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원한 랭면과 밀국수
국수는 우리 인민들이 누구나 좋아하며 즐겨먹는 음식의 하나이다. 우리 인민들의 식생활에서 국수는 밥 다음가는 주식물이며 먼 옛날부터 명절날과 대사때 없어서는 안될 필수음식의 하나로 되여왔다.
례하면 《작은 보름》이라고 하던 음력 정월 14일 점심이면 긴 국수오리처럼 오래 살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국수를 먹었고 삼질날에는 록두국수를 별식으로 만들어 먹었다. 또 대사때에는 손님들이 음식을 아무리 배불리 먹었다 해도 국수만은 꼭 먹고서야 자리에서 일어나도록 하는것이 우리 인민들의 손님접대관습이였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국수의 조상은 칼제비국이며 오늘과 같은 국수가 생겨난것은 고려시기(10세기경)라고 한다. 민간에서는 흔히 《칼제비 잘하는 사람이 국수도 잘한다.》고 하는데 이 말은 바로 칼제비국과 국수와의 이런 선후관계로부터 나왔다고 볼수 있다.
국수에 대한 기록은 고려말기에 처음 보인다. 1444년에 씌여진 《룡비어천가》에는 고려의 장수였던 최영이 손님을 대접할 때마다 국수와 반찬을 분담시켜 준비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해동역사》에는 고려때 나라안에서 밀이 많이 나지 않아 국수값이 비싸므로 크게 차리는 잔치가 아니면 국수를 내지 못하게 하였다고 씌여있다.
이 두 자료들로 보아 국수는 이미 고려시기에 널리 보급되여 있었다는것을 짐작할수 있다. 국수는 다른 주식물들처럼 지방적특성을 많이 띠고있었다. 국수는 대체로 자기 지방에서 생산되는 잡곡을 가지고 만들었으므로 북쪽지방에서는 메밀가루, 강냉이가루, 감자농마를, 남쪽지방에서는 밀가루를 많이 사용하였다.
그리고 북쪽지방에서는 보통 설설 끓는 물가마우에 국수분틀을 올려놓고 누름대우에 올라앉아 국수를 눌러먹었고 남쪽지방에서는 가루를 잘 반죽하여 얇게 밀어서 칼로 썰어 끓는 물에 삶아내는 방법으로 만든 칼국수를 즐겨 해먹었다.
우리 인민들은 계절에 따라서도 국수를 다양하게 만들어 먹었다. 해볕이 쨍쨍 내리쪼이는 무더운 여름철에는 국수를 랭국이나 콩국에 말고 얼음덩이를 띄워 랭면을 만들어먹으면서 땀을 들이였고 반대로 추운 겨울에는 따끈한 국물에 만 온면을 먹으면서 몸을 덥히군 하였다.
여름철에 즐겨먹은 랭면가운데서 가장 유명한것은 평양랭면이였다. 평양랭면은 예로부터 널리 소문났다.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책인 《동국세시기》에는 메밀국수를 무우김치국물이나 배추김치국물에 말고 거기에 돼지고기를 얹은것을 랭면이라고 하는데 관서지방(평안도)의것이 제일 좋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해동죽지》에도 평양랭면이 제일 좋다고 씌여져있다. 평양랭면이 맛있는 음식으로 소문난것은 국수감, 국수물, 꾸미, 양념, 국수그릇, 국수말기 등에서 특성이 있었기때문이다. 평양랭면이 유명해진것은 무엇보다도 사람의 몸에 좋은 영양성분이 많이 들어있어 옛날부터 장수식품으로 일러온 메밀을 국수감으로 쓴다는데 있었다.
메밀국수는 국수오리가 지나치게 질기지 않고 먹기에 알맞춤하며 메밀의 고유한 성분은 국수의 향기와 맛을 더욱 돋구어준다. 평양랭면이 유명해진것은 또한 국수국물맛이 독특하고 겉보기와 차림새가 특성이 있었기때문이다. 평양랭면의 국물은 구수한 고기국물과 쩡한 동치미국물을 섞어 만들므로 맛이 시원하고 새큼달달하다.
그리고 시원한 국물맛에 잘 어울리게 상쾌한 감을 주는 놋대접을 써서 국수사리를 수북이 담고 우에 구미를 보기좋게 얹는다. 이와 같이 평양랭면은 그 독특한 맛으로 하여 말그대로 찬음식이지만 무더운 여름날에는 물론 추운 겨울철에도 누구나 즐겨먹는 음식으로 되였다.
