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월대보름의 절식 - 오곡밥
정월대보름은 설을 쇠고 처음으로 맞는 보름날을 명절로 이르는 말이다. 옛날에는 이날을 《상원》이라고 하였다. 우리 인민들은 세나라시기부터 정월대보름을 명절로 쇠여왔는데 고려때에는 국가적으로 정한 9개 명절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정월대보름은 보통 그 전날 즉 1월 14일부터 쇠였다. 그래서 14일을 《작은보름》, 15일을 《대(큰)보름》이라고 하였다. 대보름날 우리 인민들은 대체로 설날에 준비하였던 음식을 이날까지 깨끗이 저장하였다가 먹기도 하였지만 또 이날에는 이날대로 여러가지 색다른 음식을 만들어 먹군 하였다.
그가운데의 하나가 바로 오곡밥이다. 오곡밥은 다섯가지 알곡으로 지은 밥으로서 《오곡잡밥》이라고도 불리워왔다. 우리 나라에서 오곡의 재배력사는 매우 오래다. 고대의 남경유적에서 벼, 조, 수수, 기장, 콩 등 오곡이 나왔고 세나라시기의 기록들에는 오곡이 잘되였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런데 오곡에 포함시키는 낟알은 시기마다 지방마다 달랐다. 옛 문헌자료들을 보면 《림원십륙지》에서는 벼, 조, 수수, 기장, 팥을 오곡으로 꼽았고 《규합총서》에서는 찰벼, 조, 수수, 콩, 팥을 《세종실록》에서는 벼, 콩, 기장, 보리, 피를 들고있다.
그러니 오곡이란 꼭 찍어 어느 곡식인것이 아니라 해당 시기에 그 고장에서 가장 많이 나는 임의의 낟알 다섯가지를 념두에 둔 개념이라는것을 알수 있다. 오곡의 재배력사가 오랜것만큼 우리 인민들이 오곡밥을 지어먹는 풍습도 그만큼 오래전에 생겼다.
《동국세시기》에는 《정월대보름에 오곡밥을 지어먹는데 옛날부터 전해오는 풍속이다.》는 기록이 있다. 정월대보름에 오곡밥을 지어먹은것은 사람들이 애써 지은 곡식을 명절을 계기로 골고루 맛보려 하고 또 오곡이 사람의 몸에 좋은데로부터 생겨난 풍습이다.
이 풍습에는 새해에는 오곡이 잘되여 풍년이 들며 오복이 있기를 바라는 인민들의 소박한 념원이 깃들어있다. 옛날부터 오곡밥을 먹을 때에는 꼭 나물음식을 곁들이는것을 풍습으로 전해왔다. 오곡밥은 오늘 명절뿐아니라 여느때에도 즐겨 지어먹는 음식으로 되고있다.
♣ 천하절미 - 약밥
약밥은 대보름날에 별식으로 해먹는 영양가 높은 고급한 음식이다. 이름그대로 약밥은 찹쌀과 꿀, 밤, 대추 등 약재로 쓰이는 음식감들로 만들기때문에 사람들의 건강과 원기회복에서 큰 효과를 나타낸다. 약밥의 어원에는 두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먹는것이 약이라는데서 이를테면 약주, 약과, 약수 등과 같이 밥중에 약과 가장 접근된 음식이라 하여 약밥이라고 했다는 설이며 다른 하나는 꿀이 들어간 음식에 흔히 《약》 자를 붙인데서부터 왔다는것이다.
옛 문헌들에는 약밥이 세나라시기와 조선봉건왕조시기에는 정월대보름날에, 고려시기에는 정월의 첫 사일에 먹는 음식으로 기록되여있다. 그러니 약밥을 정월명절음식으로 먹어온 관습은 오랜 옛날부터 있었다고 볼수 있다.
약밥은 대보름날의 명절음식으로 되여있었을뿐아니라 대사상에도 빠지지 않고 오르는 대사음식, 귀한 손님이 오면 대접하는 특식이기도 하였다. 《목은집》에는 약밥에 대해 갖풀같은 찰밥을 한덩어리로 뭉치게 하여 산꿀을 고루게 버무리니 빛갈이 곱고 게다가 다시 대추와 밤, 잣을 섞으니 이발과 혀사이에서 달콤한 맛이 난다고 씌여있다.
약밥은 특이한 맛과 향기로 하여 옛 기록에 향밥(향기로운 밥), 잡과반(여러가지 과일을 섞은 밥) 등 각이한 이름으로 올라있다. 이웃나라들에서는 우리 나라의 약밥을 《고려반》이라고 하면서 진귀한 밥으로 높이 찬양하였다고 한다.
♣ 주부들의 지혜의 산물 - 비빔밥
비빔밥은 우리 선조들의 창조적지혜와 근면성이 낳은 우수한 발명품의 하나이다.
옛날에는 《골동반》 또는 《화반》이라고도 하였는데 여기서 《골동》은 오래되였거나 미술적으로 값있는 오래된 도구나 기물인것이 아니라 여러가지 음식을 섞은것이라는 의미이며 《화반》은 밥우에 얹은 가지가지 음식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것이 그야말로 꽃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문헌상으로는 비빔밥이 1800년대말기의 《시의방》에 처음 나오지만 리용되는 음식감들과 만드는 방법이 매우 구체적이고 또 일찌기 밥이 우리 인민들의 기본주식으로 되여있었다는 사정을 놓고볼때 상당히 오래전에 우리 인민들의 식생활에 등장한 음식이라는것을 알수있다.
