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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음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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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6. 북한음식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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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꿀, 당과류, 화채, 수면, 수단, 수정과.식혜, 배숙, 밀수, 감주, 숭늉

♣ 꿀

꿀은 단맛을 내는 단맛감인 동시에 당과와 음료를 만드는 기본음식감이다. 우리 나라에서 꿀벌치는 풍습은 원시시기부터 시작되였다. 특히 세나라시기에 꿀에 대한 수요가 더 높아지면서 꿀벌치기를 많이 하였다. 또한 고려시기에는 유밀과를 만드는데 꿀을 물쓰듯 하였기때문에 국가가 유밀과사용을 금지하기까지 하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강원도지방 26개의 군, 현이 모두 꿀의 특산지로 기록되여있으며 이전의 함경도지방에서는 22개 군, 현가운데 13개의 군, 현에서 꿀이 생산되였다고 하였다. 이것은 15세기 후반기에 와서 우리 나라의 벌방지대를 내놓고는 웬만한 산간지방들에서 모두 꿀벌을 쳤다는것을 보여준다.

19세기 초 서울에는 국가로부터 독점판매권을 받은 청밀점방까지 있었다. 지난 시기 우리 조상들이 길러온 꿀벌은 지금의 꿀벌과는 다른 토종벌(토봉)이였다. 토종벌은 꿀벌에 비하여 몸집이 작지만 내한성이 강하여 겨울나이를 잘하며 밀랍분비능력이 높은 우점들을 가지고있으며 꿀의 약효도 높다.

그러므로 오늘도 일부 산간지대에서 계속 토종벌을 치고있는것이다. 방안공기나 해빛을 리용하여 받은 꿀은 색갈이 희고 맑다고 하여 《백청》이라고 하였다. 그릇을 가마안에 넣고 물을 끓여 꿀을 받기도 하였는데 이렇게 받은 꿀은 누런 색갈이 난다고 하여 《황청》이라고 하였다.

꿀을 받을 때 리용한 배보자기를 더운 물에 담그어 우러나온 꿀물 또는 그것을 졸인것을 《미수꿀》이라고 하였다. 꿀은 예로부터 《백화지성》(백가지 꽃의 향기)이라고 하여 만병통치약으로 일러왔다. 꿀의 영양가치와 약리적가치는 꿀속에 들어있는 여러가지 효소와 비타민 그리고 꿀원천식물이 가지고있는 약효성분, 여러가지 당류에 의한 복합작용에 의하여 규정된다.

꿀의 일종으로 볼수 있는 왕벌젖은 꿀벌의 유충을 길러내기 위한 독특한 먹이로서 농마즙과 비슷하고 흰고약같은데 여기에는 가치있는 영양소들이 다 들어있다. 꿀은 유밀과, 정과, 다식, 화채, 차, 약과, 약밥, 떡 등 고급한 음식을 만드는데 쓰인다

♣ 당과류

당과는 당분을 기본으로 하면서 영양분이 많은 음식감을 배합하여 만든것으로서 사람들에게 필요한 당분을 보장해주는 중요한 영양식료품이다. 우리 선조들은 일찍부터 여러가지 당과류를 만들어 식생활에 리용하였으며 그 가공기술도 끊임없이 발전시켜왔다.

민족당과는 지난 시기에 《다과》라고도 불리웠다.《삼국유사》에 의하면 매년 설명절때면 《술을 가지고 떡, 밥, 다과 등을 마련해가지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 기록이 있다는것을 보면 당과의 력사가 매우 오래다는것을 알수 있다. 우리 선조들이 전통적으로 즐겨먹은 당과에서 대표적인것은 엿, 유밀과, 다식, 숙실과, 정과 등이였다.

♣ 음료

음료는 사람들이 보통 마실수 있게 가공한 물을 통털어 말한다. 사람은 세상에 태여나자마자 젖이나 우유와 같은것을 섭취하다가 점차 미음, 암죽, 밥과 같은것을 먹으면서 성장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생존활동의 첫 시기부터 자연에서 식료원천과 함께 음료원천을 얻어내기 위한 창조적활동을 적극 벌렸으며 이 과정에 여러가지 알곡이나 과일, 산열매를 비롯한 갖가지 음식감들을 가공하여 달고 향기로운 음료를 많이 만들어내게 되였다.

우리 나라의 음료는 과일, 산열매류, 알곡류로 만든것으로 갈라볼수 있는데 그중에서 대표적인것은 수정과, 화채, 배숙, 향설고, 제호탕, 숭늉, 수단, 식혜, 술, 차 등이였다.

♣ 가을철의 시원한 화채

가을철의 특식목록에서 빠져서는 안되는것중의 하나는 화채이다. 화채는 가을철에 많이 나는 사과와 배 그리고 오미자나 들쭉같은 과일들을 꿀물에 타서 만든 음료이다.

