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성으로 천 년의 맛 지켜온, 한국의 종가음식
종가하면, 이끼 낀 돌담 사이에 기대선 솟을대문, 그 안 깊숙이 자리 잡은 부엌에서 풍겨나는 푸짐한 음식이 떠오른다. 한 문중의 큰집으로, 종갓집에는 철마다 조상을 섬기는 다양한 제례음식이 있고, 가족들의 통과의례음식이 있고, 손님을 맞이하는 접대음식이 있다.
이것이 우리 음식을 이야기하면서 종갓집 음식이 빠져서는 안 되는 이유다. 12년 동안 전국에 흩어져 있는 종가 123집을 찾아 350여 가지 음식을 취재하면서 놀랍고 감탄스러웠던 점은 우리 음식의 다양성이었다.
한 집안에서 50가지 이상 가양주를 빚는가 하면, 철따라 수십가지의 떡을 만들고, 발효음식인 간장, 된장, 고추장은 물론 김치, 장아찌를 수십여 가지나 만들었다. 지역에 따라 다른 것은 물론이고, 가풍이나 쓰임, 그리고 종부의 손맛에 따라서도 다 달랐다.
똑같은 재료로 같은 맛을 내는 집은 한 집도 없었다. 세계 어느 곳에서 이처럼 한 가지 재료로 수많은 요리법을 창출하는 솜씨 있는 나라가 있을까. 미미(美味)의 절정에 달하는 음식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수백 년 맛과 멋을 지켜온 종부들의 삶이 그대로 투영된, 정체성이 확실한 음식이라는 점이 더 큰 자랑거리다.“우리는 천 년의 삶을 그대로 살고 있습니다”라고 한 어느 댁 종손의 말처럼, 종갓집 음식 맛은 시대에 따라 가볍게 변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음식문화 발전에도 큰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그 역사성을 뒷받침해주는 요리서도 있다.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에서 전해오는 450년 된『수운잡방』, 350년 전에 안동장씨가 쓴 한글요리서『음식디미방』, 은진송씨 문중에서 전해오는『우음제방』과『주식시의』가 그것이다.
우리의 전통문화를 고스란히 이어온 종가의 내림손맛은, 가문의 권위를 내세우는 화려함보다 만드는 이의 정성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때마다 격식을 갖춰 조상께 제례음식을 올리고, 정성껏 만든 음식을 나누면서 집안과 마을공동체의 화합을 이끈 두레정신도 담겨 있다.
농촌진흥청에서 주관하는 이번‘종가∙명가 음식전시회’를 통해 사라져가는 전통음식을 보존하고, 현대인들의 입맛에 맞는 음식으로 종가음식이 거듭나길 바란다. 더불어 종가음식이 세계화가 되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
* 종가문화연구소 소장 이 연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