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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6. 북한음식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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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우리술, 국화전.국화술, 막걸리

♣ 우리나라 술의 기원

술은 원시시대에 자연적으로 발효된 과일이나 열매의 즙으로부터 유래되였다. 그후 신석기시대에 농사를 짓게 되면서 사람들은 낟알을 가지고 술을 만들어 마셨다. 그때 리용한 술잔들이 오늘 유물로 전해지고있다. 우리 나라에서의 술에 대한 력사기록은 고대에 처음 보인다.

고대국가들인 고조선에서는 10월에, 부여에서는 정월에, 마한에서는 5월에 사람들이 춤과 노래와 술로써 하루를 즐기였다고 한다. 그때 술은 막걸리같은 곡주였다고 인정된다. 고대사람들은 이미 발전된 양조법과 술보관법을 알고있었으며 술마시는 례절도 지켜왔다.

세나라시기이후 우리 나라의 술은 외국에도 널리 알려졌다. 다른 나라의 력사책들에는 고구려사람들이 술을 잘 빚었다고 하였고 8~9세기 이웃나라의 풍류객들이 우리 나라 술을 널리 리용하였으며 고려의 술이 독하고 빨리 취하고 빨리 깨는데 그 맛이 좋다고 하였다.

고려때까지는 청주, 탁주가 기본을 이루었으며 그후 소주가 널리 퍼지게 되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이르러 술의 종류는 매우 많아졌다. 기록들에 보이는 술만 하여도 백수십종이 넘는다.

조선술이 일찍부터 유명하고 명성이 높았던것은 우리 나라의 물이 수질이 좋으며 낟알 또한 기름지고 기후풍토가 알맞춤하였을뿐아니라 양조기술이 발전하였기때문이였다.

♣ 우리 나라의 술 몇가지

□ 소주

소주는 담근 술을 고아 증발시켜 이슬을 따로 받아낸 술이라고 하여 로주(이슬 로, 술 주)라고 하였고 화주, 한주, 기주라고도 하였다. 소주에 대한 력사자료는 《고려사》의 최영전에 처음 나온다. 기록에 의하면 최영이 무인으로서 명성을 날렸을뿐아니라 소주 또한 즐겨 마셨으므로 《소주군》이라는 별명을 받게 되였다고 한다.

우리 나라 소주가운데서 특히 소주를 한두번 더 고아서 꿀과 지초를 깔고 이슬을 받아낸 감홍로는 색갈이 불그스레하고 맛이 달며 독한것으로 이름난 술이였다.

그밖에 배와 생강을 넣어 담근 황해도의 리강고, 구급약으로 쓰는 죽력(푸른 참대를 불에 구워서 받은 진액)을 섞어서 만든 소주에 생지황, 꿀, 석창포 등을 넣어 만든 죽력고는 호남(전라남북도)지방의 이름난 소주였다.

소주는 주정이 높아 큰 잔에 많은 량을 마시기 어렵다. 하여 조선봉건왕조시기 사람들은 작은 잔을 《소주잔》이라고 하였다.

□ 청주 - 약주

청주는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약주로 불리웠다. 때문에 약주는 청주의 다른 명칭이다. 조선봉건왕조시기 청주에 속하는 술은 기록에 나온것만 보아도 수십종이나 된다. 청주를 약주로 부르게 된 리유에 대하여 여러가지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하나는 18~19세기 이름있던 학자 서유구가 고심하던 끝에 특별히 좋은 술을 만들었는데 그의 아명이 약봉이고 그가 살던 곳이 약현이 였으므로 《약봉이 만든 술》, 《약현에서 만든 술》이라는데서 유래되였다는것이다.

다른 하나는 조선봉건왕조정부에서 농사가 제대로 안되는 현에 금주령을 내리군 하였는데 그런속에서도 량반관리들은 술을 끊을수가 없어서 《약물》이라고 하면서 마셨기때문에 약주라는 말이 생겼다고도 한다. 그래서 《점잖은》 사람들이 마시는 술을 모두 약주로 부르게 된것으로 보아진다.

그리고 청주에 여러가지 약용식물을 넣어 보신에 썼기때문이라고도 하며 술을 적당히 마시면 약이 된다는데서 나온 말이라고도 전하여온다.

□ 그밖의 술 - 과일술

우리 나라의 과일술은 과일류를 발효시킨것이 아니면 과일이나 나무열매의 성분을 우려내여 만든것이였다. 주로 잣, 포도, 측백나무열매, 호두, 매화나무열매 등을 우려서 만들어 약용이나 별미로 마셨다.

