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손맛

♣ 고춘열 (1945년생 / 대정읍 상모리) 구술조사

내 친정은 안덕 난드르(대평리)다. 딸 여덟에 아들 하나. 대식구였다. 나는 얼굴도 안보고 데려간다는 셋째 딸이 었다. 난드르는 바닷가여서 먹을 것은 거의 바다에서 해결했다. 웃드르( 위쪽동네)는 우영밭이 있어서 나물을 주로 먹었다면 우리는 바다가 우영 밭이었다.

그래서 미역 등 해초류를 주로 먹었다. 그래도 쌀은 귀했다. 곤밥(쌀밥)은 명절, 제사, 잔치에 한숟가락 얻어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주식은 보리가 날때면 보리밥을, 조가 날때면 조밥을, 메밀이 날 때면 메밀가루를 활용한 조베기를 그것도 없을 때는 고구마를 주로 먹었다.

지금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6,70년대는 보리가 날 때까지 먹을 게 없었다. 그러면 덜 익은 보리를 꺾어다 쪄서 그것을 말린 후 돌래로 갈아 밥을 해서 먹었다. 그나마도 풍부하지 않아 물을 많이 넣고 죽을 쑤어 온식구가 나눠 먹었다.

우리는 식구가 많아서 어머니는 굶는게 다반사였다. 그러면 나는 눈치를 보면서 덜 먹었는데 동생은 눈치를 주어도 더 먹으려고 오히려 자기 앞으로 낭푼이를 더 끌어가서 쥐어박기도 했었다.

또한 보리조베기(수제비)를 많이 해서 먹었는데 만드는 방법은 우선 보리를 돌래에 갈아 체에 밭힌 후 가루가 되지 않은 굵은 것들은 다시 또 갈아서 체에 밭히는 작업을 반복해 보리가루를 준비한다.

그리고 알맹이를 긁어내고 난 성게껍데기를 버리지 않고 그것을 갈아서 물을 부은 후 체에 밭히면 노란 성게물이 나오는데 그 물을 갈아놓은 보리가루와 섞어 반죽을 한다. 미역에 성게 알을 넣고 물을 끓이다가 반죽해 놓은 보리가루를 손으로 뜯어서 넣으면 맛있는 성게조배기(수제비)가 된다.

먹기 전에 세우리(부추)를 송송 썰어놓으면 더 좋다. 미역국은 된장으로도 많이 해서 먹었는데 미역에 양해끈(양하순)을 넣어서 끓여 먹기도 하였고 바닷가에 산 덕분으로 북바리에 호박잎 넣고 끓여 먹기도 하였다.

지금이야 북바리 같은 것이 비싸고 귀해서 못먹지만 그때는 귀한 고기라고 생각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돈으로 바꿀 생각보다는 우선 식구들이 먹고 살아야 했기에 먹을 양식이 었지 경제적 수단이 아니었다. 바닷가에 산 덕분에 특별한 음식을 먹은 기억이라고 한다면 ‘갈치죽’이었다.

고기를 잡으러 가신 아버지가 새벽에 들어오는데 크고 싱싱한 갈치를 가지고 오신다. 그 갈치를 팔팔 끓는 물에 쌀짝 넣으면 살이 싹 발라진다. 그럼 거기에 쌀을 넣고 죽을 끓이면 베지근(담백하고 깊은맛)하여 입맛을 돋우게 하고 기운을 차리게 해주었다.

몸이 아프거나 기운이 없을 때 어머니가 해주신 특별한 보양식이었다. 그 이외에도 난드르에서는 꿩마농(달래), 개자리, 돌미나리 등 들나물들을 많이 먹었다. 특히 개자리 나물은 무쳐서 먹으면 ‘코시롱’(향긋한)해서 좋은 반찬이었다.

그리고 그 때는 배추도 귀하던 시절이라 들무를 캐다가 소금에 절이다시피 해서 김치 대신 먹기도 하였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은 보리 철이 끝나면 조를 갈았는데 ‘조코구리’(조 이삭)를 방아 찧어오면 그것을 밤새 거피하여야 했다.

그러면 동네 처녀들이 퐁낭 밑에 모여서 좁쌀을 골라내면서 칠월칠석에 견우와 직녀 이야기, 동네 총각 이야기 등을 하면서 밤을 지새웠다. 지금처럼 TV가 없어도 나름대로 재미있게 시간을 보내는 그 때 그 시절 만 느낄 수 있었던 정겨운 모습이었다.

* 자료조사 팀 : 고복임, 김태자, 현옥자, 고영란, 강이선, 양춘선, 오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