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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3. 궁중 전통장(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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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궁중의 장독대

♣ 장고와 장고마마

민간에서는 장을 저장해 두는 곳을 ‘장독대’, ‘장광’이라 불렀으나 궁에 서는 ‘장고(醬庫)’라고 불렀다. 그곳에서 장을 관리하는 직분올 맡은 이가 ‘장고마마’다. 일반적으로 궁이나 큰절에서는 볕이 좋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넓은 공간을 마련해 장을 저장하여 놓았다.

또한 주위에는 담을 쳐서 출입문을 만들고 빗장을 지르고 자물쇠를 채워 놓아 함부로 들어가지 못하게 엄중하게 관리하였다. 알반적으로 장고의 크기는 큰 강의실만 하며 바닥에 네모반듯한 바닥돌을 깔고 배가 부르지 않은 새우젓항아리 처런 생긴 말똑항아리를 나란히 열을 지어 장의 나이 순대로 줄지어 놓았다고 한다.

궁중에서 장을 저장 했던 항아리는 유약을 바르지 않아 회색빛을 띠었으며, 테두리가 넓고 독의 키가 1미터가 넘을 정도로 컸다.

조선 후기 동궐이라 불리던 창덕궁과 창경궁의 전각과 궁궐 전경을 조감도 식으로 그린 그림인 ‘동궐도’를 보면 장고로 보이는 곳이 어러 곳 등장하는 데, 이는 궁중의 식생활에서 장의 비중이 매우 컸음을 보여 준다. 장고마마는 생각시를 데리고 장을 담그고 장을 내주는 일을 담당하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몸단장을 정갈하게한 후 나열해 있는 장항아리들을 깨끗이 닦고 뚜껑을 열어 놓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였다.

궁중의 장은 장올 만든 해 순으로 늘어놓고 그대로 묵히는데, 장고마마의 주된 임무는 아침에 장항아리를 열고 줄어든 장을 보충해서 항상 독전에 찰랑찰랑 채워 두는 것이었으며 이를 위해 간장을 끊임없이 만들어 놓았다. 음식에 쓰거나 햇볕에 증발하여 장이 줄어들면 담근 연수가 적은 독에서 많은 독으로 옮겨 담아 채웠다.

동궐도(東闕圖)
▲ 궁궐의 전경이 그려진 ‘동궐도(東闕圖)’에는 장고의 모습물 볼 수 있다.

♣ 고서에 등장한 고기양념구이의 기원

오늘날 전통적인 양념구이로 생각하는 너비아니나 불고기는 맥적의 조리법에서 기원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최남선은 『고사통(故事通)』에서 맥적에 대해 “중국 진(晋)나라 때 『수신기(搜神記)』를 보면 ‘지금 태시(太始)이래로 이민족의 음식인 강자(羌煮)와 맥적(貊炙)을 매우 귀하게 안다.

그래서 중요한 연회에는 반드시 맥적을 내놓는다. 이것은 바로 융적(戎狄)이 쳐들어올 징조이다’라고 경계하였다는 이야기가 있다.”라고 한 후 “맥(貊)은 동북에 있는 부여인과 고구려인을 칭한다. 즉 강자(羌煮)는 몽골의 고기요리이고 맥적(貊炙)은 우리나라 북쪽에서 수렵 생활몰 하면서 개발한 고기 구이이다.”라고 적고 있다.

고려 시대에는 불교가 국교로 되면서 육식이 쇠퇴하였으나 13세기 이후 몽골이 고려를 지배하게 되면서 육식이 다시 활발해지고, 맥적도 몽골인과 회교도가 많이 들어와 살던 개성에서 설하멱(雪下覓)이란 명칭으로 되살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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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출처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농식품자원부 전통한식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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