포도주는 고려이전에도 우리 나라에 있은것으로 인정되나 기록상으로는 고려중엽의 《한림별곡》에 처음 보인다. 우리 나라에서 오래전부터 포도를 재배하였으므로 포도주도 오랜 력사를 가진 술이라고 할수 있다.

□ 가향술

가향술은 꽃이나 식물잎을 넣어 독특한 향기가 나도록 만든 술이였다. 가향술에는 복숭아꽃, 솔꽃, 련꽃잎, 참대잎, 유자껍질, 진달래꽃, 배꽃 등을 넣어서 빚은 술과 정주나 소주에 그것들을 넣어 우러나게 한 술이 있었다.

□ 약용술

약용술은 여러가지 약재를 넣어 만든 술이였다. 주로 대추, 후추, 계피, 차조기, 오갈피, 불로초, 구기자, 청포, 솔잎, 솔방울, 인삼, 당귀, 최향, 두릅, 우엉, 마늘, 범뼈 등을 넣어서 만들었다.

□ 이양술

우리 나라에는 나무통이나 참대통에서 빚거나 술항아리를 땅속에 묻거나 찬물속에 담가 익혀 만든 술도 있었다. 정상적인 양조법이 아닌 방법으로 만든 술이라 하여 이양술이라고 하였다.

♣ 국화전과 국화술

국화는 찬서리에도 지지 않고 피여있는 생활력이 강한 꽃이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국화를 조선사람의 강직한 성품과 련관시키며 몹시 사랑하여왔다. 국화는 우리 인민들의 정신문화생활뿐아니라 식생활과도 련결되여있으니 그 대표적실례가 바로 국화전과 국화술이다.

국화전은 찹쌀가루에 국화꽃을 섞어 반죽하여 지진 지짐이다. 우리 인민들은 봄날에 진달래화전을 만들어 먹는것과 마찬가지로 국화가 만발하는 가을날에는 국화전을 특식으로 지져먹으면서 계절의 향취를 한껏 느끼군 하였다. 국화전은 특히 중구날의 대표적인 절식이였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푸르던 산천이 그림처럼 울긋불긋한 색갈로 아름답게 물드는 단풍의 계절을 그저 보내기 아쉬워 음력 9월 9일을 맞으며 산에 올라가 단풍도 구경하고 별식도 만들어 먹으면서 하루를 즐겁게 보내군 하였다.

우리 조상들이 음력 9월 9일을 명절로 쇤것은 이날이 밝은 해, 달을 상징하는 좋은수라고 하는 《아홉구》자가 겹치는 날이기때문이였다. 따라서 이날을 《중구》 라고 불러왔다. 중구는 《중양》이라고도 일러왔다. 국화전과 마찬가지로 국화술도 중구날의 대표적인 음식이였다.

우리 인민들은 오랜 옛날부터 술을 담그어 명절날과 같이 즐거울 때와 경사가 났을 때, 여러 대사때 널리 리용하여왔다. 우리 나라에서 술과 관련한 이야기들은 벌써 고대시기의 기록들에 적지 않게 보인다.

《삼국지》에 의하면 10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데 술을 마시고 가무를 한다고 하였고 마한에서도 5월과 10월에 바쁜 농사철이 지나면 한데 모여 술을 마시고 여러 사람들이 서로 어울려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춘다고 하였다. 세나라시기에 이르러 술제조기술은 더욱 발전하였다.

옛 기록에는 고구려사람들이 일찍부터 술을 잘 빚었다고 서술되여 있다. 발해 및 후기신라시기, 고려시기를 거쳐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이르러서는 술제조기술을 종합체계화하고 연구보급하기 위한 사업이 활발히 진행된 결과 술의 종류가 늘어나고 양주업이 더욱 완성되였다.

조선봉건왕조시기의 일부 력사기록들만 보아도 《음식지미방》에는 40여종, 《림원십륙지》에는 무려 140여종의 술이 종합편찬되여있으며 그와 관련한 기술적문제들이 구체적으로 서술되여있다. 우리 인민들이 전통적으로 주로 마셔온 술들은 소주와 청주였다.

