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식(混食)과 분식(粉食)이라고 하면 중장년층들에게는 우리나라의 격동기와 관련 있다고 기억되는 단어들
○ 사실은 일제 강점기부터 우리 쌀을 싹쓸이하여 일본으로 가져가기 위해 시작했던 절미(節米)운동이 효시(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우리 쌀의 가격은 낮게 책정하여 일본으로 가져가고 만주로부터 잡곡을 싸게 들여와 쌀보다 비싼 가격에 판매
* 공출하는 쌀을 합법적으로 가격을 지불한 것처럼 보이기 위한 정책으로 자신들은 싸게 쌀을 사고, 잡곡은 비싸게 팔아 1석 2조의 효과를 거둠
- 쌀이 워낙 부족했기 때문에 우리 민족은 원치 않았지만 할 수없이 혼식(混食)을 강요당함
○ 해방 후부터 한국전쟁 후까지도 정부차원에서 절미운동은 계속 되었으며, 미국의 밀가루 원조 이후 분식을 권장하기도 함
- 어수선한 국내외 사정 때문에 식량생산을 최우선으로 했음에도 농경지와 농자재 등의 부족으로 만성적인 식량부족에 시달림
- 1956년 미국의 식량원조로 관공서를 통해 밀가루가 대량으로 무상 배급된 후 사정이 나아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