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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음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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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6. 북한음식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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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동과와 토란.마, 강정.약과, 엿, 콩나물, 명태.북어

♣ 별미로 먹어온 동과와 토란, 마

동과, 토란, 마, 우엉, 련뿌리 등은 오랜 력사를 가진 우리 인민의 전통적인 음식감이다. 우리 인민들은 이것을 주로 별미로 먹었고 식량이 부족할 때에는 주식음식감로도 널리 리용하였다.

□ 동과

우리 인민들이 동과를 식생활에 리용한것은 오랜 옛날부터이지만 력사자료에는 13세기부터 나온다. 그후 《도문대작》, 《시의방》, 《산림경제》, 《규합총서》 등 조선봉건왕조시기에 나온 농서들과 료리책들에도 동과의 재배와 가공방법들이 소개되여있다.

우리 선조들은 흔히 동과로 석박지, 김치, 장절임, 죽 등을 만들어먹었다. 동과절임은 동과의 껍질을 벗기고 적당히 토막내여 소금에 절인 음식이였고 동과석박지는 속을 파낸 동과안에 동과살과 마늘, 청각, 미나리 등과 조개젓국을 채워넣고 익힌 음식이였다.

그리고 동과김치는 나박김치 담그듯이 동과살을 얇게 썰어 미나리, 파 등 양념감을 두고 담근 여름철김치였고 동과죽은 동과살과 고기를 넣고 끓인 다음 백하젓으로 간을 맞춘 음식이였다. 우리 인민들은 또한 동과살을 썰어 마늘, 장과 함께 기름에 볶다가 지져 먹기도 하고 동과살에 꿀을 넣어 졸여 먹기도 하였다.

□ 토란

토란도 력사책들에 많이 기록되여있는 음식감인데 우리 나라 중부와 남부지방에서 예로부터 리용한 남새의 하나이다. 덩이줄기, 잎 등은 반찬을 만드는데와 과자의 원료로 썼다. 덩이줄기가 작은것은 그대로, 큰것은 토막내여 삶아 먹거나 국, 볶음, 졸임을 만들어 먹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루내여 쌀에 섞어 밥을 짓거나 지짐 또는 죽도 만들어 먹었다. 평안도, 황해도, 개성 등지에서는 8월 추석날에 토란국을 끓여먹는 풍습이 있었다. 그래서 이날의 첫 인사가 《토란국을 먹었는가.》라는것이였다.

일상적으로 먹는것도 좋았지만 토란은 특히 큰물이나 가물로 농사가 안되여 기근이 들었을 때 큰 은을 냈는데 이 경우 서리가 올 때 거둔 토란을 껍질벗겨 쌀 씻은 물에 우리고 데쳐서 말려두었다가 그대로 또는 가루를 내여 먹었다.

□ 마

마는 고대부터 우리 인민이 즐긴 남새의 하나였다. 백제의 무왕은 어릴 때 마를 캐서 생계를 유지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그를 서동(마를 파는 아이)이라고 이름지었다고 《삼국유사》는 전하고있다.

마를 팔던 아이가 왕이 되였다는 이야기를 믿을수는 없으나 이 기록은 당시 마를 캐여 시장에 내다팔면서 생계를 유지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으며 그것이 일상음식감으로 리용되였다는것을 말해준다고 볼수 있다. 그후 20세기 초까지 마는 전통음식감으로 귀하게 리용되였다.

우리 인민들은 마를 고구마처럼 그대로 껍질을 벗겨 먹기도 하고 강판에 갈아서 즙을 내여 간을 맞추어 마시거나 밥에 섞어 비벼먹기도 하였으며 국거리로도 썼다. 또 가루를 내여 국수를 만들어 먹기도 하고 밀가루와 콩가루를 섞어 반죽하여 마수제비를 만들거나 쌀과 함께 죽을 쑤어 먹기도 하였다.

마를 오래전부터 식생활에 리용하여왔으므로 우리 나라에서는 남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자기 일만 그대로 하는 사람을 비겨 이르는 《귀 먹은 중 마 캐듯》과 남의 물건을 훔쳐가거나 떼여먹는 경우를 이르는 《남의것을 마 캐여 먹듯 하다.》와 같은 속담들도 생겼던것이다.

♣ 특색있는 조선의 당과 - 강정과 약과

강정은 설날에 반드시 해먹은 우리 나라 고유의 당과이다. 옛날의 강정은 찹쌀가루로 떡을 쳐서 자그마하게 썰어 말렸다가 기름에 튀겨 엿 또는 꿀을 바르고 튀긴밥이나 깨같은것을 묻힌것이였다. 민간에서는 강정을 산자라고도 하였다.

17세기말~18세기중엽사람인 리익의 말에 의하면 본래 산자라는것은 쌀을 튀긴것을 이르던 말인데 강정에 산자를 붙이게 되면서부터 강정과 산자를 같은 개념으로 쓰게 되였다는것이다. 강정은 설날의 으뜸가는 당과였을뿐아니라 귀한 손님을 대접할 때나 제상을 차릴 때 없어서는 안될 음식이기도 하였다.

약과는 밀가루를 꿀과 기름으로 반죽하여 꿀을 재워 만든 당과이다. 약과는 달고 고소한 단음식으로서 영양가가 높으며 굳지 않고 바삭바삭하여 먹기에 좋다. 그러므로 약과는 설날뿐이 아니라 기타 명절날과 결혼잔치를 비롯한 가정대사때에도 널리 쓰이였다.

강정과 약과는 구체적인 음식감과 만드는 방법에서는 차이가 있으나 다같이 기름과 꿀을 리용하여 만드는 과자류라는 의미에서 유밀과라는 이름으로 통용되였다.