화채는 꿀과 신선한 과일을 기본음식감으로 하여 만들기때문에 달면서 과일의 향긋한 맛과 색갈을 그대로 보존하고있으며 매우 향기롭고 보기 좋다. 뿐만아니라 사람의 몸에 필요한 수분과 당분을 보충해주어 피로를 빨리 회복시키기때문에 건강에 매우 유익하다.

♣ 독특한 민족음료 - 수면과 화면

수면과 화면은 우리 인민들이 봄철 특히 삼질날에 즐겨 만들어먹은 음료였다. 수면은 꿀물에 얇게 채친 록두묵을 둔것이고 화면은 록두가루를 반죽하여 익혀서 가늘게 썰어 국수발처럼 만든 다음 오미자꿀물에 넣고 꽃잎과 잣알을 띄운 음료이다. 수면과 화면은 봄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빼놓을수 없는 철음식이였다.

♣ 칠월칠석 수단

칠석은 음력 7월 7일을 명절로 이르던 말이다. 지난시기에는 이날이 오면 집집마다 저녁밥을 일찍 지어먹은 다음 모기불을 피워놓고 퇴마루나 마당에 펴놓은 멍석우에 둘러앉아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하늘의 견우와 직녀에 대한 전설을 들으면서 견우성과 직녀성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밤을 보내군 하였다.

수단은 바로 이날에 즐겨 만들어 먹은 음식이다.《칠월칠석 수단이요 팔월추석 송편이라》는 말도 있는데 우리 인민들은 칠석날이면 의례히 수단을 만들어 먹군 하였다.

수단은 얼음물같이 차게 하여 먹는다고 하여 《빙단》이라고도 불렀는데 그 맛이 향기롭고 단것이 사람들의 구미를 무척 돋구어준다. 수단에는 보리를 기본음식감으로 하는 보리수단도 있는데 보리수단은 개성을 비롯한 여러 지방의 이름있는 음료의 하나였다.

♣ 설명절음료 - 수정과와 식혜

설명절에는 시원하면서도 달고 향긋한 맛이 나는 수정과를 많이 만들어 마셨다. 수정과에 쓰는 곶감은 여느 곶감과는 달리 살이 부드럽고 달면서 감칠맛이 있는 감을 골라 껍질을 벗긴후 꼬챙이에 꿰지 않고 그대로 말리는 방법으로 만든다.

전해진데 의하면 원래는 수정과를 복숭아, 딸기, 석류, 배 같은것으로 만들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곶감을 쓰게 되였다고 한다. 수정과는 술을 마신후 해장하는데 효과가 크며 피를 맑게 하고 피로를 푸는데도 좋다. 식혜도 수정과와 같이 설명절음료로 많이 리용되였다.

♣ 배숙

배숙은 배를 익혀서 만든데서 지어진 이름이다. 옛 기록에는 리숙이라고 씌여있는데 리는 배를 의미하는 한자식표기이다. 배숙은 주로 가을철이나 겨울철에 기본식사가 끝난 다음 쓰이였다.《시의방》에 의하면 배숙은 배의 껍질을 벗긴 다음 베서 속을 빼내고 물을 부어 삶다가 꿀을 넣어 식혀서 잣을 띄운것이다.

또한 《진찬의궤》에서 궁중에서 쓰는 리숙(배숙)은 배 25알, 잣, 후추 각각 1홉, 생강 5홉, 꿀 2되로 만들므로 민간에서 만드는 배숙에 비하면 음식감의 가지수도 많고 배합비률도 높으며 화려하고 영양가도 높았다고 씌여있다.

♣ 제호탕

제호탕은 고려약음식감인 매화나무열매, 백단향, 사인, 초과, 축사씨 등을 보드랍게 가루내여 꿀을 넣어 끓이면서 여기에 율무가루를 적당히 섞어 단지에 넣어두고 여름한철 드문드문 한숟가락씩 찬물에 타서 마시는 여름철더위를 막는 음료였다.

♣ 밀수

밀수는 꿀에 물을 타 만든데서 지어진 이름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세나라시기에 이미 꿀이 식생활에 리용되였으나 밀수도 그 이전시기부터 있었다는것으로 볼수 있다. 기록상으로는 조선봉건왕조시기 문헌에 찹쌀밀수, 송화밀수가 보인다.

