 보통은 배추 뿌리 쪽을 잘라서 버리는 경우가 많은데, 스님은 그러지 말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김치는 머리 부분에 영양이 많은데 그걸 버린다는 건 중요한 영양을 포기하는 짓이라는 거다. 그걸 얇게 저며서 내면 다 먹을 수 있다는 게 스님의 이야기다.

옥동식 셰프 역시 여기에 크게 공감했다. “저도 마찬가지예요. 저 역시 식당에서 김치를 낼 때 버리는 것 없이 다 내거든요. 손님들이 그런 것도 잘 드세요. 다 편견 때문인 것 같아요. 보기 안 좋으니까 안 먹을 거라는 편견으로 요리하는 사람이 미리 잘라 버리는 게 문제죠.

저는 제 식당에서 만큼은 음식쓰레기를 만들지 않으려고 해요. 실제로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고기를 삶을 때 들어가는 부재료를 제외하면 거의 제로에 가까워요. 내 가게를 한다는 게 이럴 때 참 좋습니다. 내가 꿈꾸는 걸 실천할 수 있으니까요.”

옥 셰프의 그 이야기를 들은 동원 스님의 눈이 반짝인다. 옥 셰프를 바라보는 눈빛이 변했다. 의식 있는 요리사를 만났구나 하는 표정. 역시고수는 고수를 만날 때 표정 이 바뀐다.

동원 스님, 옥동식 셰프
<동원 스님, 옥동식 셰프>

♣ 우리 밥상의 주인공은 반찬이 아닌 밥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두사람의 손은 노는 법이 없었다. 착착착. 재료를 다듬고 나누고 썰어서 준비한 다음에는 오래 걸리는 것부터 차례로 하나씩 불 위에 올린다. 가장 시간이 오래 걸리는 우엉밥이 제일 처음. 다음은 능이감기국, 마지막이 콩전이다.

그중에 모두의 궁금증을 자아낸 요리가 능이감기국이었다. 이건 대체 무슨 음식일까.“지금이야 시절이 좋으니까 스님들도 병원을 가고 약국을 다니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못했잖아요. 더구나 몇 십 명에서 수백 명이 함께 생활하는 대중 생활에서 감기 환자가 나오면 순식간에 감기 환자가 늘어나거든요.

결국 대중 생활메서는 예방이 최선인데, 사찰에서 별 수가 있었겠어요? 그런데 감기국이라는 아주 간단한 요리 덕분에 효과를 톡톡히 봤어요. 여기에 들어가는 재료들이 따뜻한 성질을 가진 것이거든요. 몸에 열을 올리는 거예요. 감기 바이러스는 열에 약하니까. 이거 해서 겨울이 오기 전에 한 번 드셔 보세요.”

그러고 보니 레시피 자체도 아주 간단하다. 재료들만 살펴봐도 대충의 맛을 짐작할 수 있었다. 재료를 다듬고 냄비에 담아서 팔팔 끓이기만 하면 끝이다. 간단하지만 맛도 좋고 감기도 예방할 수 있다면 더 없이 고마운 한 그릇이 될 것이다. 물론 이 요리 하나로 감기를 무조건 예방할 수 있다는 맹신은 금물.

어디까지나 이건 음식으로 몸을 보해서 질병을 예방하는 식치의 차원일 뿐이다. 요리가 하나씩 익어가는 동안 주방에는 고소한 향기가 가득 찬다. 우엉밥은 부러 냄비로 끓여서 만들고 있었다. 옥 셰프는 전기밥솥에 비해 냄비밥이 훨씬 맛있는데도 편리함 때문에 밥의 맛을 잃어가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동원 스님 역시 그 얘기에 고개를 끄덕인다.

전기밥솥 보다는 냄비밥, 냄비밥 보다는 가마솥밥. 열이 잘 전달될수록 밥맛은 살아난다. 거기에 맛있는 쌀을 쓰면 우리 밥상에서 밥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한국인의 밥상에서 주인공은 반찬이 아니라 밥이다. 밥맛이 좋아야 하는 이유를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동원 스님 사찰음식 강의
<동원 스님 사찰음식 강의>

♣ 만드는 사람의 노고와 먹는 사람의 마음

비로소 음식들이 완성됐다. 우엉밥과 능이감기국을 그릇에 옮겨 담고, 동글동글하게 부쳐낸 콩전을 접시에 보기 좋게 담아냈다. 콩전 역시 궁금증을 자아내는 요리였지만, 만드는 과정만으로 모든 의문을 풀 수 있었다. 곱게 갈아낸 콩으로 부쳐낸 동그랑땡 류의 부침개.

다만 글루텐이 부족한 콩의 특징상 맵쌉을 함께 갈아야 부치는 과정에서 모양이 부서지지 않고 고소한 맛도 한층 더 깊어진다. “참 간단하죠? 이렇게 간단한 게 사찰음식이에요.” 모두가 한 식탁에 모여 앉아 수저를 들었다. 스님과 옥 셰프가 만들어낸 세 가지 음식은 레시피를 보며 상상했던 그 맛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우엉 밥은 우엉 특유의 쌉쌀하고 고소한 맛이 밥의 단맛과 잘 어울렸다. 별도의 반찬이 필요 없을 만큼 밥맛이 충분히 입안에서 맴돈다. 거기에 능이의 향 뒤로 피어오르는 매콤한 맛이 일품인 능이감기국이 조화를 이뤘다. 밥의 단맛을 말끔하게 지우고 입맛을 돋운다. 콩전은 기대했던 콩의 향과 고소함이 살아 있다.

갈아서 만든 콩반죽이 두부나 비지와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물어본다면, 완전히 다른 매력이 있다고 답하고 싶다. 두부나 비지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간결한 맛이다. 여기에 부쳐내는 과정에서 더해진 기름이 콩의 고소한 맛을 한결 더 살리면서 풍미를 더한다. 바삭한 치감도 적당히 살아 있다. 풍성한 한 상을 즐기는 동안, 동원 스님이 음식을 만들며 들려주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음식이라는 게 먹는사람이 즐겁고 맛있으면 만드는 사람은 더할 나위 없는 큰 보람을 느껴요. 하지만 음식을 한다는 건, 그 자체로 고된 일이에요. 하심하지 않으면 할수 없어요. 내가먹기 위해 음식을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많은 경우 나보다는 다른 이를 위해서 음식을 만들잖아요. 요리를 한다는 건 희생이에요.

내 입이 아닌 다른사람의 입맛을 맞추는 일이 결코쉽지 않아요. 우리가 먹는 하나의 음식에 얼마나 많은 사람의 노고가 깃들어 있는지 생각해 주었으면 해요. 그것뿐 아니에요. 음식 하나에 수많은 사람의 땀방울과 관계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의 음식에 수많은 사람의 관계가 연결되고 세계가 들어 있다.

어쩌면 화엄의 진수가 이 한 그릇에 들어있는 것은 아닐까. 그 관계를 살피고 고마운 마음으로 수저를 들어 감사히 음식을 먹는 것. 사찰음식이란 만드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먹는 사람의 마음자세까지 온전히 이르는 말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 가을의 맛 풍성한 한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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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출처 •대한불교조계종 •동국대학교 식품영양학과 이심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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