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도 마시는 여행
제주도로 여행을 간다면 맛집 검색부터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흑돼지구이, 고기국수, 자리물회, 갈치조림, 고등어회, 한치회… 제주의 땅과 바다에서 난 재료로 취향과 계절에 맞춰 메뉴 정하고 식당 고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아무리 유명한 제주 음식을 섭렵했다 해도 제주 전통술인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을 맛보지 못했다면 지금까지 당신의 제주 ‘먹방여행’은 꽝이나 다름없다.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음식으로 이 두 가지 술만 한 게 없기 때문이다.
오메기는 좁쌀의 제주 방언이다. 좁쌀은 벼농사가 어려운 척박한 제주땅에서 사람들의 주린 배를 채워준 고마운 곡식이다. 관광객들은 어느 관광지에서나 흔한 오메기떡 덕분에 이름이 낯익을텐데, 그 오메기떡은 찰기 없는 좁쌀만으로 떡 만들기가 힘드니 찹쌀을 넣어 반죽을 하고 팥고물을 묻혀 먹기 좋게 만든 일종의 관광상품이다.
제주사람들이 옛부터 해먹던 진짜 오메기떡은 가운데가 도넛처럼 뻥 뚫린 회색빛 구멍떡이다. 가끔 잔치 때나 만들어 가족끼리 나눠먹고 남은 것은 누룩을 넣어 술을 빚은 게 바로 오메기술이다. 엷은 노란색을 띄는 오메기술은 상큼한 신맛과 묵직한 단맛이 조화롭다.
특히 산미가 좋아 입 안에 들어가는 순간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자극적인데, 그 자극이 참으로 격조 있고 고급스럽다는 느낌이 든다. 코끝을 간질이는 은은한 곡물향도 술의 기품을 더한다. 식전주로 입맛을 돋우기에 더없이 좋다. 담백한 음식에 곁들여 반주를 해도 잘 어울린다.
고소리술은 소주다. 발효주를 증류시켜 소주로 만드는 도구인 ‘소줏고리’를 제주말로 고소리라 한다. 술의 재료가 아니라 만드는 도구를 이름에 붙인 게 특이하다. 좁쌀과 보리쌀을 반씩 섞어 먼저 발효주를 만든 뒤 고소리에 증류하면 고소리술이 된다.
증류한 술은 오래 숙성할수록 술맛이 맑고 깊어진다.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을 제대로 맛보려면 서귀포시 표선면의 ‘제주술익는집’에 가야 한다. 4대째 오메기술과 고소리술을 빚는 양조장이다.
홈페이지(www.jejugosorisul.com)나 전화(064-787-5046)로 예약하면 인공감미료를 넣지 않고 전통 방식으로 만든 술을 메밀고구마범벅, 고사리무침, 별떡 등 제주의 토속안주와 함께 맛볼 수 있다. 누룩 만들기, 오메기막걸리 만들기 등 체험프로그램도 있어 가족 단위로 방문하기 좋다.
양조장과 카페를 겸한 제주술익는집 바로 근처엔 성읍민속마을이 있다. 전통 가옥과 마을이 보존된 성읍민속마을에서 놓치면 아쉬울 볼거리가 바로 재래 흑돼지다. 성읍민속마을에는 아직도 옛 방식 그대로 집 뒤꼍에 돌담을 둘러쳐 흑돼지를 키우는 집이 몇 곳 남아있다.
태어나면서부터 사람과 부대끼며 자란 돼지는 가까이 다가가도 피하지 않고 오히려 먹이를 달라는 듯 얼굴을 들이민다. 성읍민속마을 보존회(064-787-1179)나 성읍민속마을 관리사무소(064-710-6791)에 문의하면 흑돼지 키우는 집을 알려준다.
천연기념물인 제주 흑돼지를 맛볼 수 있는 식당도 제주에 딱 한 곳 있다. 제주시 한경면의 늘푸른농원은 60여마리의 흑돼지를 직접 방목해 키우면서 일주일에 한 마리씩 도축해 농원에 딸린 식당 ‘연리지가든’에서 판매한다. 흑돼지 고기는 진한 붉은색이 꼭 소고기 같다.
삼겹살은 살코기보다 지방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잘 익은 한 점을 입에 넣어보면 고소하고 깔끔한 기름맛에 놀라게 된다. 식당은 사전 예약제다. 1인분에 2만원으로 부위는 고를 수 없다. 4인분 정도면 삼겹살, 목살, 등심, 안심 등 다양한 부위를 맛볼 수 있다. 테이블 6개에 점심·저녁 합쳐 하루 40~50명씩만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