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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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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서론

북한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에 걸친 소련 및 동구 사회주의체제의 붕괴로 인한 사회주의 시장의 해체, 그리고 사회주의 체제가 안고 있는 중앙집권적 계획경제의 구조적 한계로 말미암아 총체적 경제난에 직면했다. 이러한 상황은 자연히 북한의 식량난을 초래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연이은 홍수,1) 가뭄 등 자연재해로 인하여 북한의 식량사정은 더욱 악화되었고, 수많은 인명이 기아로 목숨을 잃었다.2)

이러한 교류가 이어짐에 따라 북한의 열악한 식량 사정과 식량 생산 및 분배과정, 그리고 북한주민들의 일상생활에서 유명한 먹거리들이 우리에게 소개되기도 하고, 때때로 우리의 음식점에서 북한의 음식들이 상품화되기도 합니다.

남북 정상회담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접받았던 옥류관의 냉면과 평양온면은 이미 잘 알려져 있고 그 외에도 들쭉술, 단고기국 등도 이산가족 상봉 등을 통해 널리 알려지고 있습니다.

본책에서는 북한의 식량사정에 대해 고찰하고, 식량난의 원인이 되는 식량의 생산과 분배과정의 문제점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북한의 이름난 먹거리 및 조리법에 대해서도 함께 소개하여 북한의 음식문화가 우리에게 미칠 긍정적인 효과에 대한 전망도 함께 수록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주제가 있는 통일문제 강좌’로 펴내는 이 책이 북한의 식량난의 현황과 문제점을 이해하고, 북한의 먹거리에 대해 알게 됨으로써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북한이 우리와 동떨어진 실체가 아니라 민족공동의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한 민족이라는 점을 깨닫는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러한 북한의 심각한 식량난 소식이 전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UN 산하 국제기구와 국제사회 민간단체들의 온정의 손길이 이어지기 시작하였다.

물론 같은 민족인 우리 역시 북한의 식량난 해결에 도움을 주고자 정부와 민간단체들이 힘을 합하고 있는 실정 이지만, 북한 스스로의 근본적인 구조적 개혁이 없는 한, 그 해결의 실마리는 아직은 미약해 보인다.

한편, 2000년 6월 역사적인 남북한 정상회담이 이루어지던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양에서 대접받았던 음식 중에는 옥류관의 냉면과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한‘평양온면’,‘ 들쭉술’,‘ 금술’이 있었다. 이후 이산가족의 상봉이 잇따라 이루어지고 남북교류의 활성화를 통하여 이러한 북한의 음식은 우리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우리에게는 예로부터 먹거리가 부족한 시절에도 친척과 이웃간에 서로 음식을 나누어 먹는 미풍양속이 있었으며, 가정교육도 밥상머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남녀간에 첫 선을 보는 날에도 항상 차 한 잔이라도 함께 나누며 서로를 이해하고 파악하려는 관습이 있었다.

우리 민족이 남과 북으로 나뉘어 이질적인 환경에서 생활한 지 반 세기가 넘는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우리의 뜨거운 핏속에는 이러한 전통과 정신이 고스란히 살아 숨쉬고 있다. 비정치적이며 인도적 지원사업인 식량지원과 농업교류를 통하여 분단의 장벽을 허물 수는 없는 것인가?

➜ 여기에서는 북한의 식량사정은 어느 정도이고, 생산과 분배는 어떻게 이루어지며, 북한의 이름난 먹거리로는 무엇이 있는가를 알아본 후 남북공영의 초석을 놓아가기 위한 농업협력 활성화 방안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1) 북한에서는 홍수피해를 큰물피해라고 함.

2) 북한의 식량위기는 1980년대 또는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되었으며, 이러한 식량위기는 1994~2000년간 유의미한 인구변화를 수반하는 기근으로 발전하였다. 이석,『1994~2000년 북한기근: 발생, 충격 그리고 특징』(통일연구원, 2004),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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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출처 •조선료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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