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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일.과채류 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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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11. 열사(熱沙)의 땅에서 태어난 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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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수박은 원래 비싼 과일?

□ 고려시대에 원나라를 통해 전래된 수박이 우리나라에 자리잡기 까지 매우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그 때문에 매우 귀했던 과일

○ 재래종 수박 ‘무등산 수박’(일명 푸랭이)도 원나라 때 전래되었다고는 하나 재배역사가 활발해진 것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이후

- 고려 충렬왕(13세기 말)에 홍다구가 원나라로부터 가져와 개성에 심어졌다고 하나 조선시대까지도 제대로 재배되지 못함

* 조선왕조실록 세종 23년(1441) 11월 15일 편을 보면 수박 한 통 값은 쌀 다섯 말의 값과 같았다고 함

수박 때문에 신세 망친 사람들

▷ 세종 5년 한문직이라는 내시는 수라간에서 수박을 훔쳐먹고 곤장을 100대 맞은 후 귀양살이를 했다는 기록이 있음

- 세종 12년에는 궁중에 물품을 공급하는 내섬시 관리가 수박을 훔쳐먹다가 곤장 80대를 맞은 기록도 남아 있음

- 연산군일기(1507)에도 북경에 사신으로 다녀온 김천령이 수박을 구해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관참시하고 자식을 종으로 삼으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음

* 죄목으로서 수박을 빙자하였을 만큼 귀하고 비싼 과일이었다는 의미

□ 널리 재배되기 시작된 것은 16세기 이후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근대 이전까지는 여전히 고급 과일이었음

○ 최초의 재배법이 기록된 우리 문헌은 강희맹의 ‘사시찬요초’(1480년 경)이며 오이, 참외, 수박의 재배법을 월령가 형태로 기재

○ 여전히 재배가 어려워 영조는 공부에 열심인 유생들에게 수박을 내려 위로하였을 정도로 민간에서는 꿈도 못 꿀 진상품

* 1800년대까지 제주의 말과 귤, 남부지방의 수박은 궁중의 중요한 진상품으로 관리들의 수탈 대상이 되어 정약용이 그 안타까움을 시로 남겼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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