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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음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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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6. 북한음식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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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찰떡과 흰떡, 쑥떡, 쉬움떡, 메설기, 백설기, 추석송편, 노치

♣ 명절분위기를 돋구는 찰떡과 흰떡

겨울철에는 우리 인민들이 예로부터 년중 가장 큰 명절로 쇠여 온 설명절이 있다. 력사기록에 의하면 고구려사람들은 해마다 설을 맞으면 강가에 모여서 편을 갈라 돌팔매놀이와 눈끼얹기 등과 같은 명절놀이를 하면서 즐겼다고 한다.

이것은 상무적기풍이 강한 고구려사람들이 활기있는 여러가지 놀이를 하면서 설을 즐겁게 쇠였다는것을 말해준다. 설은 신라와 백제에서도 쇠였다. 신라에서는 정월초하루날이 되면 왕이 조원전에 나와 앉아 백관들의 새해축하인사를 받았으며 민간에서도 서로 축하하고 여러가지 놀이를 하면서 하루를 즐기였다.

한편《삼국사기》에는 백제에서 261년에 설맞이행사를 하였으며 왕이 정월초하루날에 옷을 단정히 입고 정사를 처리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러한 자료들은 세나라시기에 벌써 설명절을 쇠는 풍습이 일반화되여있었다는것을 보여주는데 실상 설명절은 고대시기에 그 연원을 두고 수천년을 내려오는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명절이다.

현대에 와서 쇠고있는 양력설은 우리 나라에 양력력서가 도입되기 시작한 1896 년(구체적으로 1896 년 1월 1일, 음력으로는 1895년 11월 17일)부터 생겨난 명절이다. 설명절때가 되면 우리 인민들은 명절 썩 전날부터 집안팎을 깨끗이 거두고 명절기분으로 흥성거렸다.

설날아침에는 집집마다 갖가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웃어른들에게 먼저 드리고 온 식구가 한자리에 둘러앉아 나누어먹었으며 세배군들에게도 대접하군 하였다. 여느 명절들과 마찬가지로 설날에도 명절음식으로서 첫번째로 꼽은것은 찰떡, 절편을 비롯한 갖가지 떡들이였다.

찰기가 나게 잘 친 찰떡은 팥, 참깨, 대추, 밤, 잣, 당콩 등으로 만든 고물을 묻혀 일정한 크기로 잘라 접시에 소복하게 담았다. 예로부터 우리 나라에서는 연백(연안, 배천)지방의 찰떡을 제일로 일러주었다. 이 지방의 찰떡은 콩보숭이를 묻히는것으로 해서 팥고물을 위주로 하는 다른 지방의 찰떡과 달랐다.

이 지방에서는 잔치상에 꼭 찰떡을 올려놓았으며 사돈집에 보낼 때에는 《안반(떡을 칠때에 쓰는 두껍고 넓은 나무판)만 하다.》고 표현할 정도로 찰떡을 크게 잘라서 고리짝에 담기도 하였다. 찰떡은 어디까지나 《찰떡》이라는 고유한 우리 말로 부를 때만이 졸깃졸깃한 그 독특한 맛이 잘 안겨오는 우리 민족고유의 음식이다.

설날에는 설기도 즐겨 만들어 먹었다. 설날에 해먹은 설기가운데서 가장 이름난것은 개성의 소머리떡이였다. 소머리떡이란 떡을 식혀서 썬 모양이 마치 소대가리편육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말이다. 소머리떡은 썰었을 때 겉모양이 독특하고 희환할뿐아니라 맛 또한 일품이였다.

개성지방에서는 이 떡을 자그마한 시루에 쪄가지고 시루채로 사돈집에 설음식으로 보내는 풍습이 있었다. 우리 나라 여러 지방들에서는 설날에 절편, 가래떡, 골무떡, 꼬리떡과 같은 흰쌀떡들도 즐겨 해먹었다. 절편은 떡살을 박아서 끊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인데 지방에 따라 절떡, 달떡, 룡떡, 색떡으로도 불리웠다.

