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인당은 판소리 공연장으로 기획된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고택 자체가 큰 소리 울림통 역할을 한다. 마루에 앉거나 서서 노래를 할라치면, 그 소리가 건물 안 구석구석은 물론, 앞·뒷마당에 고루 스미며 울려댄다.
♣ 소리와 함께 기운을 북돋는
학인당은 판소리 공연장으로 기획된 상징적인 건축물이다. 고택 자체가 큰 소리 울림통 역할을 한다. 마루에 앉거나 서서 노래를 할라치면, 그 소리가 건물 안 구석구석은 물론, 앞·뒷마당에 고루 스미며 울려댄다.
예향의 고장 한복판에서 권세를 누리기보다 지역의 문화예술인을 찾아 양성하고 소리판을 마련해 기운을 북돋워 온 것이니, 임방울·박녹주·김연수·박초월·김소희 명창 같은 소리 손님이며, 귀한 손님들이 학인당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전주시 고사동 ‘영화의 거리’에는 효자정려각이 있다. 현종 때 가선대부 호조참판을 제수받은 이 댁의 규방(奎邦) 어른을 비롯해, 진석(晋錫), 행량(行良), 응만(應晩) 어른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차례로 세워진 것이다.
인재공 백낙중 선생 또한 뛰어난 효자로, 고종황제로부터 승훈랑(承訓郞) 영릉참봉(英陵參奉)에 제수되고 ‘효자승훈랑영릉참봉수원백낙중지려(孝子承訓郞英陵參奉水原白樂中之閭)’ 현판을 하사받아 학인당 솟을대문에 걸었다.
♣ 세상을 챙겨온 모심상차림
모심상차림은 한채, 맛나지, 누르미, 생합작(대합전), 쇠고기전골, 미나리물김치 등을 차려 올렸다.
▪ 한채
늦가을 무와 석류가 나오는 시기에 해먹는 김치다. 채 썬무를 소금 간을 해서 버무려 놓는다. 배는 얇고 납작하게 저민다. 생강은 채치고, 밤은 얇고 납작하게 저며 놓는다. 쪽파도 잘게 썰어놓는다.
갖은 재료 손질이 마무리되면 간해 놓은 무와 함께 버무려 그릇에 담는다. 석류는 마지막에 한채 위에 올려 시큼한 맛과 붉은 색감을 더해 준다.
▪ 맛나지
얇게 저민 쇠고기를 살짝 말린 다음 장조림하여 저장성을 높인 음식이다. 저민 쇠고기에 간장, 꿀, 배즙, 참기름과 반으로 자른 마늘 등을 넣고 조린다. 고명으로 잣을 얹는다. 이 댁의 오래 묵은 간장 맛이 맛나지의 맛을 결정한다.
▪ 누르미
쇠고기, 쪽파, 다시마, 고사리, 애호박고지 같은 재료를 적당한 크기로 자르고 꼬치에 끼워 달걀 옷을 입혀 팬에 지진다.
▪ 생합작
대합전이라고도 부른다. 백합 속을 꺼내 잘게 다진 뒤, 쇠고기, 호박, 당근, 표고버섯, 다시마를 다져 넣고 버무려 살짝 볶는다. 볶은 재료를 다시 백합 껍질에 편평하게 담고 그 위에 달걀옷을 입혀 팬에 지진다.
▪ 미나리물김치
일반 물김치 만드는 법과 비슷하다. 이 댁에서는 5년 묵혀 간수를 뺀 소금으로 간한다. 찹쌀 풀을 쒀서 아주 조금만 섞어 준다. 미나리, 무, 배추, 얇게 저민 마늘에 생강즙을 약간 넣어 만든다. 잣을 살짝 띄워 상에 낸다.
▪ 쇠고기전골
국이 없을 때 급하게 만들어 내놓는 음식이다. 콩나물, 두부, 쇠고기를 다져서 간장 양념한 것, 파를 전골 그릇에 담아 끓인 후, 달걀을 노른자가 깨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풀어 모양을 낸다.
♣ 종택을 문화와 예술의 중심으로 서화순 종부
“얼굴 하얀 여자가 우리 집안을 일으키니, 그대와 나는 천생연분이요.” 인재공 종가의 서화순(57세) 종부가 받았던 청혼이다. 종부는 김제 달성 서씨 집안의 막내로 태어났다. 시조부님 건강 탓에 혼례를 서둘렀는데, 약혼 뒤 바로 세상을 떠나셨다.
시집오자마자 1년 상을 치렀다. 보름마다 산더미 같은 전을 부치며 종가의 일상을 시작한 것이다. 처음 10년은 외출도 없이 종택을 쓸고 닦으며 살았다. 시아버님부터 남편, 시동생, 아이들, 집안 식구들까지 뒷바라지해야 하는 종부의 삶은 고단했다.
잠시 종가를 떠나 있기도 했다. 종손(백창현, 62세)의 사업이 어려워져 일을 접고 잠시 산중생활을 하게 되자, 시어른의 양해를 구해 아이들과 독립생활을 한 것이다. 자유로울 줄 알았던 독립생활은 종부의 생각을 바꿔놓았다. 산에서 내려온 종손과 다시 종택으로 돌아오면서 종가의 기운을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다시 시작된 종택의 삶은, 예전과 달랐다. 10년을 병석에 누운 시아버님 돌보는 일과 함께, 고택체험이며 차 마시기 체험과 같이 종택을 문화와 예술의 중심으로 올려놓는 ‘기획자’의 삶, 어지간한 목수 못지않은 고택전문가의 길이 열린 것이다.
♣ 백범 선생의 자취가 생생한 종가의 종택, 학인당
학인당은 전주시 교동 한옥마을의 대표 고택으로, 수원 백씨 인재공 백낙중 종가의 종택이다. 해방되고, 백범 김구 선생이 한독당 전북도당 창당을 위해 전주를 찾았다. 구름떼 같은 인파가 몰렸다. 그날 백범 선생은 학인당에서 하루를 묵는다.
학인당은 아들에게 ‘만석꾼 재산보다는 수백 년을 갈 집’을 선물한 아버지의 속깊은 사랑이 담겨 있다. 1908년, 이 종택을 지을 당시 돈으로 4,000석의 공사비를 들였다.
목재는 백두산과 압록강, 오대산 일대에서 최고급으로 구하고 궁궐 건축에 참여한 도편수와 대목장을 불러, 2년 반 시간을 들여 지은 집이다. 집의 전면은 모두 창을 냈으며 지붕의 정면에 돌출시킨 박공면에도 창을 내어 다락의 채광과 환기를 꾀한 2층 구조의 집이다.
내부는 복도로 연결되어, 개방되어 있되, 합리적인 공간구조를 보여준다. 앞뜰에는 한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는 자연냉장고 ‘땅샘(우물)’이 있다. 학인당은 다시 한 번 전주의 예술, 음식 문화의 중심으로 도약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이 학인당이라는 매개를 통해 전주문화의, 종가의 향기에 취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