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섯이 지구상에 출현한 시기는 약 1억 3천만 년 전 공룡과 암모나이트가 번성했던 중생대 백악기 초기라고 추정합니다. 한반도에서도 충남 공주시 우성면에서 발견되어 공주 산림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는 버섯 화석으로 보아 이 시기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인간은 자연과 함께 공존해 오면서 민족에 따라 독특한 민속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토속 신앙과 관련된 제사장, 무속인, 점술가 등은 하룻밤 사이에 생겨나는 버섯을 신비롭게 생각하였지요.
민족에 따라서는 버섯을 번개, 천둥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여 두려움의 대상이며 종교의식과 민속신앙에 연관시키기도 하였습니다. 버섯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 3,500년경 알제리 나제르 고원의 동굴에 그려져 있는 타실리(Tassili) 상입니다.
타실리상을 보면 무당의 몸 윤곽선에 버섯 모양이 있고 손에 큰 버섯 여러 개를 쥐고 있어 버섯의 영적인 기운을 담고 있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답니다.
버섯은 고대문명 발상지와 화려한 명성을 떨친 곳의 어디에나 알려져 있었는데 부족의 제사장, 샤먼들이 마취 효과나 환각작용을 나타내는 버섯을 이용하였습니다. 마야에서는 버섯을 지하세계 또는 죽음의 세계를 의미하였습니다.
이는 1550년 이전에 제작된 비코(Vico) 사전에 버섯을 ‘자이발바이 오콕스; xibalbaj okox’ 라고 부르는데 자이발바이는 지하세계 또는 죽음의 세계, 오콕스는 버섯을 뜻하는데 이는 버섯의 환각성을 의미합니다. 이집트의 파라오들은 버섯을 너무 좋아했답니다.
그래서 평민들이 버섯을 먹지 못하도록 금지령을 내렸으며, 로마인들은 먹을 수 있는 계층을 귀족으로 한정하였다고 합니다. 훗날 버섯이 병사들의 힘을 북돋운다고 믿게 된 뒤, 병사들에게 먹도록 허락하였습니다.
B.C 456~450년경의 이카루스(Icarus)의 말속에도 독버섯의 중독사고 이야기가 나오고, 인도의 석가모니는 열반에 들기 전에 버섯을 먹었다고 하며, 로마의 네로황제(A.D 37~68)는 달걀버섯을 먹었는데 백성이 버섯을 따서 가져오면 무게를 달아보고 그 만큼 황금으로 상을 내렸다고 전합니다.
이집트인들은 버섯을 신 오르시스가 인간에게 준 선물이라고 생각하였으며, 멕시코와 과테말라의 인디언들은 특정한 버섯의 외형이 천둥번개와 관련되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B.C 1,000~300년경의 유적으로 보아 종교나 신화에서도 버섯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버섯민속학의 한 분야를 주창한 미국의 왓슨(R.G Wasson)은 중국의 영지버섯에 관한 내력은 인도의 릿구, 베다의 영향이 인정된다고 기술하였지요.
이에 의하면 B.C 2,000~1,500년경에 중앙아세아 코카사스 지방의 유목민족인 아리아인이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을 지나 인도에 이주하여 판잡지방에 정착하기 시작하였고 농경을 하면서 B.C 1,500~500년에는 힌도우스탄 지방에서 바라몬교의 종교문헌집인 수종의 성경 베다가 만들어지고 여기에 기록되어 있다고 전합니다.
남아메리카에서와 마찬가지로 멕시코에서도 진흙을 불에 구워 만든 버섯 조상이 발견됩니다. 왓슨은 토기로 된 고대 베라크루스 양식의 ‘버섯 여사제’를 소장하고 있는데, 아마도 500~600년경에 제작된 것 같다고 추정합니다.
그리고 퍼스트(Peter T. Furst)는 멕시코 서부에 있는 2,000년 전의 무덤 벽화에서 수많은 버섯이 흙으로 그려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멕시코에서 1938년에 바이트라너 박사는 존슨(Jean Basset Johnson)과 함께 우아우틀라 데 히메네스 지방을 여행하다가 밤새 계속된 버섯을 먹는 치료 의식을 목격할 수 있었지요.