추운 겨울날에 찬 랭면을 먹는것도 우리 인민들속에서 전해내려오는 하나의 풍습이였다. 제일 추운 때에 찬 음식을 먹는 풍습은 우리 인민들의 온돌생활풍습과 관련되여있다고 볼수 있다. 한겨울철에도 온돌방안은 뜨뜻하기때문에 거기서 먹는 시원한 랭면이 별미의 음식으로 될수 있었던것이다.
오늘 평양랭면은 우리 나라 지경을 벗어나 세계에 널리 알려져 조선국수의 대명사로, 조선민족음식의 대표작의 하나로 세상사람들의 아낌없는 찬사를 받고있다. 여름철에 즐겨 만들어먹은 국수에는 밀보리를 거두어 처음으로 맛보게 되는 5월의 풋밀로 만든 밀국수도 있다.
밀국수는 류두날에 특히 절식으로 해먹군 했다고 하여 류두면이라고도 불러왔는데 이날에 이 음식을 먹으면 여름내 더위를 먹지 않는다고 하면서 남녀로소가 다같이 먹었다고 한다. 류두란 지난날 음력 6월 15일을 명절로 이르던 말로써 《동류두목욕》 즉 《동쪽의 내가에서 머리를 감는다.》는 말의 략어이다.
이날 김매기를 끝낸 농민들은 하루를 쉬면서 마을주변의 내가에 나가 깨끗하게 몸을 씻고 제손으로 심어 가꾼 낟알로 햇밀국수를 비롯한 별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락천적인 놀이로 즐겼다.
♣ 한여름철에 즐겨먹은 여러가지 죽
여름철에 특식으로 즐겨 만들어 먹은 음식들가운데는 어죽과 팥죽을 비롯한 죽들도 있다. 어죽은 예로부터 한여름의 더위를 가시고 몸을 튼튼히 보양하는데 효능이 있는 음식으로 일러왔다.
물고기국에 밥을 말아먹는 맛도 좋지만 흰쌀에 물고기를 두고 죽을 쑤면 끓이는 과정에 음식감들의 맛이 서로 배합되여 물고기국밥에 비길수 없는 독특한 맛이 난다. 어죽가운데서 특히 이름있는것은 평양어죽이였다.
평양지방에서는 사람들이 류두날이면 어죽을 쑤어먹는 풍습이 있었다. 이날 사람들은 고추장과 닭고기, 쌀과 함께 가마를 둘러메고 대동강이나 보통강에 나가 목욕을 한 후에 물고기를 잡아 남비에 쌀과 함께 넣고 어죽을 쑤어먹으면서 휴식의 한때를 보내군 하였다.
간혹 놀음에 취해 물고기를 미처 잡지 못했을 때에는 가지고 나갔던 닭고기만 넣고 죽을 쑤기도 하였다. 동해바다가사람들이 즐겨 만들어 먹은 섭조개죽(일명 홍합죽) 역시 이름난 어죽의 하나였다.
팥죽도 여름철 특히 삼복때 즐겨 해먹은 음식이였다. 사람들은 한여름의 무더위속에서 팥죽을 쑤어먹으면 온갖 잡병을 막고 몸을 추세우는데 좋다고 하였다.
♣ 전통적인 설명절음식 - 떡국
떡국은 우리 인민들이 정월초하루날 새해 첫 음식으로 끓여먹는 전통적인 명절음식의 하나이다. 남쪽지방 사람들속에서는 떡국이 나이의 표상으로 간주되여왔는데 그들은 매해 한그릇씩 떡국을 먹는 수자가 늘어 남에 따라 나이도 한살씩 늘어난다고 하면서 떡국을 일명 《첨세병》이라고 하였다.
우리 인민들은 떡국을 부식물로서의 국으로보다 주로 주식물을 대신하는 음식으로 먹었다. 떡국은 대부분 떡가래를 만든 다음 타원형으로 되게 엇비슷이 썰어 고기국물에 넣고 끓여 만드는데 여러지방의 떡국가운데서 개성지방의 조롱떡국(조랭이떡국)이 유명하였다.