그리고 가래떡은 흰떡을 늘구어 길다랗게 만든것이고 골무떡은 골무만큼씩 짧게 떡을 끊은것이며 꼬리떡은 량귀를 꼬리처럼 뾰족하게 만든것이다. 절편과 꼬리떡은 색소를 넣어 빨갛고 파랗게 물들여서 큰상에 웃기떡으로도 썼으며 가래떡은 떡국이나 떡볶음감으로도 리용하였다.

♣ 청신한 향기가 풍기는 쑥떡

떡은 조선사람이라면 누구나 즐겨먹는 우리 민족의 특색있는 주식물의 하나이다. 우리 나라에서 떡이 생겨난것은 시루를 만들어쓰기 시작한 청동기시대(약 4000년전)부터였다고 보고있다. 떡에 대한 자료는 세나라시기의 유적이나 고사 등에 많이 보인다.

고구려 고국원왕릉의 앞칸 벽화에는 시루를 얹어놓고 무엇인가 찌는 그림이 있는데 이것은 떡을 찌는 모습을 형상한것으로 보아진다. 또 《삼국사기》에는 신라에서 왕위계승문제를 둘러싸고 론의가 분분하던 끝에 두 왕자가 떡을 씹어 이발자리를 더많이 낸 사람이 왕위에 오르기로 결정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떡은 명절때는 물론 생일이나 혼인잔치, 제사와 같은 가정대사때 그리고 귀한 손님이 찾아왔을 때 흔히 만들어 먹었다. 항간에서는 떡방아 찧는 소리와 떡메소리가 높이 올려야 명절을 쇠는것 같고 잔치기분이 난다고 하였다.

우리 인민들이 즐겨 만들어 먹은 떡은 크게 두가지 즉 순 낟알로만 만든 떡과 낟알에 다른 음식감들을 넣어 만든 떡으로 갈라볼수 있는데 전자는 년중 아무때나 별식으로 해먹었고 후자는 주로 해당 계절에 많이 나는 음식감들을 리용하여 음식의 계절적특색이 살아나게 만들어 먹었다.

쑥떡은 예로부터 우리 인민들의 특색있는 봄철음식으로 널리 알려져있었다. 쑥떡은 쫄깃쫄깃하고 청신한 쑥향기가 있어 맛이 좋으며 빨리 쉬거나 굳어지지 않는 특성이 있다. 지금도 우리 나라에서는 늦은 봄이면 쑥떡을 해먹는 풍습이 일반화되여있다.

♣ 고명이라는 말이 유래된 쉬움떡

쉬움떡은 쌀가루를 감주나 막걸리로 반죽하여 부풀게 발효시킨 다음 쪄서 만든 떡이다. 쉬움떡은 현대에 와서 불리워진 이름이고 옛날에는 이 떡을 《기지떡》,《기주떡》,《증편》이라고 하였다. 기지떡, 기주떡은 술을 발효시키는 공정을 당시의 말로 《기주한다.》고 한데로부터 붙은 이름이며 증편은 증기로 쪄낸 떡이라는 뜻이다.

쉬움떡에서 고명은 떡맛을 돋구는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이다. 현대에 와서 많은 음식들에 눈맛을 좋게 하기 위해 고명과 장식을 하고있는데 고명이 처음으로 도입된 음식이 바로 쉬움떡이였다고 한다. 그래서 고명이란 말은 쉬움떡에서 유래되여 오늘까지 전해진것으로 보고있다.

사실 《고명》에서 《고》는 《떡 고》자이고 《명》은 《새길 명》자이다. 쉬움떡의 고명감으로는 주로 대추, 밤, 곶감 등을 쓴다. 쉬움떡은 향기와 색갈이 독특하고 맛있는 고명이 있어 먹음직스럽고 씹는 맛이 매우 좋으며 잘 쉬지 않는다.

