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들어진 진화의 경이로움
할아버지의 서재는 마른 풀 내음으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더욱 할아버지의 서재가 좋습니다.
이다음에 자연이가 커서 제일 먼저 되고 싶은 직업은 멋진 요리사입니다.
두 번째는 할아버지처럼 식물학자가 되는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채집을 다녀오면 알 수 없는 풀들이 가방 가득 담겨 오는데요.
아주 빠른 손놀림으로 채집한 식물들을 신문지와 압지, 골판지에 켜켜이 끼워 말리는 일을 가장 먼저 해야 하지요.
그 일은 단순하지만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숙련된 조교인 자연이가 거들기도 합니다.
잎과 줄기, 뿌리를 생긴 모양대로 가지런히 펼쳐 고정을 시킵니다.
차곡차곡 정리된 종이 탑이 무릎만큼 높아지면 압착판이라는 나무틀로 고정시켜서 튼튼한 끈으로 묶고 건조기계에 넣습니다. 끝!
할아버지는 자연건조가 좋지만 이렇게 기계를 이용하면 시간을 단축할 수 있어 ‘기특한 기계’라고 칭찬합니다.
식물건조기계의 불을 빤히 쳐다보던 자연이는 할아버지의 의자에 앉습니다.
빙글빙글.
책상 위의 빨간 열매 사진.
이번에 채집한 식물인가 봅니다.
“음.... 토리야? 이거 뭔 줄 알아?”
주머니에서 잠을 자던 토리가 하품을 하며 나옵니다.
“요즘은 자꾸 졸려. 온 몸이 근질거리고. 토올.”
“넌 목욕을 안 해서 그래.”
자연이는 검지손가락으로 토리를 한 바퀴 굴렸습니다.
“난 목욕을 못 해. 톨! 근데, 이 사진은 뭐야? 톨.”
“여기 쓰여 있네. ‘죽절초’래. 어디 보자.”
자연이는 마치 할아버지 같은 말투로 책상 위의 식물사전을 펼칩니다.
“겨울에.... 붉은 열매가 맺히고... 어? 돈내코 계곡? 제주도에 있는 거네.”
“음... 죽절초는 겨울에 열매가 열리는구나. 톨.
팽이버섯도 원래는 눈 속에서 자라는 버섯인데. 너도 알지? 톨.”
토리는 몸을 동그랗게 말아 죽절초 열매처럼 만들었습니다.
“몰랐어. 팽이버섯은 마트에서 사계절 파는데?”
자연이는 이번에도 손가락으로 토리를 쿡 눌렀습니다.
토리는 안간힘을 쓰며 자연이의 손가락에서 빠져나옵니다.
“에구구. 우리가 알고 있는 콩나물처럼 생긴 팽이버섯은
일본에서 처음 상업적으로 재배되기 시작했어. 톨. 1945년인가? 토올~.”
“그렇구나. 그때부터 팽이버섯의 재배역사가 시작되었구나.
음.... 무슨 효소라고 하는데...
그리고 흰색 팽이버섯은 특별한 효소가 강하다는데, 뭔지 알아?”
“나 알아. 그건, SOD라는 효소야. 톨.
바로 슈우퍼~옥싸이드 디스뮤우~타아제(Superoxide dismutase)!!
줄여서 SOD. 사람의 몸속에 있는 슈퍼옥사이드를 분해해서
암 발생을 억제한데. 톨. 너무 어렵지? 톨?”
“에구구... 톨톨이. 머리 아푸다. 그러니까,
재배된 팽이버섯이 건강엔 더욱 좋단 이야기인가?
그런 그렇고 우리 겨울 산에 가 볼까?
야생 팽이버섯 찾으러 말야. 잠깐만, 채집을 하려면 준비를 해야지.
이 벌레야.”
“난, 벌레 아니라니까!! 톨!”
자연이는 비닐봉지와 뿌리삽, 돋보기, 사진기, 수첩과 연필을
가방에 넣었습니다.
“나 준비됐어. 귀여운 토리야.”
“나, 귀여운 톨. 이번엔 다른 방법으로 움직여 볼까? 톨.”
“정말? 좋았어. 돌아올 때도 잘 올 수 있는 거지?”
“응. 그동안 방법을 알아냈거든. 톨.”
“잘했어. 역시!! 토리는 멋져. 가자. 톨!!”
토리는 자연이를 향해 몸을 털었습니다.
토리의 몸에서 반짝반짝 가루들이 떨어졌습니다.
“너무 멋져~ 토리야. 은빛 눈이야...”
푹!
자연이와 토리가 떨어진 곳은 할아버지농장의 뒷산입니다.
둘의 추락에 깜짝 놀란 토끼가 귀를 쫑긋하더니 산 위로 폴짝이며 도망갑니다.
겨울산에 오긴 했지만 어디서 팽이버섯을 찾아야 할지 걱정입니다.
“고목을 찾아보자. 죽은 나무 그루터기에서 자란다고 하잖아.”
자연이는 토리를 주머니에 넣고 푹푹 쌓인 눈을 헤치고 갑니다.
“으~ 옷을 얇게 입었나 봐.”
이가 딱딱 부딪히기 시작합니다.
“우리 그냥 갈까? 톨?”
자연이는 떨리는 이를 앙 물고 그루터기를 찾아봅니다.
“이 그루터기엔 없어...”
그루터기를 찾으면 ‘안녕?’하고 팽이버섯이 인사를 할 줄 알았습니다.
장갑을 끼지 않은 손이 빨갛게 얼기 시작했습니다.
콧물도 주루룩. 소매가 콧물로 얼룩졌습니다.
“자연아, 여기 누런 무언가가 있어. 한번 파 보자. 톨.
그리고 없으면 가는 거야. 알았지? 너 감기 걸리겠어. 톨.”
토리는 자연이의 고집을 알기 때문에 마지막의 기회를 만들어 봅니다.
자연이는 뿌리삽으로 언 눈을 사각사각 걷었습니다.
“우아~ 토리야. 팽이버섯이야. 네 말이 맞았어. 편평한 밤색 갓, 황갈색 대야.”
“채집할거야? 톨?”
자연이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습니다.
“사진만 찍을 거야. 눈은 이렇게 치워주고.”
자연이는 사진 한 장을 찰칵 찍었습니다.
그리고 팽이버섯 주변의 눈을 치웠습니다.
“많이 춥지? 내가 눈을 치워줄게. 건강하게 자라렴.”
-나도 네게 선물을 주고 싶어. 눈을 치워준 그 삽은 이제 특별한 힘을 지닐 거야.
“응? 토리야. 뭐라고 이야기 한 거야?”
“아니. 아무 말도 안했어. 톨. 이제 집으로 가자. 톨.”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
집으로 돌아온 자연이는 채집가방의 물건들을 잘 닦아 서랍에 넣어둡니다.
그런데 눈을 치웠던 뿌리삽이 금색입니다.
“원래, 금색이었나? 이상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