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확하게 언제라고 할 수는 없는데 중국 쪽에 남아 있는 기록을 보면 기원전에 삼이라는 용어가 등장
○ 중국 전한의 원제(기원전 48∼33년) 때 사유(史游)가 쓴 급취장(急就章)에 ‘삼(參)’이라는 글자가 처음 등장
* 급취장의 삼은 소위 ‘고려인삼’이 아닌 중국 산서성 태행산맥 일대에 자생하던 당삼(唐參)이라 보는 견해도 있음(‘03 연세대 양정필 등)
○ 인삼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것은 후한의 환제(桓帝, 132~168)때 왕부(王符)가 완성한 ‘잠부론(潛夫論)’
- 잠부론 자체는 정치서로 아무 관계가 없지만 당시 지식인들에게 인삼은 명약이라는 공통인식이 있었다는 것이 중요한 사실
- 처방에 사용된 경우는 장중경의 ‘상한잡병론’이 최초로, 늦어도 2세기 무렵에는 약재로 널리 사용되었다는 증거
○ 우리나라 인삼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도홍경(陶弘景)이 쓴 명의별록(名醫別錄, 451년)
- 백제에서 양나라 무제에게 삼을 공물로 보내왔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약재로서의 의견을 기록
왕부(83~170)의 잠부론(潛夫論)
▷ 유교에 기반을 둔 정치, 도덕, 경세 등을 내용을 담은 책으로 총 30권이며 중국을 대표하는 걸작 100선에도 선정될 만큼 우수한 학술이론서
- 인삼에 대해 언급된 부분은 ‘무릇 천하를 다스리려면 진현(眞賢)을 얻어야 한다. 이를테면 병을 다스리려면 양의(良醫)를 얻는 것과 같은 이치다. 병을 다스리려면 마땅히 인삼을 얻어야 한다.”라고 기록되어 인삼의 귀중함을 비유로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