♣ 고유한 민족당과 - 엿

가정들에서 한해농사를 지어 일정한 량곡을 마련한 뒤 엿을 달여 새참으로 먹는것은 우리 인민들속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온 풍습이다. 그런것만큼 12월이 되면 농촌집들에서는 어린이들을 위해 엿을 자주 하고있다.

지혜롭고 영특한 우리 민족은 낟알이나 감자 같은데 들어있는 농마를 보리길금으로 당화시키는 묘리를 터득함으로써 고유한 민족당과 엿을 만들어냈던것이다. 사탕수수나 사탕무우가 잘 되지 않는 우리 나라에서 엿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당분을 보장할수 있게 하는 좋은 당과류이다.

엿은 만드는 방법에 따라 물엿과 강엿으로 나눈다. 물엿은 엿물이 완전히 굳어지지 않은 액체상태의 엿을 말하는것이고 강엿은 완전히 졸여서 굳힌 엿을 의미한다. 강엿은 그 빛갈이 검다고 하여 검은엿이라고도 한다.

강엿을 잡아당겨 늘구었다가 다시 합치고 또 그렇게 하기를 여러번 되풀이하면 색갈이 희게 되는데 이것을 흰엿이라고 한다. 물엿은 주로 음식가공과 약을 만드는데 쓰이며 강엿은 간식으로 많이 리용된다.

엿에서는 더운 엿에 대추, 밤, 호두, 콩, 깨, 잣 등의 씨앗을 넣어 굳히거나 누런 수개고기를 폭 삶아 잘게 다져 엿과 버무려 만든 약엿들이 특색이 있다. 닦은 쌀가루를 물엿과 섞어 만든 엿을 태식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평안도지방에서 손꼽히는 당과였다.

이 지방에서는 친정집에 갔던 색시가 시집으로 돌아올 때 함지박에 태식을 가득 담아가지고 와서 시켠의 일가친척들에게 돌리는것이 하나의 풍습으로 되였다. 태식은 먼길을 떠날 때 준비하는 량식이기도 하였다

♣ 콩나물은 조선의 특산

콩나물은 조선민족의 우수한 발명식료품이다. 두부가 콩으로 만든 단백질식료품이고 장이 콩을 리용한 발효음식이라면 콩나물은 콩을 남새화한 식료품이다. 콩나물은 남새를 소금에 절여 김치를 담그기 시작했던 그 시기에 모래무지에서 절로 자라는 콩싹에서 창안된것으로 전해지고있다.

콩의 원산지인 우리 나라의 북부지역은 겨울추위가 류달리 엄혹하다. 그 추운 겨울에 남새를 해결한다는것은 옛날사람들에게 있어서 사실 매우 어려운 일이였다. 그러나 우리 인민은 자연의 도전에 순응한것이 아니라 식물의 발아원리를 리용하여 콩을 싹틔워 남새로 리용할 기발한 착상을 하고 생활에 받아들였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인민의 영특함과 지혜로움을 보여주는 단적인 실례라고 말할수 있다. 콩나물이 발명됨으로 하여 땅을 쓰지 않고도 남새를 대량생산하여 겨울철에 부족되는 비타민C를 충분히 섭취할수 있게 되였으며 기르기조건 즉 온도와 물을 임의로 조절하면서 사람의 요구에 따라 그 수확을 할수 있게 되였다.

콩나물은 콩에 어느 정도의 온도를 보장하고 물만 대주면 충분히 발근, 발아한다. 식물의 종자가 한번 발아하고 성장하기 시작하면 이것은 훌륭한 남새로 된다. 발아한 나물로서의 콩의 조성은 마른콩과는 전혀 다르다. 특히 비타민C가 새로 생기고 비타민 B1, B2의 량도 증가한다.

즉 콩나물은 비타민을 충분히 섭취할수 있게 한다. 콩나물은 숙취(마신 술이 깨지 않은 취한 기운)를 푸는데도 특효가 있다고 전해지고있다. 옛날부터 콩나물은 해장에 좋다고 하며 국으로 많이 끓여먹었다. 오늘에 와서 확증된데 의하면 콩나물속에는 알콜분해를 촉진하는 성분이 풍부히 들어있다.

최근에 발표된 한 연구보고에 의하면 술기운을 해소하는 효소를 활성화시키는 《아스파트산》이 콩나물뿌리에 제일 많이 들어있다고 한다. 해장국감으로 콩나물을 쓴 우리 조상들의 슬기도 놀랍지만 해장국을 끓일 때 콩나물뿌리를 다듬지 말아야 한다고 한 그 지혜 또한 감탄을 자아내지 않을수 없게 한다.

콩나물은 인삼과 같이 우리 나라에서 나는 콩과 우리 나라의 물로 길러야 제맛이 난다.

♣ 《명태》와 《북어》

옛날 함경도 명천에 성이 《태》가라는 고기잡이군이 살고있었다고 한다. 어느날 그가 낚시로 이상한 물고기를 잡았는데 그 이름을 누구도 몰랐다. 그래서 그 고장사람들은 그 고기를 명천에서 잡았다고 하여 《명》자를 따고 잡은 사람의 성인《태》자를 따서 《명태》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로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마른명태를 《북어》라고 한것은 이전에 남쪽에 사는 사람들이 북쪽에서 많이 나는 물고기라 하여 그렇게 부르게 된것인데 그들은 명태를 생물로 보지 못하고 마른것만 보았다. 그런데서 《북어》라면 곧 마른명태를 의미하였는데 나중에 명태를 잡는 고장인 북쪽 동해바다가에서도 마른명태를 《북어》라고 부르게 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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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출처 •조선료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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