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원전 5세기 경 한반도에 전해진 보리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 민족의 중요한 작물로서 재배되기 시작
○ 보리에 관련된 가장 오래된 유적은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최초의 기록은 삼국유사의 동명왕편
* 고구려 시조인 주몽이 부여에서 탈출하여 남하할 때 슬픔에 겨워 보리 종자를 잊고 왔더니 유화부인이 비둘기를 통해 보내주었다는 내용이 서술
○ 삼국사기와 조선왕조실록 등에도 천재지변으로 인한 보리농사 피해와 농사기술 등이 단편적으로 기록
* 조선왕조실록 “선조 35년, 서풍이 불고 우박이 내려 봄보리가 모두 손상”, “태종 14년, 강원도에 비와 눈이 내려 보리와 곡식을 상하게 함” 등
□ 쌀보다도 오래 전부터 재배되기 시작한 보리는, 서민들의 굶주림을 덜어준 중요한 식량
○ 늦가을에 파종하여 봄에 수확하는 보리는 춘궁기를 극복할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곡식
- 수확한 곡식이 모두 떨어지고 보리가 아직 여물지 않은 5~6월을 ‘보릿고개’라고 하여 곤궁한 살림의 대명사 격으로 사용
○ 식감이 다소 거칠고 색이 거무스름한 보리밥은, 서민층과 넉넉지 못한 살림을 상징하는 사회적 의미도 존재
양반은 트림하고 상놈은 방귀뀐다!?
▷ 보리의 소화 과정에서 방귀가 많이 나오는 특징으로 인해 쌀밥을 먹을 수 있었던 양반과 달리, 보리로 식사를 하던 서민을 비하하던 말
- 보리에는 쌀의 5배에 이르는 식이섬유가 함유되어 있으며, 보리의 식이섬유는 소장에서 소화 흡수되지 않는 수용성이 대부분
- 따라서 보리의 수용성 식이섬유가 대장에 도달하면 대장 내의 미생물에 의해 급속히 발효되어 휘발성 물질을 생성, 이것이 장내 가스를 유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