《시의방》에 의하면 찹쌀밀수는 꿀물에 찹쌀가루를 탄것이고 송화밀수는 꿀물에 송화분(솔꽃가루)을 탄것이다. 밀수에 쓰이는 찹쌀가루는 찹쌀로 밥을 지워 말리웠다가 망에 갈아 겹채에 쳐서 쓰며 송화밀수는 여름철에 만들어 마시는데 일반적으로 송화가루를 많이 얻기가 힘들므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수단이나 밀수는 다같이 꿀물로 만든 음료라는 점에서는 같으나 마시는 절기에서는 수단은 무더운 여름철에 마시였다면 밀수는 사철 마시는 음료라고도 할수 있다

♣ 감주

감주는 흰쌀밥에 길금가루를 두고 삭혀서 만든 음료이다. 흰쌀밥을 끓는 물에 넣고 길금가루를 둔 다음 죽처럼 고루 저어서 따끈한 곳에 며칠간 두면 삭으면서 부글부글 피여올라 감주가 된다. 감주는 이전 함경도, 평안도지방의 농촌들에서 많이 만들어 먹었다.

《고려도경》에 왕성의 긴행랑에 백미장을 만들어 길가는 누구나 마실수 있도록 하였다고 기록되여 있는데 여기서 백미장은 흰쌀을 푹 끓여 만든 미음을 시큼한 맛이 날 정도로 숙성시킨것으로서 갈증을 푸는데 좋은 감주와 같은것이라고 볼수 있다.

감주, 식혜는 다같이 밥에 길금가루를 두고 삭혀서 만든 단음료라는 점에서는 같으나 식혜는 밥에다 과일, 고기류를 더 넣는것이 달랐다. 따라서 감주는 공기에 담아 마신다면 식혜는 숟가락으로 떠먹었다.

♣ 독특한 민족음료 숭늉

예로부터 우리 인민들속에서는 식사 뒤끝에 숭늉을 즐겨 마시는 풍습이 전해져온다. 숭늉에 대한 력사기록이 16~17세기경부터 보이고 19세기초의 책인 《림원십륙지》에 숭늉 만드는 방법이 소개되여있지만 밥이 주식이고 차나 소젖대신 맑은 물이 풍부한 우리 나라에서는 숭늉이 고대나 세나라시기에도 일상음료로 적용되였다고 볼수 있다.

숭늉은 우리 나라에만 있는 독특한 음료이다. 숭늉은 그 맛이 독특하고 영양가가 높은 음료이다. 우리 인민은 밥을 거의 다 먹고 몇숟가락정도 남았을 때 그것을 따끈한 숭늉에 말아 마른 반찬이나 짭짤한 절임, 젓갈 등으로 식사를 끝내는것을 좋아하였다.

숭늉은 집에서 밥을 지어 먹을때마다 만들수 있는 매우 편리한 음료이다. 쌀이 익을 때 불을 물리고 뜸을 들인 다음 다시 불을 때면 솥밑바닥에 수분이 거의 남아 있지 않으므로 밑바닥의 온도가 2백수십℃로 오르고 그에 붙은 낟알이 누룽지로 되면서 아미노카르보닐화합물이 생긴다.

이 누룽지에 물을 붓고 다시 끓이면 맛좋은 숭늉이 된다. 지난날 가정들에서는 숭늉대접을 하나의 식사범절로 지켜왔다. 며느리가 시부모나 웃사람들의 식사시중을 들 때 또는 제사때에는 반드시 숭늉을 대접하거나 놓았으며 이것은 하나의 풍습으로 되여왔다.

봉건관료들의 가정에서도 밥상을 차리는데서 상은 하인이 차려도 숭늉만은 반드시 안해가 아니면 며느리가 시중들었다. 궁중에서 왕이나 왕비를 위한 수라상(밥상)을 차릴 때에도 꼭 숭늉을 대접하는 절차가 있었다.

시중드는 궁녀가 왕의 식사가 끝날무렵에 국그릇을 놓았던 자리에 숭늉그릇을 놓으면 밥을 한술 말아서 개운하게 먹고 수저를 제자리에 놓았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는 식사를 끝낼 때에는 숭늉에 밥을 말아먹어야 딸이 잘 산다는 말이 전해져오고있다.

그리고 숭늉에 밥을 말아먹으면 식기나 수저가 물에 젖어있는것처럼 생활이 메마르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것은 멀리 시집간 딸이 잘 살기를 바라는 어머니들의 심정을 담아 생겨난 말이며 다른 측면으로는 밥을 다 먹게 함으로써 랑비를 없애려는 뜻도 담고있다.

숭늉마시는 풍습이 우리 인민의 생활속에 오래동안 계승되여 왔으므로 오늘도 그와 결부된 교훈적인 속담들이 많이 전해지고있다.《급하기는 우물에 가 숭늉 달라겠다.》, 《보리밭에 가 숭늉 찾겠다.》,《숭늉에 물 탄 맛이다.》등은 그러한 실례로 된다.

숭늉은 영양위생적으로 유익하고 우리 인민의 창조적슬기와 담담한 성격이 반영되여있는 전통적인 음료로서 오늘도 계승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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