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캐나다의 화기삼은 발견 초기부터 수출을 위한 상품으로서 완벽한 매력을 가진 상품
○ 1720년 최초로 캐나다의 야생삼을 중국에 수출하는 회사가 생긴 이래 1800년대까지 홍콩과 광동으로 엄청난 양이 공급
- 오로지 수출목적으로 인삼을 채취하였는데 현지에서 25센트에 구입하면 중국에서 5달러에 팔렸기 때문(1757년 기준, ‘06 이동필)
- 1780년부터 1900년까지 120년간 미국으로부터 중국으로 건너간 건조된 야생삼의 물량은 약 2,000만 파운드(약 9,100톤)
○ 1886년 미국 스텐튼의 재배법 개발 후, 1930년대의 대공황, 2차세계대전, 중국과 단교 등으로 부침을 거듭하다 1970년대 이후 융성
- 1차계기가 된 것은 우리나라의 ‘한국전쟁’으로 고려인삼이 전혀 시장이 나오지 않은 때, 2차계기는 1974년 중국과의 국교정상화
○ 1720년부터 수출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많은 인삼전문회사가 설립되었고, 이를 뒷받침하는 국가정책이 적극 지원하여 지금에 이름
- 자신들의 화기삼이 학명으로는 퀸코포리움(Quinqeufolium)인 것을 알면서도 화기삼(American ginseng)이라 표기하여 수출
미국은 인삼 때문에 태어났다!
▷ 미국 독립전쟁 시발의 대표적인 사건은 식민지에 너무 많은 세금을 부과하여 이에 항의하기 위해 영국 국적의 선박에 실린 차를 바다에 버린 ‘보스턴 차 사건’
- 그러나 미국의 대중국 화기삼 무역을 불허하고 영국의 소버린크라운 회사가 대리하여 독점으로 막대한 이익을 갈취한 것도 큰 원인(‘95 Kim derek pritts)
- 당시 미국 독립전쟁에 참여한 주(州)들은 대부분 화기삼의 산지였을 뿐 아니라 조지 워싱턴 장군도 깊이 관심을 가졌으며 상당 부분의 군자금을 삼거래로 충당
□ 현재는 재배에서부터 수출까지 일관화 된 체계를 갖추어 내수 수요가 거의 없음에도 세계 시장을 석권
○ 캐나다에서는 주생산지인 온타리오와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정부가 중심이 되어 규격, 안전 및 상품기준, 판매 지원을 일관화
- 천혜의 자연 조건을 활용하여 우리나라의 산양삼 재배 시스템과 유기농법 등을 결합하여 상품가치를 높임
- 관심이 없는 캐나다인 대신 중국계 이민자를 활용하여 재배, 유통, 수출, 가공 등을 연계시켜 산업생태계를 활성화
○ 미국은 거의 대부분을 생산하는 위스콘신주의 마라톤카운티를 중심으로 지역 특산물화
- 당일 수확분을 규격화된 상자에 넣어 농가 앞에 두면 협회에서 수량 등을 기록하고 가져가서 유통, 판매, 가공 등을 담당
* 한자로는 화기삼농업총회(花旗參農業總會), 영어로는 Gingseng Board of Wisconsin에서 주관
○ 이 두 나라는 중국 현지 회사와의 밀접한 관계형성을 통해 주요 소비자인 중화계 주민에게 맞는 마케팅을 펼쳐 조기에 시장을 장악
- 대표적인 사례가 인삼은 열을 올리고, 화기삼은 열을 내린다는 설로 문헌 근거나 연구 결과가 없음에도 소비자에게 주입시키는데 성공
인삼이 열폭탄이라는데?
▷ 현지 사정에 밝은 중국인들이 이익폭이 큰 화기삼을 판매하기 위해 북미의 회사와 공통으로 중의학 지식인 것처럼 포장한 마케팅의 결과물
- 위스콘신주의 인삼회사 Hsu’s의 팸플릿에 한국 인삼은 양이기 때문에 음체질의 사람이 사용하고 여름이 아닌 겨울에 복용하는 것이 최선이며
- 급격하고 폭발적이므로 장기간 복용은 안 되며 장기간 복용 시 화기삼을 사용하여야 한다, 한국 인삼은 노약자에게 사용하는 것이 적합지 않다고 되어 있음
▷ 2012년 농촌진흥청은 중국(길림농업대, 광동중의대)과의 국제공동연구를 통해 승열(昇熱)작용이 근거 없음을 증명
- 중국인을 대상으로 한 임상연구 결과 고려인삼의 승열작용이 근거가 없으며, 고려인삼의 당뇨와 심혈관 질환 개선 효과, 식품으로서의 안전성도 구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