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리다누스 초원의 파에톤
자연이와 토리는 파에톤이 떨어진 에리다누스강 아래로 내려갑니다.
자연이는 손으로 꽉 쥐고 있던 코를 살며시 놓아봅니다.
곧 숨 쉬기가 수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형형색색의 물고기가 투명한 지느러미를 자랑하며 옆을 지나갑니다.
뒤를 이어 초록색의 보석, 에메랄드가 무리 지어 나타나고요.
얼마 전 할아버지의 현미경에서 본 새송이버섯 포자.
맑은 초록의 포자들은 속이 훤히 비치는 투명한 에메랄드 빛입니다.
둘 혹은 혼자서 하느작 하느작 움직입니다.
짚신벌레보다는 귀족적이고 아메바보다는 우아해 보입니다.
자연이는 새송이 포자의 뒤를 쫓아 헤엄을 칩니다.
새송이 포자는 더 빨리 달아나 버립니다. 그렇게 에메랄드 빛 포자를 쫓아 도착하게 된 곳은 넓은 초원이었습니다.
초원에는 은빛 머리의 잘 생긴 소년이 은빛 말을 돌보고 있었어요.
“저. 자연이 인데요. 당신은 누구...세요?”
자연이는 조심스럽게 물어보았습니다.
“파에톤.”
파에톤은 제우스의 번개를 맞고
깊고 깊은 에리다누스 강의 보이지 않는 바닥까지 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자연이는 시그너스가 파에톤을 찾아다닌 안타까운 시간들에 대하여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리고 별이 된 이야기도.
“다행이군. 난 너무 부끄러워서 시그너스를 볼 수가 없어.”
파에톤은 은빛 머리카락을 쓸어 올립니다.
그리고 자연이를 말에 태웠습니다.
강 아래에 이렇게 아름다운 초원이 있었다니, 자연이는 신기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곳이라 해도 혼자서 지내는 파에톤이 불쌍하게 생각되었습니다.
“파에톤, 나랑 같이 여기서 나가면 안 될까요?
제우스에게 용서를 빌면 너그럽게 이해해 주실 거예요. 그치? 토리?”
토리는 몸을 작게 해서 자연이의 모자 속으로 숨어버립니다.
“고마워. 하지만, 난 나와 함께 에리다누스에 떨어진 가여운 말들을 돌봐야 해.
그게 내가 할 일이야.”
파에톤은 주머니에서 금빛 육분의(관측지점의 위치를 잴 수 있는 광학기계)를 꺼냈습니다.
“이건.. 육분의?”
“그래, 이제 이 육분의를 사용할 수 있게 됐어.
넌 땅의 여자아이이고 난 별, 신의 아들이야. 그리고 저 강 너머에 달.
이 육분의는 태양과 달, 별과 땅의 각도로 위치를 알 수 있지.
그러면 네가 가고자 하는 곳에 데려다 줄 거야.
솔직히, 난 지금까지 태양을 찾을 수 없어서 이곳에서 나갈 수 없었어.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내면서 생각했어. 그리고,
내가 있을 곳은 여기라는 것을 깨달았어.
잠시 후면 금성이 별들을 데리고 사라질 시간이야.
그러면 태양의 신이 나타나.
그 시간은 찰나의 시간이야. 네가 돌아갈 시간도 그때뿐이고.
잘 가. 자연. 널 만나서 반가웠어.”
파에톤은 자연이의 이마에 엄지손가락을 올려 입을 맞추었습니다.
“파에톤. 언제나 이 모습 그대로이길 바래요.”
왜 가슴이 뛰는 걸까요? 이런 기분.
자연이는 육분의를 들어 올렸습니다.
태양을 향해.
“아이구, 여기가 어디야?”
“어... 아직도 새송이 몸속이야. 갓주름인 것 같아. 톨.”
“그래, 초원의 버섯, 새송이.
에구~ 습기를 잔뜩 먹어서 잘 걷지도 못하겠어.
너무 깊은 계곡인걸. 게다가 비가 오네.
우리가 여기서 제대로 나가려면 태양을 찾아야 하잖아.
그렇지 않으면 파에톤이 준 이 육분의가 제 역할을 못한다고.”
자연이는 이마에 손을 대고 울먹였습니다.
“왜 제대로 길을 못 찾은 거지?”
“구름이 태양을 가려서 그래. 톨. 울지마.... 톨.
저기 날아가는 포자를 타고 여기서 탈출하자. 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