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식은 그의 논문 “프랑스의 민족 정체성과 포도주” 에서 ‘집단 정체성(Identite Collective)’ 인용을 하면서 또한 1987년 프랑스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당신에게 프랑스인이라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라는 질문에 1위가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2위가 자유를 수호한다, 3위가 프랑스어를 말한다, 4위의 대답이 “홀륭한 포도주를 좋아한다고 응답했다.” 라는 이야기를 Georges Durand 책에서 인용하면서 이야기를 하고 포도주의 제조가 프랑스 특정 지역(terroir)에서 생산한 특정 시기(millesime)의 특정 포도(cepage)로 만들고 장기간의 시간을 요구하고 이러한 포도주의 재료와 생산과정의 특징이 민족 정체성의 상징이라는 측면에서 맞고 또한 프랑스에서는 와인을 프랑스의 지배적인 종교인 가톨릭에서 미사용으로 사용하고 발전시켜왔다는 점에서 “예수님의 피” 라는 의미에서 문화적 의미를 보유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68)
로마제국 멸망 이후 교회와 수도원을 통하여 포도주의 전통이 이어져 내려왔고 또한 이탈리아나 스페인보다 프랑스에서 와인이 더 정체성을 갖게 된 계기로 17세기부터 베르사유(Versailles)를 중심으로 한 프랑스 궁정문화가 서구를 지배하는 문화로 등장하게 된 것을 들었다.
18세기에는 서유럽의 국제사회에서 포도주는 이미 프랑스라는 나라를 대표한 상품으로 등장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정치적 민족주의의 부상과 경제적 산업화 및 사회적 대중화가 연결하게된 것을 들었다.
이와 같은 프랑스인에게 정체성으로 의미를 갖는 것과 함께 본 논문에서 예로 든 샤또 라피트 로칠드의 경우를 보면 1853년부터 샤또의 역사가 시작되고 1732년에 영국의 수상인 로버트 월풀 같은 사람들이 분기별로 매입을 한다든가 귀주의 주지사였던 리슬리외가 루이 15세에 소개를 한 것과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마담 드 퐁파드로가 애용했고 이어 마담 뒤 바리까지 애용했다는 기록들을 보면 일반적인 와인들과는 다르게 강한 역사적인 의미를 가진 와인이란 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이야기는 토마스 제퍼슨의 평가와 1855년 나폴레옹 3세의 등급 분류로 나라에서 품질을 인정받고 국제 박람회에서의 대의적인 국가브랜드로서의 와인의 중요성과 5등급 와인의 품질 인정을 공식화했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라 볼 수 있다.
본 논문에서 언급된 명품 브랜드 와인의 역사성은 샤또 라피트 뿐만 아니라 샤또 마고에서도 1705년 런던 관보에 샤또 마고 와인에 대한 경매가 실리었던 점 그리고 영국 수상의 와인구입 그리고 토마스 제퍼슨이 1784년 빈티지를 구입했다는 사실의 소개로 마찬가지로 130년 전부터 영국 등 외국에서 알려진 프랑스 고급 와인의 역사성을 알려주고 있다.
이러한 와인에 대한 역사성은 최근에 와서 부각되는 명품 와인과는 다른 차원에서 특징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부르고뉴지방에서 소개된 로마네 꽁띠도 1760년 꽁띠 왕자가 이 와이너리를 구입시 당시 루이 15세의 정부였던 마담 퐁파드로 후작부인과의 경쟁관게에서 구입했다는 것은 지금에서 보면 한 와인의 이야기라기보다는 프랑스의 역사에서 깊은 비중으로 차지하고 있는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야기의 중요한 와인이라는 것을 알 수있다.
프랑스에는 7대 샤또가 있다. 메독 5등급 와인인 샤또 라피트 로칠드, 샤또 마고, 샤또 라투브, 샤또 오브리옹, 샤또 무똥 로칠드 그리고 뽐므롤 지역의 샤또 페트뤼스, 샤또 디껨을 일컫는 말인데 이들 와인은 법으로 의국인에게 괄 수 없도록 규정 되어 있다는 것이 이들 와인이 프랑스 와인에서도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말하여 주는 중요한 점인 것이다.69)
5등급 와인 중 샤또 딸보의 경우 딸보가 영국 장군의 이름이었고 영국과의 100년 전쟁 등 역사적인 의미를 가진 것처럼 샤또 마고의 샤또 건물은 세계 2차 세계대전 후 2차 세계대전 사과를 패전국 초대 수상이었던 아데나워 수상이 이 건물에서 했던 것처럼 여러 가지 복합적인 프랑스의 역사와 정체성 문화적인 의미를 복합적으로 갖고 있옴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