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최씨 평도공 종가의 종택 자리는 지금 서울대공원 동물원이 되었다. 아직 종택이 위엄을 차리고 그 자리에 곧게 자리하고 있을 때 이야기다. 골 깊은 청계산 그늘에 놓인 마을의 종가에서는 대대로 곰탕을 만들어 어르신 보양식으로 삼았다.
♣ 효심과 함께 깊어지는 죽 맛
전주 최씨 평도공 종가의 종택 자리는 지금 서울대공원 동물원이 되었다. 아직 종택이 위엄을 차리고 그 자리에 곧게 자리하고 있을 때 이야기다. 골 깊은 청계산 그늘에 놓인 마을, 대대로 곰탕을 만들어 어르신 보양식으로 삼았다.
꼬리곰탕, 사골곰탕, 양탕 같은 음식이 장수식품으로 대를 이어왔다. 골이 깊으니, 다니는 차도 적고, 육류를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자연, 고기반찬보다 호박말림, 무김치, 배추김치, 나박김치 같은 채소 반찬으로 담백한 식단이 자리 잡게 되었다.
조용기 종부의 시어머니 박일채 노종부는 2007년 9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10년 병치레 동안 종부는 사골국물과 갖은 죽으로 편안하게 식사하실 수 있도록 살펴서 봉양했다.
시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도 죽 한 그릇을 다 비우시고는, ‘너는 죽장사 해도 되겠다. 죽을 이렇게 맛있게 끓여내니……’ 하셨다.
돌아가시기 전에 치매로 고생하신 그분이 종부의 음식을 두고 마지막 남기신 말씀이 되었다. 그 덕에 죽 맛을 간간이 보았던 손자들이 와서 푸념하곤 한다. “아파서 죽을 사 먹었는데, 할머니 죽 맛이 안 나요.”
♣ 병치레 잦은 어르신 위한 죽상차림
사골김치죽, 아욱죽, 잣죽, 전복죽, 사골흰죽에 팥죽과 콩죽, 호박죽과 무죽까지 아홉 가지 갖은 죽에 배추김치, 숙깍두기, 깍두기, 나박김치를 곁들였다. 식사를 마친 다음, 식혜와 수정과로 상을 물렸다.
▪ 사골김치죽
묵은김치를 씻은 뒤 곱게 다져 참기름에 볶다가 사골국물을 붓고 찹쌀을 넣어 끓인다. 센불에 끓이다가 끓으면 약한 불에 마저 끓인다. 고명으로 김치 채와 통깨와 실파 다진 것을 올린다.
▪ 아욱죽
사골국물에 쌀을 넣고 끓인다. 아욱은 한 번 씻어, 왕소금을 듬뿍 넣고 으깨서 파란 물이 빠지면 뻣뻣한 아욱잎이 보들보들하게 되는데, 그 아욱을 넣고 된장을 풀면 된다. 고명으로 아욱이파리와 마른 새우를 올린다.
▪ 잣죽
물에 불린 쌀을 넣고 끓이다가 다지거나 간 잣을 넣는다. 처음부터 넣으면 잣이 눌게 되니, 한참 끓이다 넣는다. 약하게 소금 간을 해서 상에 올린다.
▪ 전복죽
손질한 전복은 내장까지 발라 살과 함께 다진다. 다진 전복을 참기름에 볶다가 물을 붓고 찹쌀을 넣는다. 애벌 끓인 뒤 약한 불에 한참 끓이면 된다. 고명으로 당근 잘게 썬 것과 깻잎 채를 올린다.
▪ 사골채소죽
사골국물에 찹쌀을 넣고 애벌 끓여 약한 불에 저어가면서 한참 끓이다가 버섯·양파·당근·피망을 넣고 한소끔 더 끓이면 된다. 고명으로 당근·버섯·고추 잘게 썬 것을 올린다.
▪ 숙깍두기
무를 뚝뚝 잘라서 물을 붓고 삶는다. 한참 끓여 푹 뭉그러지도록 한다. 식힌 다음 소금·새우젓 조금으로 간하고, 파·마늘·생강·고춧가루를 넣고 버무리면 된다. 서울 전통 반가음식으로 이가 상한 어른들을 위해 올리는 음식이다. 효의 의미가 강하다.
♣ 발안 장터 사진관 사진의 인연 조용기 종부
조용기 종부는 스물셋 나이에, 이웃에 시집와 살던 종손의 누이 소개로 최종수 종손을 처음 만난 그 자리에서 약혼 사진을 찍게 되었다. 발안 장터 사진관에서다. 그리고 혼례를 치르자마자 속절없이 부대로 복귀한 남편 대신, 막계리 시댁 살림을 돌보기 시작한다.
병중인 시어른 수발과 집안 대소사를 치르면서 50여 년 세월을 버티어온 것이다. 그 애틋한 마음을 높이 산 과천 시흥향교로부터 1975년 효부상을, 과천시에서 1991년 과천시민대상을 받기도 했다. 시어른들 모두 세상을 떠난 지금 그의 손길은 주위 어려운 노인분들을 향해 있다.
새벽을 마다치 않고 호출이 오면 거동이 불편한 노인 수발에 나선다. 그는 매듭장인이기도 하다. 매듭공예 강사자격증을 따서, 무료강습에도 하루가 바쁘다. 친정에서 전통식으로 혼례를 올리고 트럭 타고 설레며 시집을 온 스물세 살 고운 손이, 벌써 일흔셋을 넘겼다. 그 굵어진 손마디에 ‘사랑’이라는 글자가 스며있다.
♣ 맥계 최씨, 평도공파 종가
응달말 전주 최씨는 ‘맥계 최씨’라고도 불린다. 과천시 막계동에 세거하였던 전주 최씨 일가의 별칭이다. 막계리의 전주 최씨는 시조인 문열공 최순작의 8 세손 평도공 최유경(崔有慶) 선생을 파조로 성립한 평도공파다.
평도공 선생으로부터 500년 세월을 넘게 과천에서 세거했다. 최유경 선생의 아들 판윤공 최사위 선생은 1404년(태종4년) 황해도 관찰사와 한성부판윤을 지냈다. 지난 100년 사이, 막계리 전주 최씨 종가에는 두 번의 시련이 있었다고 한다.
한 번은 지금 종손의 조부님 대에 가세가 기운 것이다. 조부께서 일가붙이의 재판에 잘못 관여하시어 크게 낭패를 당하고 가산 대부분을 잃었다. 또 한번의 시련은 지난 1977년 막계리가 서울대공원 부지로 책정되어, 조상의 선영이며 대대로 이어 살아온 고향을 떠나게 된 것이다.
용인시 남사면에 묘역을 조성해 500여 년 동안 막계리에 모셨던 조상의 묘 52기를 이장하고, 묘소 앞 비석 12기는 막계리에 모아 보존하게 되었다. 거주지도 옮겨 과천시 문원동 이주단지에 정착하게 된다. 2011년 한여름부터 가을 초입까지 과천문화원에서는 특별한 유물전시회가 열렸다.
최종수(74세) 종손이 500년 내력을 가진 집안 유물과 30여 년 동안 모은 과천 관련 생활사 유물 12,000여 점을 과천문화원에 기증하면서 열린 기증유물전이다. 과천문화원장을 역임한 종손은 과천향교 전교를 맡아 전통문화예절 보급에 힘쓰고 있다. 2011년 대한민국 문화훈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