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고미자아(松古味子兒) 현대식 레시피
♣ 재료 및 분량
□ 원전(原典)
1643년 : 熟松古 7兩, 淸 8夕, 造淸 1合 2夕, 油 2合 3夕, 膠粘末 2合 2夕, 沙粉白米 7合, 汁淸 2夕, 造淸 3夕
환산분량 : 숙송기 289cc, 꿀 48cc, 조청[白糖] 72cc, 참기름 138cc, 교점말 132cc, 사분백미 420cc, 즙청 12cc, 조청[白糖] 18cc
□ 현대화한 분량(5인분)
* 숙송기 280g, 꿀 50g(3 ⅓큰술), 조청(백당) 133g(4 ⅔큰술), 찹쌀가루[교점말] 65g(½컵 1큰술), 물
* 즙청용 꿀 15g(1작은술), 조청(백당) 38g(1 ⅓큰술), 물 5g(1작은술)
* 사분백미 350g(1 ¾컵), 찹쌀 400g(2컵)
* 식용유(튀김용) 105g(½컵 1 ⅓큰술)
1. 소나무 속껍질을 벗겨 물을 충분히 넣고 뭉근한 불에서 오랫동안 삶아 연하게 만든다. 손으로 잡아 당겼을 때 쉽게 끊어질 정도로 삶아 물기를 짜서 곱게 다져 숙송기[熟松古]를 만들어 280g을 취한다.
2. 물, 조청 4 ⅔큰술, 꿀 3 ⅓큰술을 합하여 끓여서 차게 식힌다.
3. (1)의 숙송기에 찹쌀가루 ½컵 1큰술을 넣고 (2)의 꿀물을 합하여 반죽한다. 물의 양은 찹쌀가루의 건조상태 및 송기의 수분상태에 따라 가감한다.
4. (3)을 작은 도토리 크기로 빚는다.
5. 찹쌀 2컵을 3시간 이상 물에 담갔다가 찜통에서 익도록 쪄내어 찬물에 한 번 행구어서 물기를 빼고 채반에 담아 햇볕에서 바싹말려 건반(乾飯)을 만든다. 바닥이 두꺼운 냄비에 식용유를 담아 온도를 올린 후 건반을 넣고 확 일어나면 흰색이 유지되게끔 재빨리 건져내어 기름을 뺀다. 완전히 식으면 블렌더로 갈아서 체에 내려 접시에 펼쳐 담아 사분백미(沙粉白米)를 만든다.
6. 튀김용 식용유를 불에 올려 놓고 낮은 온도에서 (4)의 과자를 서서히 연한 갈색이 나도록 튀겨내어 기름을 뺀다.
7. 즙청용꿀 1큰술, 조청 1 ⅓큰술, 물 1작은술을 합하여 약한 불에 올려 놓아 끓인다. 완전히 섞이면 불에서 내린다(조청 만드는 법은 중박계 참조).
8. (6)의 과자가 식기 전에 (7)의 꿀물에 담갔다가 건져 꿀물이 완전히 빠진 다음 (5)의 사분백미에 굴린다.
♣ 음식 이야기
작고 조그마하게 만들되, 재료에 송기[松古]를 넣었다 하여 송고미자아(松古味子兒)라고 하였다. 송기에 넣는 찹쌀가루를 교점말(膠粘末)이라고 한 까닭은 찹쌀가루가 송기의 접착제로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송기는 松肌라고 쓰이기도 하는 송피(松皮), 즉 소나무의 속껍질이다. 조선시대 민가에서는 송기를 빨리 무르게 하기 위하여 잿물에 삶아 우려내어 쌀가루와 섞어 절구에 찧어서 익반죽한 다음 찜통에서 쪄내고는 다시 한번 떡메로 쳐서 여러 형태의 떡을 만들었다.
이 떡을 송기병(松肌餠) 또는 송지병(松脂餠)이라고 하였다. 송기는 구황식(救荒食, 기근 때에 곤궁을 구하여 돕는 음식) 식재료의 하나이기도 하였다. 송고병은 고려시대에도 크게 유행했던 떡 중의 하나였다.
이익은『성호사설』「청호 송고」에서21) ‘『고려사』「조이전(趙彛傳)」에 상고하니 원(元)나라 승상(承相) 안동(安童)은 김유(金裕)22)가 속이는 말을 옳게 듣고 송고병(松古餠) 30근을 구하려고 사람을 보내 왔었다.
김유는 송고병이 소나무 위에서 저절로 생긴다고 했으나 실은 소나무 흰 껍질을 벗겨서 삶아 익힌 다음 절구에다 여러차례 찧은 뒤에 꿀도 넣고 쌀가루도 섞어서 떡을 만든 것이었다 한다.
지금 시장에서 파는 떡 중에 송고병이 가장 많으니 전해온 풍속이 오래되어도 없어지지 않는 것이 이와 갈다’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고려시대에도 널리 먹었지만 이익(1681~1763)의 시대에 송고병은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파는 떡이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