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돌이동, 물이 돌아가는 하회(河回)마을은 풍산 류씨 반촌이다. 산은 강을 감싸 안고 강은 산을 휘감아 흐르는 형상, 물이 휘감아 흐르고 있는 땅의 형태는 짐을 가득 실은 배가 나아가려 하는‘행주형(行舟形)’이기도 하려니와, 연꽃이 물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여‘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이기도 하다.
모두 풍요와 다산을 의미하는 것이니, 이 마을이 오늘에 이르기까지 풍요를 이루고 나라에 훌륭한 인재를 다투어 내어놓은 것은, 그렇게 이미 정해진 바였겠다. 반촌이었으나, 마을을 이루는 계층 모두가 한몸 같이 600년 세월을 살아내 온 곳이기도 하다.
하회의 대표 공연으로 자리잡은 별신굿 탈놀이가 양반을 풍자하는 것이었으니, 넉넉한 품새를 짐작할 수 있다. 그 품새를 비치는 대표적인 댁이 풍산 류씨 대종택 양진당이다. 서애 류성룡 대감 또한 영의정에 제수되기 전까지 생활했던 곳이기도 하다.
♣ 풍산 류씨 대종택 양진당의 손님상 상차림
양진당의 위엄과 기품은 상차림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상차림은 묵채밥, 보푸라기(대구포, 육포), 다시마채, 밀쌈, 육말, 메뚜기볶음, 전과 적, 상어피편, 오방색연근찜, 약과, 다식, 약식, 정과, 강정, 마른안주(오징어 쌈, 인삼대추전, 서여향병, 표고버섯 지짐, 전복초), 술로 이루어져 있다.
♣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 잡는 맛과 향, 꾸밈이 있는 상차림
하회마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양진당을 찾는 손님도 변모한다. 우리 맛의 기품이 세계인을 향해 열리는 것이다. 손님상의 꾸밈 또한 각별히 신경 써, 음식이 이뤄지는 원리를 상차림에 구현하기 위해 애쓴다.
입암 종가의 이정숙 종부(58세)는 풍산 류씨 대종택 양진당 음식의 기품을 상징한다. 그의 손에서 피어나는 음식들이 그러하다. 그 가운데는 상어피편도 있다. 상어에서 살을 제거하고 난 껍질을 손질한다.
껍질 다듬는 일이, 종부의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랄 일이다. 그렇게 다듬은 껍질만 가지고 오래 조린다. 조린 뒤에 반정도 식혀 홍고추, 풋고추를 넣어 굳힌다. 가지런히 썰어서, 초간장에 실고추와 마늘 채를 넣어 곁들여 놓는다.
▪ 묵채밥
메밀묵과 도토리묵, 청포묵은 색을 들여 만들 수 있다. 채 썬묵에 김가루를 넣고 묵은 김치도 채를 썰어서 넣는다. 더운 물을 살짝 헹구 듯 부어 먹는데, 먹을 때 어느 정도 온기를 가져야 제맛이 난다. 밥과 섞어 먹기도 하고, 그냥 먹기도 한다.
▪ 보푸라기(대구포, 육포), 다시마채
대구포보푸라기는 대구포를 물에 담가 짠맛을 빼고 쪄서 잘게 찢고 두드린다. 체에 내리고 두드리고를 반복해 곱게 만든다.
육포보푸라기는 만들어 놓은 육포를 방망이로 두드려 거친 것은 버리고, 참기름과 설탕 약간을 넣어 무친다. 다시마채는, 다시마채를 썰어 기름에 튀긴 다음, 얼른 건져내 설탕만 약간 넣고 섞는다. 뒤에 거피한 깨를 넣어 장식한다.
▪ 밀쌈
오방색을 내어 색도 맛도 정성을 담았다. 홍고추, 풋고추, 쇠고기, 죽순, 표고버섯, 달걀지단을 채로 썰어 속을 준비한다. 쌈을 씌우는 겉옷은, 밀가루에 빨강(백년초, 맨드라미, 자색고구마 등), 검정(흑미), 노랑(치자), 흰색, 파랑(쑥 가루) 물을 들여 입힌다.
▪ 육말, 메뚜기볶음
육말은 쇠고기를 잘게 다져 소금과 간장으로 간을 무치고, 고추장에 참기름을 넣고 볶아서 만든다. 거피한 깨와 잣을 넣는다. 메뚜기볶음은 메뚜기 말린 것을 잘 손질해서 볶고 깨로 장식한다.
▪ 전과 적
새우전과 쇠고기, 표고버섯을 잘게 다져 넣고 두부와 달걀옷을 입혀 부친 육원전, 쇠고기, 오이, 도라지, 당근, 지단, 표고버섯을 눌러 어슷 썰어놓고 꼬치에 꿴 화양적을 함께 놓고 꾸민다.
▪ 오방색연근찜
연근의 구멍구멍에 오색물을 들인 쌀을 쪄서 박아 넣는다. 가운데는 흑미를 박았다. 연은 간을 조금해 살짝 찌거나 삶는다. 오색 찹쌀을 물을 들여 쪄야하므로 한 솥에 다 할 수 없다.
