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제를 다녀와서...
자연의 시간은 저절로 흘러간다. 그 흘러가는 세월 속에 시간을 어떻게 쓰면서 사느냐에 따라 산다는 것의 결과가 사람마다 판이하게 달라지는 것이 인생이다. 누구나 인생의 힘겨움을 안고 살아가지만 어떤 이는 어려움 속에서 그 너머를 추구하며 미래를 감지하는 혜안을 갖고 살아간다.
그들은 자신 앞에 놓여 있는 시련에 좌절하지 않고 상황을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의 삶에서 나오는 에너지는 주변으로 번져나가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것이다. 하물며 그의 자식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오죽 하겠는가.
이번 여행길에선 딸과 함께 자신의 길을 가려하고 있는 모녀를 만나게 되었다. 어머니의 성함은 ‘유옥선(62)’님 이다. 인제에서 태어나 바로 아랫동네로 시집(현재의 집)을 와서 살고 있는 완전 토박이란다.
“여기서 태어나 내린천 강가에서 어린 시절을 빙어등 물고기를 잡으며 자랐고, 결혼도 했고 아이들도 나서 키우며 나이를 먹고 그 강가에서 늙어 가네요.
이곳은 아니 그 시대도 모두 가난했고 그래서 공부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지만, 5남매의 맏딸로 태어나 동생들 건사하고 자라다 보니 저절로 능동적인 성격이 되었는지 힘든 일을 찾아서 꾀 안 부리며 살았어요. 동네에서 소문난 ‘또순이’, ‘억척이’ 이라는 별명도 붙었지요.
과수원에서 일하고 바로 두부공장으로 가서 두부를 만들고 나면 나오는 콩비지를 얻어다가 돼지 키우는 곳에 가져다주는 일을 하고, 화장품 외판원까지 하면서 지금 표현대로 하자면 ‘투 잡(job), 아니 쓰리 잡(job)’을 뛴 거죠. 그러면서도 이것은 내 미래에 오래 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죠.
그러나 배운 것도 짧고 이곳에서 특별히 할 만한 일도 농사 말고는 달리 없었어요. 그래서 일을 하면서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적성을 살려 요리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죠. 어린 시절부터 엄마가 외출하면서 아랫목에서 띄우는 식혜를 잘 보라고 하면 내 맘대로 이것저것을 첨가해서 넣어 보기도 했어요.
그냥 호기심으로 한 것이니까 식혜는 망쳐서 못쓰게 되어 어머니에게 야단도 맞았지만 실험정신으로 얻은 건 많았어요.” 하며 웃음을 지으신다. 그동안 각종 요리경연대회에 나가서 수상도 많이 했고 여기저기 방송국에 출연하여 음식을 만드는 과정도 방영했단다.
지금은 강사로 출강도 하며 인제의 청정지역에서 나는 나물들로 각종 장아찌를 담가 판매하는 일을 한다. “아휴. 내가 선생님 소리를 듣고 살게 될지 누가 알았어요? 촌에서... 이 음식이 나를 인정받게 해준 고마운 것이에요.” 그런데 그런 그녀의 삶의 태도를 보고 자란 딸이 그 성격을 그대로 물려받았나보다.
음대를 졸업하고 서울로 무작정 올라가서(취직할 때 가족 누구에게도 말 하지 않고 대기업에 취직을 해서 다니며 결혼도 했고 아이를 낳아 지금 공식적으로는 ‘육아휴직’ 상태란다. 그녀도 직장을 다니며 양식조리사, 한식조리사, 궁중음식 등 자격증을 모두 다 패스했단다.
“저도 멀지 않아 직장을 그만두고 요리사의 길을 가려고해요. 음악은 직업이 아니라 삶을 윤택하게 해 주는 요소로 평생 내 삶과 함께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남편도 나도. 어린 시절에 엄마가 감자분말을 만드느라 감자 썩히려는 물을 갈아주라고 하면 냄새가 너무 고약해서 투정도 많이 부렸었는데 내 안에 엄마의 피가 흐르는 건 어쩔 수 없나 봐요. 음식을 만드는 일이 너무 즐겁고 행복해요.” 라고 하며 조리사의 길을 가는 것은 시기의 문제란다.
어머니는 딸이 자신보다 훨씬 감각이 뛰어나고 음식을 더 예쁘고 맛깔스럽게 만든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그러면서 “딸아, 에미는 너 보다 배운 것도 짧고 늦게 시작했는데 너는 배운 것도 많고 앞으로 많은 날들이 남아 있으니 더욱 잘 할 거라고 믿는다.”고 했단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보여준 음식의 시연은 ‘감자전병’, ‘감자정과’, ‘감자붕셍이’, ‘옥수수전병’ 이었다. 특히 ‘감자정과’는 어디서도 보지 못한 특별한 음식으로 감자요리 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단다.
요즘 각종 나물들을 채집하여 장아찌를 만들고 판매하는 사업도 하며 강의까지 나가니 힘들지 않느냐는 내 질문에 ‘일 하지 않으려면 먹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이 좌우명이란다. ‘도인’은 생활 속에 존재하고 있으니 산에 가서 찾을 필요가 없다는 말이 새삼 떠올랐다.
대를 이어서 한 길을 가는 ‘부자지간’, ‘모녀지간’을 요즘은 심심치 않게 본다. 그만큼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직업들의 다양함을 인정하게 세상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게 아닐까. 그것도 누구의 강요가 아닌 자발적인 선택, 부모님이 가던 길을 어깨 너머로 배우다 성인이 되어 자신의 길로 살다가는 것. 서로에 대한 공존의 극진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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