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샹피뇽마을의 대현자
휙!
자연이는 길을 가다 깜짝 놀라 뒤로 넘어집니다.
자연이의 어깨에서 잠을 자던 토리도 온몸의 털을 세우고 주변을 경계합니다.
“잠깐만, 저 앞에 작은 발자국이 있어.”
흙 위에 찍힌 발자국은 작고 긴 발톱을 가졌습니다.
“하나, 둘... 앞발가락 4개, 뒷발가락은 5개. 설치류다!”
자신이 맞힌 발자국을 분류하고는 뿌듯하게 작은 코를 벌름거리는 자연이.
그때, 엄청나게 큰 다람쥐가 나타났습니다.
“앗! 진짜 큰 다람쥐야.”
다람쥐는 풍성한 꼬리로 부드럽게 자연이를 안아 올리고는 힘차게 달렸습니다.
얼마나 달렸을까요?
고리모양으로 둥글게 둘러앉은 주황색버섯 앞에 멈춥니다.
“요정의 고리. 샹피뇽마을(식용버섯들이 사는 마을)로 가는 문.”
“샹피뇽? 문?”
다람쥐는 주황 버섯이 둘러진 문이라는 곳으로 자연이를 던집니다.
“잠깐마안~.”
어디선가 신선한 풀향기가 정신을 잃은 자연이를 깨웁니다.
초록색의 갈대 배.
어릴 때 할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배의 모양과 똑같습니다.
갈대 배는 힘 있고 싱싱한 갈대를 접어 만듭니다.
냇물에 띄운 갈대배를 보면서 한 번 타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꿈이 이루어질 줄이야.
“자연아, 여기가 어딜까? 톨.”
토리가 자연이의 모자에 숨어 떨리는 목소리로 이야기 합니다.
“글쎄... 너가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또 이상한 곳에 온 것 같아.”
갈대배는 어두운 강을 조용히 지나 하얀 바위에 멈춥니다.
자세히 보니, 하얀 바위는
톱밥을 뭉쳐놓은 듯 퍽퍽하고 딱딱한 마른 버섯 배지처럼 보입니다.
“어서 오세요. 샹피뇽마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전.”
“알고 있습니다. 자연님 이시죠. 전 상피뇽마을의 대현자입니다.”
대현자의 모습은 먹을 수 있는 버섯들을 이것저것 섞어 놓은 모습입니다.
가늘고 긴 팽이버섯 손가락 끝에는 여러 색깔의 포자 보석이 붙어 있습니다.
머리에는 넓은 느타리갓을 얹었고 몸은 세로로 긴 흰 주름을 바닥까지 늘였습니다.
대현자가 아주 느리고 우아하게 걸을 때마다
기분을 몽롱하게 하는 버섯향과 은빛 가루가 날립니다.
자연이는 두 손을 포개어 가슴에 얹고 대현자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저... 대현자님.”
“쉬잇! 이곳은 아기들이 자는 곳입니다. 조용히 해 주세요.”
자연이는 입을 오므리고 하려던 말을 삼켜 버립니다.
푸른 버섯모양의 문 위에는 ‘신의’라고 적혀 있습니다.
그 옆의 붉은 버섯 모양의 문 위에는 ‘의심’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대현자는 의심의 방 앞에 멈추었습니다.
“우리 버섯은 지금까지 세상 곳곳에서 자연의 균형을 맞추는 노력을 해 왔습니다.
땅 위에서 땅 속에서. 장소를 따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우리를 늘 의심하고 있습니다.”
대현자는 방을 들여다보며 낮은 목소리를 말했습니다.
“의심이라니요? 그렇지 않아요. 버섯을 얼마나 좋아하는 데요.”
“그럴까요? 그렇다면, 우리 버섯에게 왜 ‘의심’이라는 꽃말을 지어주었지요?”
자연이는 버섯의 꽃말이 ‘의심’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당신이 잘못한 것은 아닙니다. 무례했다면 사과하겠습니다.
당신도 알다시피, 우리 버섯은 자연을 지키고 동물에게도 이로운 생물이랍니다.
그러나 독버섯들은 자연의 균형을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의심’이라는 꽃말... 바로 그들로 인해 얻은 오해입니다.
그 누명을 벗기 위해서! 우린, 토드마을(독버섯이 사는 마을)의 독버섯들과 싸워야 합니다.
그리고 이겨야죠.”
대현자는 아주 힘 있고 강력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신의의 방에 있는 아기버섯들은 맑은 얼굴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반면 의심의 방의 아기버섯들은 알록달록한 피부에 뾰족한 가시가 난 버섯들입니다.
“우린 군사력을 키우기 위해서 숲에 버려진 독버섯 포자를 데려와서 착한 버섯으로 순화교육을 시킵니다. 순화된 버섯들은 신의의 방으로 보내져 건강하고 좋은 버섯으로 길러지지요. 이러한 우리의 프로젝트가 토드마을에 알려지면 우리 마을이 위험해 질 수 있습니다. 아! 걱정마세요.
우리 버섯들은 지혜로워서 그 부분도 놓치지 않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긴 이야기를 마친 대현자는 손가락을 들어 공중에 원을 그립니다.
그러자 둥근 화면 속에서 각양각색의 느타리들이 멋진 갑옷을 입고 훈련을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독버섯들은 환각이라는 약물로 자연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인간들은 그것도 모르고 독버섯을 신처럼 숭배하며 버섯돌이라는 석상을 만들고
잠시의 즐거움과 환각을 위해 악용하기도 하지요. 못된 웃음버섯 무리들!”
대현자는 주먹을 쥐고 다른 방으로 안내하였습니다.
나무로 만든 거대한 수영장.
아기버섯들의 체력을 단련하는 중입니다.
“비타민C와 당근 수영장은 독버섯을 이길 수 있는 포자를 만들기 위한 수상훈련장
입니다. 아주 훌륭한 버섯들이에요.
독포자에 감염될 경우를 대비해 면역력을 키우기 위함이지요.
세상 어디에도 버섯은 존재합니다.
식물이나 동물에게 해가 되지 않는 독버섯이더라도 인간에게 독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니 숲에서 보는 버섯을 함부로 만져서도 먹어서도 안 됩니다.”
대현자는 분홍빛 눈을 반짝이며 자연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착하고 정의로우며 지도력이 뛰어난 버섯이라는 생각이듭니다.
“대현자님, 인간이 버섯.... 먹으면 속상하지 않으세요?
당신의 후손이고 가족이잖아요?”
“물론, 인간이 함부로 버섯을 대할 때는 화가 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생각합니다.
우리 버섯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에게 먹고 먹히는 관계는 자연이 만든 균형에 의한 것이고
‘자연이라는 진실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받아들여야 합니다.
불안하지도, 공포스럽지도 않습니다.
생명을 잇기 위한 소중한 믿음입니다. 그러나,
독버섯들은 다른 생물들을 불안한 죽음으로 파멸시켜 자연의 균형을 깨려 하기 때문에 경계하는 것입니다.”
대현자는 이야기를 마치고 처음 만났던 강가로 배웅해 주었습니다.
길고 긴 검은 강은 조용히 갈대배를 움직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