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에는 삼한시대 이전에 들어온 것으로 보이는 감귤의 역사는 많은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음
○ 삼국시대에 귤이 있었다는 첫 기록은 712년 출간된 일본의 역사서 『고사기』와 720년에 출간된 『일본서기』
- ‘수인제(垂仁帝)의 명으로 전도간수(田道間守)가 상세국(尙世國, 제주도)에서 비시향과(非時香果, 감귤류)를 가져 왔다’(고서기)
- ‘신공왕후가 삼한에서 귤을 가지고 와서 그것을 심게 하였다’(일본서기)의 기록이 그것으로 각각 기원 후 70년, 200년경의 일
○ 우리 기록으로는 조선시대에 편찬된 고려사에 ‘백제 문무왕 2년(476년) 탐라에서 방물을 헌상’이라 기록된 내용이 최초
* 이후로는 고려 태조 천수 8년(925년) 겨울 11월 ‘탐라에서 방물을 바치다’를 시작으로 ‘방물을 바쳤다’, ‘토물을 바쳤다’라는 기록이 여러 군데 보임
○ 조선시대에는 태조 원년(1392년)부터 제주도의 공물로서 귤에 대한 기록이 계속 등장
- 공납량의 연차적인 증가와 지방 관리들의 횡포까지 가중되어 민폐가 많아 1893년 고종 31년에는 진상 제도가 없어짐
감귤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는 탐라순력도
▷ 탐라순력도는 제주도내 각 고을을 순력하면서 당시 거행했던 여러 행사장면과 자연, 역사, 산물, 풍속 등을 40폭의 채색그림으로 그린 화첩
- 조선 숙종대인 1702년 병와(甁窩) 이형상(11653-1733)이 제주목사 겸 병마수군절제사에 부임하여 제주목 화공(畵工) 김남길이 그리게 함
- 여러 종류의 감귤과 한약재를 봉진하는 그림인 감귤봉진, 망경루 후원(後園)귤림(橘林)에서의 풍악도인 귤림풍악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