쉬움떡은 년중 아무때나 만들어 먹을수 있었지만 특히 따뜻한 날씨로 하여 몸이 나른해지고 식욕이 떨어지는 봄철에 특식으로 많이 해먹었다. 주목할만 한것은 봄철의 파일(이전대 음력으로 사월 초여드레를 명절로 이르던 말)에 석남나무의 잎을 넣고 만든 쉬움떡을 별식으로 먹은것이다.

석남나무는 높은 산지대의 습지에서 자라는 사철푸른잎 작은 떨기나무이다. 그 잎은 크기가 진달래잎과 비슷하고 닭알모양 또는 길둥근모양이며 독특한 향기가 나는데 예로부터 민간에서 진통제로 써왔다.

♣ 달짝지근한 메설기

설기는 우리 인민들이 오랜 옛날부터 만들어먹은 떡의 한 품종으로서 우리 나라의 고유한 민족음식이다. 시루에서 쪄서 만든 떡이라고 하여 시루떡이라고도 하는 이 음식은 오랜 연원을 가지고있다.

옛 기록에 의하면 7~10세기에 《해동성국》으로 이름을 떨친 발해에서 배와 포도로 만든 설기가 볼품과 맛에서 다 극상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발해사람들이 떡을 만들 때 떡의 당분을 보장하기 위하여 배를 채쳐 떡가루와 함께 반죽하고 포도는 말려서 떡반죽에 박아 시루에 쪄냈다는것을 말해준다.

설기의 기본음식감은 흰쌀, 찹쌀, 좁쌀, 수수쌀 등이며 그사이에 놓은 고물로는 팥, 콩, 깨, 록두 등을 쓴다. 메설기는 우리 나라 각지에서 음력 2월 1일(일군날)을 전후한 시기에 특별히 마을주변의 들판, 밭뚝, 길가, 제방뚝 등지에서 자라는 메꽃의 희고 연한 뿌리를 캐다가 특식으로 만들어 먹는 음식이였다.

우리 인민들은 매해 음력 2월 1일을 《천하지대본》으로 여겨온 농사의 첫 공정인 밭갈이를 시작하는 날이라고 하면서 하루 푹 쉬면서 잘 먹고 즐기군 하였는데 메설기는 이날의 대표적인 음식의 하나였다. 메설기는 구수하면서도 달짝지근한 맛이 있어 이른 봄날 사람들의 식욕을 부쩍 돋구어준다.

♣ 아기의 백날상에 즐겨오른 백설기

백설기는 떡이 흰눈처럼 하얗다는데로부터 이름 지어진 떡으로 우리 인민들이 백날을 맞는 아기를 축하하는 음식상에 즐겨 올리던 음식이다.

흰쌀로 백설기를 만들어 백날상에 차려놓는데는 백날이 될 때까지 색있는 옷을 입히지 않고 흰색의 천으로만 옷을 지어 입히는것과 마찬가지로 아이가 흰눈같이 깨끗하고 건강하게 자랄것을 바라는 우리 인민들의 소박한 마음이 깃들어있다.

우리 인민들은 백날상에 차려놓았던 음식을 이웃간에 나누어 먹으면 아이의 장래가 좋아진다고 하면서 이웃들과 함께 백설기떡을 나누어 먹으며 화목을 돋구기도 하였다.

♣ 추석송편

예로부터 《5월농부, 8월신선》이라는 말이 있듯이 음력 8월은 봄내 여름내 땀흘려 일하던 농민들이 허리를 쭉 펴고 오곡이 무르익는 기름진 들판과 갖가지 향기로운 과일들, 주렁지게 열린 산판을 흐뭇이 바라보며 풍년의 기쁨을 누리는 시기이다.

우리 인민들은 예로부터 이 음력 8월의 달밝은 보름날을 풍년농사를 지어놓은 기쁨을 즐기고 돌아간 조상들께 지성을 표시하는 명절로 쇠였다. 이날이 바로 《가을저녁》이라는 뜻을 가진 추석이다.