샤먼이나 치료사는 우선 질병의 원인을 점칠 목적으로 버섯을 사용하는데, 그동안 숭배되고 예언을 한 것은 치료사가 아니라 버섯이었다고 믿는 것입니다. 남미뿐만 아니라 유라시아, 시베리아에서도 환각성 버섯의 사용은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1600년대 중반부터 시작해서 18세기에 들어설 때까지 시베리아의 코리악(Koryaks)족이나 사냥꾼, 순록 목동들, 발틱해에서 캄차카반도에 걸친 지역에서 여러 부족들이 버섯 음료를 사용하는 것이 목격되었지요.
이 버섯은 광대버섯으로 치명적인 독버섯으로 보다 환각적이며 샤머니즘적 종교, 황홀한 마취를 가져다주는 신성한 수단으로 사용되었는데요.
이러한 사실을 독일의 박물학자 랑스도르프(Georg Heinrich von Langsdorf)가 당시 유럽인들의 이상한 습관으로 여겨져 오던 것을 현대적인 방법으로 접근하여 밝혔답니다.
시베리아의 버섯 마취에는 놀라운 사실이 있는데 바로 버섯을 먹는 사람의 오줌이나 광대버섯을 뜯어 먹는 순록의 오줌을 마시는 것입니다. 시베리아에서는 2가지 방법으로 광대버섯을 먹는데 첫째 방법은 직접 먹는 방법이 있습니다.
여기서 ‘직접’이란 생버섯을 먹거나 즙을 내어 마시는 것을 말하며, 이때 물이나 우유, 꿀 또는 다른 약초를 섞어 먹기도 합니다. 둘째 방법은 첫 번째 방법으로 버섯을 먹은 사람의 오줌을 먹는 것이지요.
버섯에 포함된 환각적인 성분이 무엇인가라는 의문은 100년이 지난 1960년대에야 광대버섯(아마니타 무스카리아)에서 ‘무스카린(muscarine)’을 추출해 냄으로써 해결되었습니다. 이 무스카린은 오랫동안 환각을 일으키는 주요한 성분이라고 여겨졌으나 사실은 약간의 역할만 한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광대버섯 음료는 소마(Soma)로 알려져 있는데 소마는 신이고 동시에 한 식물이며 그 식물의 즙을 가리킨다고 왓슨은 그의 저서 ‘소마 : 불멸의 신성한 버섯’에서 설명하고 있답니다. 왓슨이 광대버섯 이론을 제시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소마의 정체를 밝히지 못하였습니다.
왓슨은 소마에서 “우리 기독교 시대가 시작되기 2,000년 전에, 자기들을 ‘아리안 족’이라고 부르는 민족이 북서쪽으로부터 지금의 아프가니스탄과 인더스로 침입해 왔다.
그들은 말이 끄는 전차를 타고 싸우는 전사 집단으로서, 자신들을 위해 가축을 기를 농경민족을 확보하기 위해 침입한 것이었다. 그들의 언어는 인도-유럽어계어의 베딕어로서, 이는 고대 산스크리트어와 현대 유럽어의 모체가 되는 것이었다.
그들의 종교는 부족신앙으로서 세습 사제가 있었으며 수많은 신과 신령에 대해 정성스럽게, 때로는 참혹한 의식과 공물로 공양하였는데, 그들의 신화는 신들의 업적으로 가득 찬 것이었다.
번개를 지닌 최고신 ‘인드라(Indra)’와 불의 신 ‘아그니(Agni)’ 가 가장 존경을 받았다. 그 외에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신이 있다. 그 많은 신들 중에서 특이한 존재는 ‘소마(Soma)’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외에도 환각작용을 하는 버섯들로 환각버섯속(Psilocybe), 독청버섯속(Stropharia), 말똥버섯속(Panaeolus) 의 일부 종들이 포함됩니다.
중남미 특히 멕시코에서 자생하는 환각버섯(신비의 버섯; magic mushroom)은 사일로사이빈(psilocybin) 이라는 물질을 가지는데 유용하게 이용될 전망입니다.