▪ 약과, 다식, 약식, 정과, 강정
다식은 갖가지 재료로 갖은 색을 내었다. 작게 모양을 내어, 한입에 맞춤하게 만들었다. 초록색, 노란색, 분홍색, 검은색, 흰색 등 모두 열 가지 색과 모양을 내었다.
사과정과는 사과를 건조기에 말려 은행나뭇잎 모양틀로 찍었다. 우엉정과는 솥에 삶은 우엉과 설탕 약간 넣고 계속 조려 만든다. 배, 당근, 연근도 같은 방식으로 만든다. 이밖에도 약과, 약식, 강정 등이 있다.
▪ 마른안주
마른안주는 오징어쌈, 인삼대추전, 서여향병, 표고버섯 지짐을 놓고 한가운데 전복초로 장식했다. 오징어쌈은 마늘쫑을 가운데 넣고 칼집을 넣은 오징어 살로 만다.
서여향병은 마에 찹쌀가루를 입혀서 지져 낸다. 거기다 꿀을 입히고, 잣가루를 고루 뿌려 고명을 삼는다. 꽃과 줄기는 대추로, 잎은 국화잎으로 장식한다.
♣ 물은 하회를 굽이쳐 흘러가지만 중심은 늘 그 자리에, 이정숙 종부
풍산 류씨 입암 선생 종가의 종부 이정숙(59세) 여사는 스물넷 나이에 풍산 류씨 가문으로 시집왔다. 친정은 진성 이씨 집안, 퇴계 선생의 15대손이다. 그 댁 또한 선비의 기개를 잃지 않은 곧은 집안이었다. 그 대표적인 분이 향산 이만도 선생이다.
선생은 조선 후기 문신이며 독립운동가로 을미사변 때 안동에서 의병을 모아 일제에 항거하다가, 강제병합이 이뤄졌을 때는 24일간 단식해 순국한 분이다. 선생 아래 3대가 독립운동에 투신해 27명의 독립운동가를 낳았다.
이정숙 종부는 결혼 후 종손의 직장을 따라, 안강을 거쳐 울산에 정착한다. 종손의 퇴직과 함께 2006년 종택으로 들어오게 된다. 1년에 한달 가까이 종가의 크고 작은 제사를 모시기 위해 회사를 빠지고 종택을 찾는 종손과 함께 두 아들 건사하며 제사를 챙기느라 혼곤한 시절을 보냈다.
1980년 동짓달 스무 날, 시아버지 9일장을 치르던 때였다. 매서운 동지 추위에 교통이 두절되어 가까운 주변 일가만으로 치른 장례였지만, 소 두 마리, 쌀 아홉 가마와 보리쌀 한 가마를 썼다.
이정숙 종부는 풍산 류씨 내림 가양주와 이화주를 통해, 소동파가 반했다는 중국의‘동정춘’못지않은 우리 술 문화를 세상에 알릴 작정이다.
배꽃 필 무렵 술을 담는 이화주는 쌀로 누룩을 만드는데, 곱게 빻아 달걀만하게 만든 뒤, 짚(혹은 솔잎) 속에 넣고 적당한 온도로 두어 이화곡을 만든다. 멥쌀과 찹쌀을 누룩에 섞어 구멍 떡을 만들어 따뜻한 물에 익힌다. 따뜻할 때 윤기가 나도록 손으로 치댄다.
거기 살짝 엿기름을 섞어 식힌 뒤, 누룩을 넣어 발효시킨다. 물이 들어가지 않으므로 그렇게 만들어진 이화주는 빡빡하다. 이 이화주는 태워(물에 희석해) 고급 막걸리로 먹거나, 젖 부족한 아이, 집안의 어른들이 자시도록 한다. 쌀도 귀한 시절, 이화주는 정말 귀한 술이었다.
♣ 진리를 기르는 집, 양진당에서 우리는 무엇을 찾고 기르는가
풍산 류씨는 풍산 상리에 살았으므로 본향이 풍산이다. 제7세 전서(典書) 류종혜(柳從惠) 선생이 물의 흐름이나 산세며 기후조건 등을 몸소 살펴, 이곳으로 터를 정해 세거했다고 한다. 입향에 관하여 종가에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마을에 터를 잡고 집을 지으려하자, 기둥이 세 번이나 넘어져 크게 낭패를 당하게 된다. 어느 날 꿈에 신령이 나타나, ‘여기에 터를 얻으려면 3년 동안 활만인(活萬人) 하라’는 계시를 준다.
입향조께서는 큰 고개 밖에다 초막을 짓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음식이며 노자, 짚신을 나누어주고, 참외를 심어 인근에 나누어주면서 수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서야 하회마을에 터전을 마련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입향한 뒤 풍산 류씨 가문은 입암(立巖) 류중영(柳仲영), 귀촌(龜村) 류경심(柳景深),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선생 등 조선 중기 명신들을 배출하며 더욱 번성하게 된다.
진리를 기르는 집, 양진당(養眞堂). 양진당은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건물로 보물 제306호다. 하회에서는 보기 드물게 정남향이다. 양진당에는‘입암고택(立巖古宅)’이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있는데 입암(立巖) 류중영 선생의 종택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