조롱떡국이란 떡의 생김새를 본따서 붙인 이름이다. 개성사람들은 섣달 그믐날이면 온 집안식구가 모여앉아 참대나무칼로 누에고치모양의 조롱떡을 만들어 함지에 가득 담아두었다가 설날아침에 떡국을 끓여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예로부터 개성지방의 매 가정들에는 식구수에 해당한 참대나무칼이 항상 준비되여있었다.
나무칼은 600여년전 고려왕이 미각이 아주 예민하여 칼로 썬 떡에서 나는 쇠비린내까지 감촉하고 몹시 싫어하면서 떡을 나무칼로 썰도록 하면서부터 리용되였는데 나무칼로 떡을 썰면 모양은 비록 곱지 못해도 맛이 아주 좋다고 한다. 그것이 민간에 퍼져 개성지방에는 나무칼로 떡을 써는 풍습이 생겨나게 되였다.
♣ 우리 인민의 여름민속명절음식
예로부터 근면하고 락천적인 우리 인민의 창조적인 로동생활과정에 생겨나고 오랜 세월을 거쳐오면서 전통화된 명절들가운데는 류두절과 칠월칠석과 같은 여름민속명절들도 있다.
흐르는 내물에 머리를 감는 날이라고 하여 《류두날》이라고 부르는 음력 6월 15일은 사람들이 무더운 여름철 농사일에 쌓인 피로를 풀기 위하여 내가에서 몸을 깨끗이 씻고 음식을 먹으며 물놀이를 하던 날이였다.
평양지방에서는 이날 남자들이 대동강에 나가서 목욕을 하고 물고기를 잡은 다음 강변에 모닥불을 피워놓고 어죽을 쑤어먹으며 즐겁게 휴식하였다. 녀성들은 이날 류두면, 수단, 건단, 수각아, 상아떡, 련병 등의 음식을 만드는 류두음식놀이를 벌려놓고 자기들의 음식솜씨를 보여주었다.
특히 류두날에는 갖가지 음식가운데서 류두면이라고 부르는 밀국수를 다같이 즐겨먹었는데 그것은 이 음식을 먹어야 여름철에 더위를 타지 않는다고 하였기때문이였다. 칠월칠석이라고 부르는 음력 7월 7일은 여름밤 동네사람들이 마당에 모여앉아 별구경을 하면서 견우와 직녀에 대한 옛이야기로 밤가는줄 모르던 날이였다.
이날에 사람들은 복숭아나 추리, 수박, 참외 등을 먹으면서 옛말을 즐기였다. 음력 7월 15일은 김매기가 끝난 다음 피로도 풀겸 호미를 깨끗이 씻어두는 날이였다. 그래서 《호미씻기》라고 부르는 이날 마을사람들은 서로 도와가며 김매기를 끝낸 기쁨을 노래와 춤가락에 담아 놀이판을 더욱 흥성하게 하였다.
녀성들은 이날에 길쌈을 준비하는것과 함께 김매기가 끝난것을 축하하여 호미날모양의 떡, 밀전병, 호박전, 탁주 등 맛좋은 음식을 정성들여 만들어 가지고 춤판이 끝난 뒤에 펴놓아 사람들을 기쁘게 하였다.
한편 사람들은 이날을 백가지 과일을 맛보는 날이라고 하여 백종날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는데 그만큼 이무렵이면 산과 들에 갖가지 과일들이 무르익어갔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날 알알이 크고 잘 익은 과일들을 맛보며 땀을 식히기도 하였다.
♣ 우리 인민의 가을민속명절음식
우리 인민은 오랜 옛날부터 음식문화를 발전시키는데서도 온갖 지혜와 재능을 다 발휘하여 커다란 성과를 이룩하였다. 우리 민족의 민속명절들가운데는 우리 인민이 예로부터 즐겨 쇠오던 추석과 중구절과 같은 가을민속명절들도 있다.
아름다운 가을날이라고 하여 《가위날》이라고도 하고 가을저녁의 정경이 하도 인상적이여서 《추석날》이라고도 부르는 음력 8월 15일에 우리 인민들은 여러가지 민속놀이를 하는 한편 햇곡식으로 음식을 정성껏 만들어가지고 조상의 산소를 찾아가는것을 하나의 관습으로 여겨왔다.
추석날에 만들어 먹은 대표적인 음식들로서는 송편, 증편, 찰떡, 노치, 토란국, 밤단자와 닭찜 등이였다. 이중에서도 햇쌀, 햇콩, 햇밤과 함께 솔잎향기를 재치있게 리용하여 만든 송편은 추석날의 가장 대표적인 음식이였다.
