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창 권부잣집의 특별 하지 않은 듯 참 특별한 조리법
‘권부잣집’으로 불리는 안동권씨 추밀공 가문의 음식은‘정성과 시간’을 얼마나 많이 쏟느냐에 달려 있다. 제사 준비만 일주일 정도 걸리는데 권부잣집 음식은 오래 불을 지펴야 하는 탓에, 때를 정확히 맞춰야 한다. 사람이 붙어 몇 번이고 확인해야 한다.
이렇게 음식마다 지극정성을 다해야 한다. 또한 각 음식에는 제철이 있어 각자의 재료가 맛있을 때 음식을 해야 한다. 조리할 때 뿐만 아니라 재료를 구하는 시기도 적절하게 맞춰야 한다.
권부잣집 장아찌는 고추장으로 유명세를 타기 전부터 속 깊은 맛의 내력을 가진 장아찌들로 차린 술상이다. 찹쌀청주, 홍삼장아찌, 굴비장아찌, 전복장아찌, 더덕장아찌, 약과, 유자편강으로 입맛 까다로운 시아버지 입맛을 사로잡을 만큼 화려하다.
① 찹쌀청주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술로, 찹쌀 한 되를 물에 담갔다 찐 다음 냉수를 넣어 끓이고 식 혀, 쌀과 누룩을 넣어 만든 술이다. 누룩은 담근 지 5일 된 것을 쓴다. 주무르고 항아리 에 넣어서 겨울에는 덮어 두고, 봄에는 넓은 마루에 놓아둔다. 찹쌀로 만들어서 뒷맛이 깔끔하다.
② 육포
쇠고기의 우둔 부위를 결대로 길게 떠서 힘 줄이나 기름기가 없도록 다듬는다. 간장 양 념을 해서 간이 잘 배도록 무친다. 물을 조 금 넣으면 부드럽고 윤기가 난다. 이어 채반 에 고기가 붙지 않게 기름을 조금 바르고 고 기를 펴서 햇볕에 말린다. 잣이나 깨를 고명 으로 얹기도 한다.
④ 굴비장아찌 ⑥ 전복장아찌
굴비장아찌는 굴비의 내장과 비늘, 지느러미 를 제거한 후 간해서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 말린다. 방망이로 두들겨 고추장에 박아둔다. 3~4개월 정도 지나면 새로운 고추장으로 갈아준다.
이 과정을 2회 정도 반복한다. 굴비의 껍질과 뼈를 골라내고 먹기 좋은 크기로 찢어서 고추장에 박아 놓기도 한다. 전라도 지방에서 주로 먹는 굴비장아찌는 임금님께 진상되었던 음식이다. 전복장아찌는 전복을 살짝 쪄서 삶은 다음 고추장에 박는다.
⑧ 홍삼장아찌 ⑪ 더덕장아찌
홍삼장아찌는 순창 전통고추장에 4~6년 된 홍삼을 넣어 장기간 숙성시킨 것으로, 금산에서 사온 홍삼을 쓴다. 홍삼을 다듬은 다음 간을 해서 고추장에 박아둔다.
더덕장아찌는 더덕을 껍질을 벗긴 다음 방망이로 두들겨 납작하게 만들어 준비한다. 소금으로 간을 해 6개월 동안 둔 다음 다시 6개월 동안 간장에 박아둔다. 마지막으로 고추장에 1년 반 에서 2년 정도 박아두면 더덕장아찌가 완성 된다.
③ 유자편강 ⑫ 생강편강 ⑭ 모과편강
일반적으로 편강은 생강을 설탕에 조려 말린 것을 말하는데 안동권씨 추밀공 가문에서는 유자, 매실 등 다양한 재료로 편강을 만들었다. 유자편강은 씨를 빼고 얇게 채 썰어서 말린 유과를 조청에 넣고 끓인다.
생강편강은 생강을 깨끗이 손질해 얇게 썬 후 설탕으로 조린다. 하나하나 펴서 설탕을 묻혀 준다. 모과편강은 모과를 적당한 크기로 얇게 썰어서 만든다. 편강을 조릴 때 물기가 없어지도록 잘 조려야 한다. 물기가 남아 있으면 상한다.
⑤ 매실정과 ⑬ 동아정과
매실정과는 생매실을 껍질을 벗겨 마름모꼴로 얇게 썰어 설탕물에 조린 후 설탕에 골고루 묻힌 것이다. 동아를 손질할 때는 꼬막 껍질을 잘라서 구워 가루내어 동아에 묻힌 뒤 사흘 동안 껍질만 재고, 씻어 살짝 물에 데쳐낸 다음 말려 조청에 넣고 졸인다.
동아정과는 시간이 지날수록 붉은 빛이 더해져 검붉은색으로 변한다. 물엿을 흠뻑 머금은 동아정과는 씹히는 맛이 잘 익은 배처럼 아삭아삭하다.
⑦ 다식
흰깨, 검은깨, 송화가루를 각각 조청으로 반죽해 다식판에 찍는다. 송화가루는 소나무의 꽃가루를 말하는데 봄철에 잠깐 동안만 채취가 가능하다. 독특한 풍미를 내므로 예부터 강정, 다식을 만드는 데 쓰였다. 단백질, 탄수화물, 무기질이 풍부하고 비타민C가 비교적 많다. 흑임자와 참깨는 국내산이 아니면 반죽이 잘 안된다.
⑨ 깨엿강정 ⑩ 약과
깨엿강정은 검은깨와 흰깨를 각각 조청에 반죽한 후 편평하게 민다. 마름모로 모양 있게 썰면 완성된다. 약과는 밀가루에 찹쌀청주, 생강즙, 참기름을 넣어 반죽한 후 꽃 모양을 내 튀긴다.
♣ 도시 밥상을 다스리는 고집스런 맛, 이기남 할머니
이기남 할머니는 전남여고를 막 졸업하고 안동권씨 부잣집으로 시집왔다. 남편은 한 살 아래 광주일고 3학년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올라가더니, 동경에서 2년, 서울에서 4년, 광주일고 교사로 발령 나자 광주로 갔어.”
남편이 없는 사이 이기남 할머니는 큰 시아버지, 큰 시어머니, 시부모님 게다가 막내 할머니의 뒷바라지를 다 했다. 3년 동안 친정에 못 갔을 정도로 고된 시집살이를 했다. 해방 뒤 토지개혁으로 가세가 기울고 1968년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만석꾼 집안에 위기가 닥친다.
그렇게 가족과 근근덕신 생활을 이어간다. 그 20년 질곡을 거치면서도 가문의 장맛은 끝내 저버릴 수 없었다. 장아찌와 고추장이 입소문을 타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다.
마침내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고추장 사업을 시작한다. 지금도 장 담그는 일은 이기남 할머니가 며느리, 딸들과 함께 집안의 내림 방식을 고집하고 있다. 지금은 브랜드 고추장으로, 도시 사람들의 밥상을 다스리고 있다.
♣ 지금은 고추장 만석꾼, 권부잣집
안동권씨 부잣집은 80년이 넘은 깊은 한옥 저택으로 만석꾼 시아버지가 터를 닦은 곳이다. 만석꾼이었을 당시에는 냇가까지 토지 대장에 들어갔을 정도로 어마어마 했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일가였으며, 지금은 불에 타 흔적이 없지만 큰 솟을대문과 행낭채도 있었다. 지금도 안동권씨 권부잣집엔 어마어마한 재산이 있다. 다름 아닌 고추장.‘순창하면 고추장.’이 등식은 이기남 할머니와 그 가족들에 힘입은 바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