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원을 들어주는 백일송이, 의심하지 마라
“토리야, 땅속에도 정말 많은 생물들이 사나봐.”
“맞아, 눈에 보이지 않아서 몰랐던 거지. 톨.”
드디어 초록 갈대배가 아름다운 땅에 뱃머리를 대고 접혀있던 몸을 펴 자연이와 토리를 땅 위에 내려주었습니다.
다시 태양을 볼 수 있어 다행입니다. 살랑 부는 바람도 반갑습니다.
“그런데 우리 어떻게 집으로 돌아가지?
이렇게 작아진 상태로는 아무도 우릴 알아보지 못할 거야.”
그때, 이쪽으로 튀어 오르는, 그리고 다시 반대쪽으로 날아오르는 무엇.
“이번엔 뭐지?”
“난 높이뛰기의 최고! 톡토기다. 넌 누구냐? 이상하게 생겼다.”
“아~. 네가 톡토기구나. 난 자연이라고 해. 그리고 사람이야. 지금은 이렇게 작지만.
그런데 정말 높이 뛴다. 난 높이 뛰는 것은 자신 없는데.”
톡토기는 세 쌍의 다리를 허리에 대고 배를 내밀었습니다.
“우와! 어떻게 그렇게 높이 뛰는 거야?”
톡토기는 한쪽 눈을 질끈 감아 더듬이에 힘을 주어 이야기합니다.
“그건, 연습이다. 열심히! 넌 내게 무엇을 말해 줄 수 있나?”
자연이는 잠시 고민을 합니다.
“음. 우린 갑자기 작아졌어. 이유는 모르겠어. 몰라.
너한테 처음으로 이야기 하는 거야.
집으로 가고 싶은데 이런 모습으로는 갈 수 없잖아. 혹시 방법을 아니?”
톡토기는 도약기를 땅에 딛고 천천히 아래로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다짐한 듯 굳게 다문 입을 열어 아주 길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이 길로 똑바로 가면 커다란 느티나무가 보인다.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서 뒤로 열 발자국 움직이면, 잠자는 씨앗을 만날 수 있다.
그 씨앗을 왼쪽으로 돌아 오른쪽의 세모난 구멍을 나와서
앞으로 열 세 발자국 가면 백일송이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그 할머니는 무엇이든 해결해 주신다.
아주 지혜로운 분이니까. 그분에게 너의 소원을 얘기해 봐라.”
“그래? 백일송이 할머니? 정말 고마워. 톡토기야. 네 안부도 전해줄게.”
톡토기는 짧게 까딱 인사를 하였습니다.
“헛, 둘.” 휘이익~
자연이와 토리는 멀리, 높이 사라지는 톡토기를 봅니다.
“그런데 자연아. 톡토기가... 말 한 거 다 외웠어? 톨?
너무 길고 어려워. 톨.”
“아~니.”
“그럼, 어떡해? 톨?”
토리는 작은 눈을 크게 하고 물었어요.
자연이는 주머니에 있던 mp3를 꺼내서 ‘재생’을 누릅니다.
“이 길로 똑바로....”
자연이와 토리는 mp3에 녹음된 내용대로 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느티나무.... 잠자는 씨앗.... 세모난 구멍... 그런데 참 이상했어요.
아무리 느티나무를 오른쪽으로 돌아 열 발자국을 움직여 세모난 구멍을 찾아서
다시 열 세 발자국을 몇 번이고 다시 해도 늙은 느티나무로 돌아왔거든요.
그리고 그곳엔 백일송이라는 꽃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토리야, 우리가 뭘 잘못한 걸까? 분명히 시키는 대로 했는데 말야.”
토리는 느티나무 위로 가볍게 날아올랐습니다.
느티나무는 나이가 많이 든 나무였어요.
높고 두꺼운 나무기둥은 키가 큰 할아버지처럼 보였지요.
“자연아, 백일송이 할머니는 꽃이 아니라, 느티만가닥버섯 할머니가 아닐까? 톨.
느티만가닥버섯을 백일송이라고 부르기도 하거든. 톨. 저기 보이잖아.”
토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느티나무가 부스스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습니다.
“이 할멈이, 어째 하루 종일 잠만 자나. 이보쇼, 일어나봐! 누가 찾아왔네.”
느티나무의 쩌렁쩌렁한 소리가 온 숲을 울렸어요.
나뭇잎들이 우수수 우수수.
자연이는 늙은 느티나무 옆에 이미 잘려나간 그루터기에 앉아
눈을 감고 있는 느티만가닥버섯을 발견했습니다.
“아. 할머니, 안녕하세요? 주무시는 중... 이세요?”
자연이는 조심스럽게 인사했습니다.
“잠? 난 자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하는 중이다.
저 나무 할아범은 인정하지 않지만!
지혜로움을 갖기 위해서는 생각을 많이 해야 하거든.”
“지혜로운 할머니, 전 인간이에요.”
“그래, 그렇게 보이는구나. 그런데 왜 그런 모양이냐?”
느티만가닥버섯 할머니는 퉁명스럽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아마도 느티나무 할아버지 때문에 기분이 상했나 봅니다.
자연이는 더욱 공손하게 물어보았어요.
“할머니, 할머니는 무엇이든 해결해 주시는 현명한 분이잖아요.
제 소원은.... 다시 커지는 거예요.
할머니는 톡토기에게 가장 높이 뛸 수 있는 지혜를 알려주셨다고 들었어요.”
“그건 아주 쉬운 소원이구나. 진심을 믿고 절대 의심하지 마라. 그러면 된다.”
절대 의심하지 말라! 의심!
‘그게 무슨 소리야. 뭘 의심하지 말라는 거지?’
자연이는 울상을 지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