닭고기와 삶은 토란을 넣고 한소금 끓인 다음 소금, 실파로 양념하여 만든 토란국도 추석음식으로 잘 알려져있다. 평양지방에서는 추석을 앞두고 열흘전에 노치를 만들어 단지에 차곡차곡 담아두었다가 추석날저녁 어른, 아이 할것없이 모두가 노치를 참대꼬챙이에 꿰들고 달구경을 나가군 하였다.
중구일인 음력 9월 9일은 국화꽃이 만발하고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날의 경치를 구경하는 날이였다. 이날에 만들어 먹던 음식들은 아름다우면서도 약리적가치가 있는 국화꽃잎을 찹쌀가루에 넣고 참기름으로 지져낸 국화전과 국화주, 국화차와 함께 배와 유자를 잘게 썰어서 잣과 석류를 섞어 꿀물에 타서 만든 화채 등이였다.
마가을인 음력 10월에는 날씨가 차지므로 주로 더운음식들인 신선로와 찌개, 단음식인 강정 등을 만들어 먹었다.
♣ 동지날의 동지죽
우리 인민들은 예로부터 동지날을 한해가 시작되는 날이라는 뜻에서 《아세》 또는 《작은 설》이라고 하며 하나의 큰 명절로 쇠여왔다. 우리 조상들이 동지를 한해의 시작날로 본것은 동지 다음날부터 점차 해가 길어지기때문이였다.
우리 나라에서 동지를 명절로 쇤 력사는 매우 오래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세나라시기에 벌써 동지를 력서계산에 포함시켰다고 하며 《고려사》에는 동지가 고려의 9개 명절중의 하나로 기록되여있다.
지난 시기 민간에서는 동지가 음력으로 11월 상순에 들면 《애동지》, 상순을 지나서 들면 《로동지》라고 하면서 애동지가 드는 해는 겨울이 춥고 로동지가 드는 해는 춥지 않다고 하였다.
또한 동지달에 눈이 많이 오면 다음해 5월에는 비가 내려 모내기에 좋고 풍작을 이루게 되며 동지달에 눈이 내리지 않고 찬바람이 많이 불면 다음해 5월의 기후가 나빠지고 흉작이 든다고 하면서 동지를 5월과 련결시켜 《5동지》라고도 하였다.
궁중에서는 동지를 년중 가장 중요한 명절로 여긴데로부터 동지날에 특별히 연회를 차리군 하였다. 동지죽은 오랜 세월 우리 인민들의 동지특식으로 되여왔다. 그래서 지금도 사람들은 동지라고 하면 의례히 동지죽을 생각하며 또 꼭 쑤어먹고있다.
동지팥죽의 유래에 대해서는 한해가 시작되는 날로, 큰 명절로 여긴 동지날을 계기로 그해에 지어놓은 햇곡식가운데서 붉은 팥을 맛보려고 팥죽을 쑤어먹은것이 풍습으로 굳어졌다고 볼수 있다.
고려말기의 시인 리색(1328~1396)은 동지팥죽에 대하여 《동지엔 고을풍속 / 팥죽을 되게 끓여 / 차름차름 담으면 / 빛갈도 고울시고 / 꿀을 타서 후룩후룩 / 마셔나보오》라는 시를 남기였다.
동지팥죽은 여느 팥죽과는 달리 찹쌀가루로 새알만 하게 동그랗게 빚은 오그랑이(알심 또는 새알심이라고도 함)를 두고 쑤었다. 동지죽을 쑬 때에는 다른것들보다 류달리 큰 오그랑이를 몇알 만들어넣군 하였는데 큰 오그랑이가 차례지는 아이에게는 복이 차례진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어머니들은 팥죽을 그릇에 담을 때 큰 오그랑이가 아이들에게 고루 차례지도록 하는데 관심을 돌렸다. 대부분의 지방들에서는 더운 팥죽을 훌훌 불면서 먹기를 좋아하였지만 강원도에서는 팥죽을 그릇에 담아 살얼음이 질 정도로 차지도록 장독대에 올려놓았다가 뜨뜻한 온돌방에서 밤참으로 먹기도 하였다.
평양지방에서는 예로부터 동지죽을 동지날 해가 떠오르기전에 쑤어먹는 풍습이 있었다. 동지죽은 좋은 음식이라 하여 이웃집에서 서로 나누어 먹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