추석은 아름다운 가을날이라고 하여 《가위날》 또는 《한가위날》, 가을의 가운데 달인 8월의 명절이라 하여 《중추절》이라고 일러오기도 하였다. 세나라시기에는 추석을 《가배날》이라고 하면서 큰 명절중의 하나로 꼽았다.

추석이 가까와오면 사람들은 햇곡식을 먼저 조상들에게 《맛》보인다는 뜻에서 올벼를 베여 쌀을 내고 록두, 팥, 콩 등을 준비하였으며 추석전날에는 명절음식을 만들기에 바쁜 시간을 보냈다. 풍요한 가을철의 명절인것으로 하여 추석날에 만들어 먹은 음식은 그 가지수도 많고 맛도 이채로왔다.

그 하많은 음식들가운데서 꼭 놓치지 않고 준비하군 한 음식이 하나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송편이였다. 추석날에는 찰떡도 있어야 하였지만 특히 송편이 빠져서는 안되였다. 우리 인민의 생활에서 송편은 추석을 상징하는 떡으로 되여왔다.

그래서 추석날에 만들어 먹는 송편은 특별히 《추석송편》이라고 일러왔다. 송편은 솔잎을 깔고 찐 떡이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송편의 크기나 빚는 방법은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달랐다.

평양을 비롯한 평안도지방에서는 손바닥만 하게 크게 빚었고 황해도지방에서는 손으로 살짝 눌러서 빚었으며 강원도지방에서는 손으로 막 쥐였다가 놓은것처럼 빚었다. 강원도지방에서는 송편을 감자가루떡반죽에다 당콩소를 넣어서 빚기도 하였는데 그것은 이 지방의 감자가 앙금이 많이 나고 질적거리지 않으며 맛이 유별난것과 관련된다.

이렇게 만든 송편은 다른 지방의 흰쌀송편에 못지 않는 특식으로 일러주었다. 대체로 추석날에는 송편을 비롯한 떡들을 흰쌀, 찹쌀같은것으로 만들었지만 이런것이 잘되지 않는 함경도, 량강도지방에서는 그곳에서 많이 나는 귀밀로 떡을 해먹었다.

이곳 사람들은 귀밀떡을 기름을 찰찰 발라 내놓군 하였는데 이것이 얼마나 매끄러운지 예로부터 삼수, 갑산지방에서는 《귀밀떡에 기름을 발라 저가락으로 잘못 집으면 후치령을 넘어간다.》는 말까지 생겨났다. 송편은 추석날뿐이 아닌 여느 다른 명절때에도 특식으로 많이 해먹군 하였다.

특히 지난날 봄철의 명절이였던 일군날에 송편을 만들어 먹는 풍습이 이채로왔다. 이날에는 곡식낟가리에서 털어낸 얼마 되지 않는 쌀에 다른 쌀을 보태여 송편을 만들었는데 흔히 자기 나이만한 개수를 먹었다고 한다.

어떤 고장에서는 이날에 집안식구들의 나이를 합한 수만큼 숟가락으로 쌀을 퍼내여 송편을 만들기도 하였다. 송편은 풍요한 가을철의 가장 대표적인 음식이며 빼놓지 말아야 할 추석날의 절식이였다.

♣ 노치

노치는 평안도와 황해도지방에서 명절날에 즐겨 만들어 먹은 음식이다. 특히 평양의 노치가 유명하였는데 이곳 사람들은 추석이 오면 의례히 노치를 만들어 먹군 하였다.

추석전날밤 연푸른 달빛이 은은히 흐르는 뜰안에다 솥을 걸어놓고 노치를 지져서 단지나 항아리에 차곡차곡 넣고 봉해두었다가 그 다음날인 추석날 저녁에 준득준득해진것을 꺼내여 어른, 아이 할것없이 꼬챙이에 꿰들고 달구경을 하면서 먹는 맛이란 참으로 좋았다.

일부 가정들에서는 이때 만든 노치를 잘 보관해두었다가 가을걷이가 한창 바쁜 때에 하나씩 꺼내먹으면서 당분을 섭취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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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출처 •조선료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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