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2월 1일
•대표음식 : 노비송편, 빈대떡, 설렁탕 등
조선 숙종 때입니다. 남산골에 미행을 나간 숙종은 밤이 깊은데 어디서 낭랑히 글 읽는 소리를 쫓아 어느 조그만 오막살이 방 앞에 이르렀습니다. 들창 사이로 방안을 엿보니 글 읽는 남편 옆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는 젊은 부인이 있었습니다.
얼마쯤 지나 남편이 밤이 깊어 출출하다고 하니 부인은 가만히 일어나 벽장에서 주발뚜껑에 담은 송편 두 개를 내놓았는데 선비는 반가운 듯 얼른 한 개를 집어 먹고, 나머지 하나를 집어 부인의 입에 넣어 주었는데 서로 사양해 마지않으며 먹는 것이었습니다.
왕은 젊은 부부의 오붓한 모습에 감동하여 부러운 마음을 안고 궁으로 돌아와 그 이튿날 왕후에게 송편이 먹고 싶다고 전갈을 보냈는데 큰 푼주에 높다랗게 쌓인 송편을 보고 어젯밤 젊은 부부의 환상을 기대했던 왕은 울컥 화가 치밀었습니다.
화가 난 왕은 “송편 한 푼주를 먹으라니 내가 돼지야?”하고 송편그릇을 내동댕이쳤는데 왕의 심정을 알아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푼주의 송편 맛이 주발뚜껑 송편 맛만 못하다는 속담이 생겼다고 합니다. 이야기 속의 송편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추석에 먹는 송편이 아니라 중화절의 ‘노비송편’(머슴송편, 삭일송편)입니다.
음력으로 2월 초하루는 ‘중화절’(中和節)이라 하여 농가에서는 그 해의 농사를 시작하기 위해 준비하는 달입니다.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이월령’에도 “보습 쟁기 차려놓고 논과 밭을 갈리라.”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 음력으로 이월은 한 해의 농사일을 시작하는 달로 농사를 시작하기 전에 일꾼들의 사기를 북돋워주기 위해 만들어 대접한 음식이 바로 ‘노비송편’이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1849)‘이월’에 의하면 ‘삭일송편’에 대해 “정월 보름날 세워 두었던 화간에서 벼이삭을 털어 흰떡을 만든다. 크게는 손바닥만 하게, 작게는 달걀 만하게 만드는데 모두 반쪽의 둥근 옥모양 같다. 콩을 불려서 푹 익힌 다음 소를 만들어 떡 반죽 속에 넣고 시루 안에 솔잎을 겹겹이 깔고 넣어서 찐다. 푹 익힌 다음 꺼내어 물로 닦고 참기름을 바르는데 이것을 ‘노비송편’이라 하여 종들에게 나이 수대로 먹인다.
그래서 속칭 이날을 노비일이라 하고 농사일이 이때부터 시작되므로 이를 노비에게 먹이는 것이라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콩 이외에도 팥, 검은콩, 푸른콩으로 소를 해 꿀을 넣거나 대추나 삶은 미나리를 넣기도 했습니다.
노비송편을 머슴의 나이대로 주었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나이가 어리거나 연로한 노비들에 비해 성인 노비들이 한 해 소작량을 좌우하기 때문이며, 겨우내 굶주렸던 배를 채워주고 사기를 북돋아 주기 위해 나이 수만큼 나누어 주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주인들이 자신들이 아닌 노비들을 위해 떡과 술을 준비하여 대접을 하였던 풍습은 농사일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한 해 농사를 잘 부탁한다는 격려의 의미와 함께 한 해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가 담겼습니다.
중화절에는 노비들에게 송편을 나눠주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제사를 지냅니다. 중화(中和)란 중용(中庸)과 같은 말인데 중용에 따르면 만물은 중화에서 자란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연유하여 중국에서 농사를 시작하는 날을 중화절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날 천자가 백관들로 하여금 농서를 올리게 하고, 또 술과 음식을 베풀고 중화척을 나누어줌으로써 농업이 국가의 근본임을 나타내었습니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이월조에는 이필(李泌)의 정월상소에서 옮긴 “그믐날을 명절로 삼는 것은 잘못입니다.
청컨대 이월 초하루를 중화절로 삼고 모든 관리들에게 농서를 올리게 하여 농사가 힘써 해야 할 근본임을 나타내십시오.”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중화절은 농사가 중요한 생업이었던 만큼 농업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