옛날부터 비빔밥은 반병두리(양푼과 모양이 같으나 썩 작으며 뚜껑이 있는 놋그릇의 한가지)나 대접에 담아 나박김치와 따끈한 장국을 곁들여 먹는것이 상례로 되여있었다.
여러사람이 한데 모여 식사를 할 때 남이 먹는 비빔밥이 더 맛있어보여 한술두술 나누어먹다가 《함께 비비자》고 밥을 모아 비비는 경우도 있었는데 여러가지를 넣고 함께 비빈 밥을 너도나도 떠서 먹는 기분은 참으로 좋았다고 한다.
그만큼 비빔밥은 정답고 소탈한 느낌을 갖게 하는 소박한 음식의 하나이다. 비빔밥이 생겨나게 된 유래에 대해서는 두가지 설이 전해지고있다. 하나는 우리 인민의 근면한 로동생활과정에 생겨난 음식이라는것이다.
옛날 우리 농민들은 봄철의 씨붙임때면 아침새벽부터 별이 뜰 때까지 논밭에서 부지런히 일하였다. 그리하여 농가의 아낙네들은 씨붙임때에는 남정들의 점심식사와 새참을 싸들고 들로 나가군 하였다. 그런데 음식을 나르는 아낙네들에게 걱정스러운것은 밭길을 걸을 때 그릇에 담은 찬들이 쏟아져 흩어질수 있는것이였다.
그래서 생각한것이 바로 오늘날에도 비빔밥으로 불리우는 이 음식이였다. 아낙네들은 옹배기같은 그릇에 밥을 담고 그우에 여러가지 찬들과 고추장을 올려놓은 다음 그 밥그릇을 광주리나 바구니에 넣고 들로 나갔는데 이렇게 하니 밭길을 걸을 때 크게 근심하지 않아도 되였을뿐아니라 밥과 찬을 비벼먹는것 또한 별맛이였다.
이렇게 생겨난 비빔밥은 점차 훌륭한 민족음식으로 발전하게 되였다. 다른 하나의 설은 우리 인민들이 한해의 마지막날인 섣달그믐날저녁에 1년을 무사히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묵은 음식이 해를 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모두 모아 한그릇에 담아 먹던 관습으로부터 비빔밥이 나왔다는것이다.
어느 설이나 다 우리 인민들과 주부들의 영특하고 깐진 생활기풍이 엿보이는 이야기이다. 비빔밥은 어느 지방에서나 다 만들어먹었지만 특히 이름난것은 해주, 진주, 전주지방의 비빔밥이였다.
해주지방의 별식으로서 해주교반, 골동반이라고도 불리운 해주비빔밥은 다른 지방의 비빔밥과 만드는 방법은 비슷하였으나 특이하게 수양산의 고사리와 이 지방에서 많이 나는 김을 섞어 만드는것으로 하여 유명하였다.
진주비빔밥은 다른 나물이나 반찬과 함께 고기회를 밥우에 올려놓고 선지국(소피를 넣고 끓인 국)을 반드시 같이 내는 특색있는 음식이다. 전주비빔밥은 3년 묵은 장, 콩나물과 함께 닭알을 까서 얹고 기름기를 모두 걸러낸 소대가리국물로 밥을 비비는것으로 하여 해주나 진주의 비빔밥과 마찬가지로 이채를 띠는 지방음식으로 손꼽히게 되였다.
♣ 대중음식 - 국밥
국말이, 장국밥 등으로 불리워 온 국밥은 국에다 직접 밥을 만 음식으로서 조선음식의 기본차림인 국과 밥을 동시에 먹을수 있게 하는 음식이다. 국밥은 전쟁터나 일터, 장터, 주막 등지에서 바쁘거나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해야 할 때 기다리지 않고 간편하면서도 뜨겁게 먹을수 있는 장점이 있어 단체음식용으로 발전하였다.
국밥은 콩나물국, 고기국, 토장국, 김치국, 곰탕 등 아무 국으로나 이루어지며 여러가지 음식감들이 골고루 들어있어 영양소도 풍부하고 찬이 별로 필요없다. 때문에 비빔밥과 함께 대중음식으로 널리 리용되여왔다.
옛 료리책에 국밥이 구체적으로 소개된것은 오래지만 문화유산으로 남아있는것은 조선봉건왕조시기에 발행된 《년대규곤요람》과 《시의방》이다.《년대규곤요람》에는 장국밥이 국수를 마는 법과 같으나 국수대신 밥을 마는것이며 밥우에 고기를 졸인 장물을 붓는다고 설명하고있다.
♣ 고깔밥.감투밥
고깔처럼 생긴 밥 즉 그릇우에서 높이 수북하게 담은 밥을 이르는 말이다. 지난날에 생활이 곤난하여 제사 같은것을 지낼 때 밥그릇을 보기 좋게 하기 위하여 조밥우에 눈가림으로 한꺼풀 흰쌀밥이나 팥밥 같은것을 씌운 밥그릇을 말하였다. 고깔밥을 감투밥이라고도 한다. 그것은 감투를 씌운것처럼 사발우에까지 수북이 담은 밥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