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천을 다녀와서...
햇살 속에서 어느덧 가을의 기미가 보이고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부는 이맘때쯤엔 주름진 어머니의 얼굴이 자주 생각난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지친 몸을 끌고 집으로 향할 때도 골목어귀에서 맞던 어머니의 된장찌개 냄새는 따뜻한 위로가 되어 발걸음을 재촉하게 했었다.
우리 모두는 그때 비로소 알았다. ‘음식은 맛으로 먹는 게 아니고 사랑으로 먹는다는 것’을. 또한 시간이 흐르면 그 맛의 기억은 그리움으로 우리 삶과 함께 계속 이어진다는 것을. 그런 어머님의 오래된 손맛을 찾아 길을 나섰다.
어머니의 성함은 ‘박옥림(70)’. 50여년 전에 시집을 이곳으로 왔다는 홍천군 두촌면의 집은 흘러간 세월의 무게를 짐작케 했다. 가마솥이 있는 아궁이와 구석에 장작들이 쌓여 있는 부엌도 옛날 그대로였다.
그 부엌에선 딱히 장작을 땐 불 냄새인지, 가마솥에서 나는 음식냄새인지 아니면 오래된 벽장 속의 냄새 같기도 한 친숙한 고향의 냄새가 났다. 세월은 우리에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냄새를 기억 속에 던져주고 가는 게 분명 하다.
“열아홉 살에 시집을 오니 시댁 식구들이 열여섯이여. 강원도 산골 촌 에서 어디 먹을 게 그리 만만한가? 내남없이 모두 고생들 엄청 했지, 그땐 모두들 가난해서 헐 수 없이 먹었지만 요즘은 누가 이걸 먹기나 하겠어? 그래도 우리는 그 맛을 기억하니까 가끔 별식으로 해서 먹지. 우리 애들도 다 장성을 해서 도시에서 자리 잡고 잘들 살지만 집에 내려을 땐 어릴 때 먹던 맛이 그립다고 해달라고 해서 힘들어도 해주곤 하지. 엄마의 맛이라나 뭐라나...”
그러나 음식을 하시는 내내 그 시절의 힘겨웠고 고생스럽던 일들이 떠오르시는지 가만가만 작은 한숨을 내쉬긴 하셨다 “지금은 자식들이 다 잘 살아 효도도 하고 손주들도 모두 잘 하니까 그동안 고생했던 일들이 다 잊혀지는 게 고생한 보람이 있다 싶어” 하시고는 겸연찍어하시며 순박한 웃음을 지으셨다.
그 옛날에 우선 끼니로 먹은 것은 ‘감자붕생이’, ‘감자옹심이’, ‘옥수수수제비’이고, 조리법을 달리해서 ‘감자반대기’, ‘감자적’, ‘옥수수부꾸미’, 칡잎을 싸서 만든 ‘옥수수칡떡’ 등을 해서 드셨다면서 “그 맛이 나려나 모르것네..” 하신다.
가끔 식당에서 파는 ‘감자적’과 ‘감자옹심이’는 먹어 본 맛이어서 특별히 기대하지 않았는데 순수한 감자 맛만 나는 것이 쫄깃하고 담백했다. 아, 옛날에 이런 맛으로 먹었구나. 그러나 ‘옥수수범벅’은 옛날엔 단맛을 먹고 싶어 하는 아이들은 먹지 않으려 했단다.
별달리 먹을 것이 없던 시절이라 하나라도 배불리 먹이려는 어머니와 단맛에 노출되어 먹지 않으려는 아이들과의 실랑이가 있었다는 말을 들었을 땐, 먹일 형편이 되지 못하는 부모님의 가슴이 얼마나 쓰라렸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그 중에 먹을수록 끌리는 희한 한 맛이 ‘올챙이국수’였다. 이 올챙이국수의 평가는 ‘맛이 있다’와 ‘맛이 없다’로 많이 양분된다. 아주 오래전 강원도 여행길 장터에서 하도 궁금해서 한 그릇 사서 먹고는 내 기억도 맛이 없다의 한 표를 주어왔다.
그런데 이번에 정통으로 직접 불을 때서 만들어 주신 것을 먹어보고는 맛이 있다로 돌아서게 되었다. 월까? 재료? 불? 어머 니의 손맛? 양념장을 얹어 열무김치를 곁들여 먹었는데 웬걸 ‘이런 맛을 어떤 음식에 서 맛볼 수 있을까?’ 다른 음식에서는 맛볼 수 없는 독특하고 구수한 맛이 분명했다.
어린 시절부터 먹었다면 그 시절의 추억에 젖어 다시 찾기에 충분한 맛이었다. 옛 생각들의 갈피가 두터워지게 하는 것은 음식이 주는 맛의 기억이 가장 크지 않을까. 게다가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 주시던 맛은 요즘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가슴에 따뜻한 온기가 돌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 사랑의 기억은 힘겨운 일상에서도 문득문득 가슴을 싸~아 하니 그리움에 젖어 들게 하고 어머니의 손맛을 찾아 여기저기 식당을 기웃거리는 ‘맛 사냥꾼’이 되게 하는 것이다. 언제나 그날이 그날일 것 같은 고요한 마을. 햇살 내려앉은 담장 귀퉁이에 추석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말해 주듯 대추가 영글어가고 있었다.
* 집집마다 처마 밑에는 그 해 잘생긴 옥수수를 널어두어 새해에는 더 크고 많은 알곡을 거두어 온 가족이 배불리 먹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 강원도 찰옥수수는 찐다고 하지않고 삶는다고 한다. 강원도 찰옥수수는 당도가 높고 찰기가 있지만 일반 옥수수보다 단단하다. 그래서 찌기 보다는 삶아야 제 맛을 느낄 수 있으며, 단맛을 내기위한 감미료나 소금을 넣지도 않는다. 그래야 충분한 강원도 찰옥수수의 참 맛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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