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식 준비는 수행의 시작
사찰음식은 누가 담당하고 계승해 왔을까?식재료를 생산한 것부터 따진다면 공동 노동에 참여한 승가공동체 구성원은 모두 사찰음식의 담당일 수밖에 없으며 조리라는 과정으로 국한해 보아도 마찬가지다.
모든 수행자는 처음 출가할 때 사찰음식을 조리하는 공양간에서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님이 되고자 절을 찾으면 출가 생활을 잘 견디어 낼 수 있을 것인지 먼저 살펴본다. 일정기간 행자(行者) 생활을 하며 하심(下心)을 배운다.
세상 모든 존재가 자신보다 높고 소중한 존재임을 자각하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출가 이전의 자아(自我)를 해체하고 새로운 구도자(求道者)의 인격으로 자신을 재구성하는 것이다.
행자는 땔감을 구해오고 온갖 허드렛일을 맡아야 하는‘ 불목하니’, 스님들과 객실에 머무르는 신도들의 상을 준비하는‘ 간상(看床)’, 갖은 밑반찬을 만들고 온갖 나물을 씻고, 썰고, 데치고, 무치고 양념하는‘ 채공(菜供)’, 어느 정도 반찬 만드는 일에 익숙해졌다 싶으면 국을 끓이는 ‘갱두(羹頭)’ 소임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최고참이 되면 행자수련의 마지막 관문이라 할 수 있는 밥을 짓는 ‘공양주(供養主)’ 소임을 맡는다. 공양간의 행자 소임은 그 자체가 출가수행의 중요한 과정이다. 남들보다 더 먼저 일어나 밥과 반찬을 준비하고 한겨울에는 얼음을 깨고 찬물로 설거지를 해야 하는 힘든 일이다.
막 출가해서 후원에서 밥을 할 때 설익히거나 태워먹는 등 온갖 실수를 한 출가경험을 스님들은 즐겁게 회상한다. 행자들의 서툰 솜씨로 만든 밥과 반찬을 선배 수행자들은 말없이 먹어줌으로써 새로 온 후배들의 정성에 감사하고 격려함으로써 함께 수행의 길을 간다.
이것이 큰절 살림의 전통이다. 그러나 좀 더 전문적인 기량이 요구되는 음식들이 있다. 미묘한 차이에도 맛과 저장성이 달라지는 식재료, 특별한 날에 올리는 정성 깃든 음식들 같은 경우는 대부분 여성 수행자인 비구니스님들의 섬세한 손에서 손으로 전승되어 왔다.
비록 신통치 않은 나물 한 가지라도 대중스님들에게 좀 더 맛있게 드리려고 마음 써서 손질하고 맛과 향이 농축되도록 오래 보관하고 발효시킨 정성이 아름다운 전통으로 이어지고 시대에 맞게 개발되면서 지금 사찰음식의 꽃으로 피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