미국 존스홉킨스 의과대학교 롤랜드 그리피스 박사 연구팀은 최근 효능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는데, 실험 참가자들의 60%가 정서적으로 훨씬 개방적이고 창의적인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또한 이처럼 활발해진 성격은 실험 기간뿐 아니라 실험 이후 14개월 동안 지속되는 효과를 나타냈습니다.
한국을 비롯해서 중국, 일본에서는 영지와 도교가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인도로부터의 영향도 있고 서초(瑞草) 즉, 신과 관계된 경사스런 것이라는 견해가 있었습니다.
왓슨에 의하면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인 아리아인이 버섯을 숭상하는 사상은 고대 중국 주나라 말기인 B.C 7~3 년에 아리아계 인도인에 의해 중국에 이러한 버섯을 숭상하는 사상이 전해졌다고 하는데 광대버섯 대신에 영지버섯으로 옮겨졌다고 합니다.
비록 버섯의 종류는 광대버섯으로부터 영지로 바뀌었으나 버섯을 중시하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세계에서 최초로 영지라는 이름이 나오는 것은 「포박자」라는 책입니다.
317년 한나라가 망하고 100년이 지난 진 시대에 갈공 이라는 학자가 선인이 되고 싶어 많은 서적을 읽고 연구하여 한 권의 책을 만든 것이 「포박자」라는 책인데 여기에 처음으로 영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포박자」의 선약편에 나오는 균지(菌芝)는 심산의 큰 나무에서 자라며 120종류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를 채집하기 위해서는 입산하기 전에 제를 올리고 흰 개를 데리고 찾아다니되, 발견하면 뼈칼로 잘라 음건하여 분말로 만들어 복용한다고 합니다.
중품으로 수천 년, 하품으로 천 년의 수명을 얻을 수 있다고 하였지요. 중국의 포박자(抱朴子)에도 영지에 대한 도교적인 견해가 엿보이며 이러한 도교사상에서 영지는 대단히 진귀한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고대 중국인은 불로의 선약으로 숭상하였는데 진나라 시황제가 선인이 되기 위해 선약을 찾아 한국, 일본에 수천 명을 보냈으며 이 선약에는 불노초버섯(영지)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리고 한나라의 무제는 영지버섯의 애호가로 한서·무제기(漢書·武帝記)에 기록되어 있는데 불로불사의 신약으로 숭상하여 이것이 발견되면 궁중에서 축연(柷宴)과 함께 대사령을 내리고 시를 만들어 읊으면서 축하했다고 전합니다.
당나라 현종 때의 양귀비도 절세의 미인으로서 마력을 지닌 것은 영지버섯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영지버섯의 힘은 대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최초의 의·약학의 학술전문서인 신농본초경(柛農本草經)에는 한방약을 365품목으로 나누고 상품, 중품, 하품의 3종으로 다시 나눕니다. 상품은 「생명을 養하는 목적의 것이다. 무독이며 장기간 복용해도 부작용은 없다.
이것들에게는 몸(身)을 경(輕)하게 하고 원기를 익하고 노화를 방지하고 수명을 연장하는 약효가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120품을 적었는데 그중에 청지(靑芝), 적지(赤芝), 황지(黃芝), 백지(白芝), 흑지(黑芝), 자지(紫芝)의 6종의 영지를 기록하였습니다.
신농본초경 이후 중국의 많은 의약학서에서 영지는 기록되어 있으며, 명대의 이시진의 저서‘본초강목’에도 영지는 잘 기술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는 영지가 약품의 초부에서 채부로 옮겨져 식품으로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당시 영지는 깊은 산 속에서 발견하는 사람이 먹으면 장수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젖어 생것을 그대로 먹었다고 합니다.
오늘날에 기술된 중국의 소설이나 드라마에도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을 감안하면 중국에서는 일상생활에 상비약이면서도 귀중한 약재로 이용되었음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궁중에서 사용한 십장생도에 불로초(영지)가 나오고 일부 절의 단청에서 아직 영지문양을 발견할 수 있어 중요하게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