소주는 알곡, 감자, 도토리 등 농마질원료를 당화 및 발효시켜 만든 발효액을 증류하여 얻은 술이다. 소주는 담근 술을 고아 증발시켜 이슬을 따로 받아낸 술이라 하여 로주(《이슬 로》,《술 주》)라고 하였고 불을 때서 만든다고 하여 화주, 술이 맑고 희다고 하여 백주라고 불렀다.

소주는 주정이 높아 큰 잔에 많은 량을 마시기 어렵기때문에 작은 잔으로 조금씩 마시였다. 그래서 조선봉건왕조시기 사람들은 작은 술잔을 가리켜 《소주잔》이라고 하였다. 청주는 농마질원료에 누룩과 물을 두어 발효시킨 다음 압착청정하여 만든 술이다.

청주는 매우 맑고 투명하며 산도가 낮아 시큼하거나 텁텁하지 않고 해로운 물질이 적다. 청주를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약주라고도 하였는데 그 리유에 대하여서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하나는 18~19세기 이름있는 학자 서유구가 고심하던 끝에 특별히 좋은 술을 만들었는데 그의 아명이 약봉이고 그가 살던 곳이 약현이였으므로 《약봉이 만든 술》, 《약현에서 만든술》이라는데서 유래되였다는것이다. 그리고 술을 적당히 마시면 약이 된다는데서 나온 말이라고도 전하여온다.

리유가 어떻든 청주는 약주로 불리우면서부터 조선술로 알려지게 되였다. 그리고 약주라는 말은 술에 대한 고상한 명칭으로 쓰이게 되였으며 술을 권할 때 경의를 표시하여 《약주 한잔 드십시오.》라고 하는것은 조선민족의 하나의 습관으로 되였다.

우리 인민들이 예로부터 마셔온 술들가운데는 이러한 소주와 청주말고도 밑술을 막걸러 대중음료로 만든 탁주도 있었고 소주 또는 청주에 여러가지 음식감을 넣어 맛을 돋군 약용술 또는 가향술이라고 하는 특별한 술들도 있었다.

약용술에서는 도소주를 제일로 꼽아왔다. 도소주는 설명절에 특별히 마셔온 술인데 계피, 산초, 흰삽주뿌리, 도라지, 방풍 등 여러가지 고려약재를 넣어서 만든것으로서 이것을 마시면 병이 생기지 않고 건강이 좋아진다고 하였다.

도소주를 마실 때에는 나이가 적은 사람부터 마셨다. 이러한 술돌림법에는 설을 계기로 나이를 한살 더 먹는 젊은 사람은 축하하고 늙은 사람은 위안하는 뜻이 담겨져있었다고 한다. 한편 가향술가운데서는 솔꽃술, 참대잎술, 배꽃술 등과 함께 바로 중구날의 국화술을 으뜸으로 쳐주었다.

국화술은 국화꽃과 그 줄기를 넣고 만든 술이다. 국화술은 보통 가을철에 담그어 한해동안 두었다가 다음해 중구날에 마셨는데 이렇게 만든 국화술은 장수에 좋다고 일러왔다.

♣ 시큼털털한 막걸리

막걸리는 농마질원료를 누룩으로 발효시킨 다음 그대로 걸러 만든 술이다. 밑술을 막 걸러 만들었다고 하여 그 이름도 막걸리이다. 막걸리는 고장에 따라 탁주, 탁배기, 농주, 농탁이라고도 불러왔다.

여기서 《탁주》는 술의 색갈이 희뿌옇게 흐리다고 하여 붙은 이름이며 《탁배기》는 희뿌연 술이 가득 담긴 그릇이라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이였다. 《농주》와 《농탁》은 농민들이 즐겨마시는 음료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였다. 전국적으로 흔히 통용된것은 《막걸리》였다.

지난시기 막걸리는 우리 인민들의 식생활에서 떼여놓을수 없는 음료로 되여왔다. 비록 주정이 높지 않고 맑지는 못하지만 막걸리는 설을 비롯한 명절때에는 명절음료의 하나로, 또 잔치와 같은 가정대사때에는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음료로 널리 애용되였다. 특히 막걸리는 시큼털털하고 시원하여 무더운 여름 농사일의 쉴참이나 점심때에 농민들이 매우 즐겨 마시군 한 음료였다.

우리 인민들이 막걸리를 얼마나 좋아하고 많이 마셨는지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우리 나라에 왔던 다른 나라 사람들이 들일의 쉴참에 큰 사발에 막걸리를 담아 쭉쭉 들이키는 농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술을 많이 마시고 어떻게 일하는가고 몹시 놀라와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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