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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6. 북한음식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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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회료리, 젓갈, 설야멱적, 순대, 두부

♣ 신선하고 산뜻한 회료리

우리 인민은 일찍부터 회료리를 좋아하였다. 력사기록도 세나라시기에 사람들이 물고기회를 즐겨먹은 사실을 전하고있다. 그후 고려와 조선봉건왕조시기를 거쳐오면서 회는 민족음식의 하나로 발전하여왔다. 회는 고기회와 물고기회로 구분되는데 력사민속자료들에 있는 회의 몇가지 가공방법을 보면 다음과 같다.

□ 고기회

○ 고기회는 주로 소의 살고기, 콩팥, 처녑, 간, 양, 꿩고기 등으로 만들었다.

○ 기름층이나 힘줄이 없는 연한 살고기를 얇게 저며서 물에 담가 피기를 없애고 가늘게 채친다. 파, 마늘, 후추가루, 기름, 깨, 꿀을 섞어 만든 양념에 재워서 잣가루를 뿌린다. 이것은 전형적인 고기회로서 생회라고 하였다.

○ 소의 처녑, 양을 뜨거운 물에 약간 데쳐내여 얇게 썬 다음 초장과 겨자장에 버무리거나 찍어 먹었다. 이것은 약간 데쳐냈다고 하여 숙회라고 하였다.

○ 소고기와 꿩고기를 섞어 칼탕질하여 기름장에 버무려 다식처럼 일정한 나무틀에 찍어내여 잠시 건조시킨 다음 초간장이나 초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이것은 회료리의 한가지이지만 일종의 고기《다식》이였다.

○ 겨울철때 꿩의 내장을 빼고 얼음이나 눈우에서 얼군 다음 살을 얇게 썰어 초장, 생강, 파를 두고 버무려 먹었다.

○ 궁중료리에 갑회라는것이 있었는데 이것은 소의 살고기, 양, 처녑, 간, 콩팥과 전복, 조개 등을 잘게 썰어서 참기름, 간장, 후추가루, 파, 마늘, 소금 등을 섞어서 만든 료리이다.

○ 색갑회는 처녑과 조개를, 삼색갑회는 콩팥, 처녑, 전복을, 사색갑회는 처녑, 콩팥, 전복, 조개를 각각 섞어서 만들었다.

□ 물고기회

○ 물고기회음식감는 주로 명태, 숭어, 준치, 웅어, 넙치, 공치, 도미, 민어, 잉어, 홍어, 가물치, 쏘가리, 붕어와 해삼, 게 그리고 전복, 굴을 비롯한 각종 조개류이다.

○ 물고기회는 일반적으로 껍질을 벗겨 살을 얇게 썰어 겨자나 초고추장에 버무려 먹었다.

○ 작은 물고기, 조개 등은 밸을 따내고 그대로, 낙지, 문어 소라, 전복, 해삼 등은 보통 살짝 데쳐서 회를 만들었다.

○ 우리 조상들은 신선한 물고기를 투박하게 썰거나 작게 썰어서는 생선의 고유한 맛을 볼수 없다고 하여 대체로 입에 넣으면 혀에 사르르 감기면서 씹힐 정도의 크기로 얇게 썰었다.

○ 생선을 써는 방법과 모양에 따라 볼품과 맛이 다를수 있기때문에 살결대로 가늘게 썰면서 모양은 입안에 넣기 좋게, 보기에도 알맞춤하게 하였다.

○ 우리 인민들은 보통 회감을 초고추장에 버무리거나 초고추장이나 초간장에 찍어 먹었다.

○ 그러나 진짜 회맛은 회감을 식초를 조금 탄 간장에 찍어 먹어야 느낄수 있다고 하였으며 홍어와 가오리는 초고추장에 찍어먹는것이 제격이라고 일러왔다.

○ 여름철에는 쟁반에 얼음을 깔고 그우에 회를 담은 접시를 놓고 먹으면 회의 시원하고 생신한 맛이 더 돋구어진다고 하였다.

○ 회료리의 양념으로는 고추가 재배되기전에는 겨자장을 많이 썼고 17세기 이후부터는 주로 초고추장을 썼다.

♣ 밑반찬으로 으뜸가는 젓갈

젓갈은 우리 나라에서만 특이하게 찾아볼수 있는 음식의 하나이다. 옛 문헌에 사람들이 새우를 잡아서 젓갈을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것은 우리 조상들이 오래전부터 벌써 젓갈을 담글줄 알았으며 그것을 식생활에 널리 리용하여왔다는것을 말해준다.

젓갈품가운데서 맛좋기로 소문난것은 평양의 건뎅이젓과 새우젓, 함경도의 가재미젓, 황해도의 백하젓, 강원도의 오징어젓과 명태알젓, 명태밸젓 등이다. 젓갈은 짭짤하면서 구수한 맛과 향기를 내므로 밥반찬으로 그저그만이다. 젓갈은 수산물을 절구어 보관하는 과정에 그 가공법이 창안되여 생겨난 음식이라고 할수 있다.

봄과 여름은 물이 따뜻하고 먹이원천도 풍부해 바다에 갖가지 수산물들이 많이 모여든다. 그래서 이 계절들에는 우리 나라 전반적연해가 수산물잡이로 붐비군 하였는데 어떤 때에는 잡은 물고기가 너무 많아 부두가에 산더미처럼 쌓이고 지어는 미처 처리하지 못해 썩어버리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우리 인민들은 이와 같이 어획량이 많은 봄철과 여름철에 잡은 수산물들을 여러가지 손쉬운 방법으로 대량 가공하여 저장하였다가 물고기잡이를 제대로 할수 없는 경우가 많은 가을과 겨울에 식찬으로 리용하군 하였다. 우리 선조들이 흔히 적용한 물고기저장방법은 말리기, 절구기, 얼구기 등이였다.

이가운데서 가장 많이 써온 방법은 소금에 의한 절구기였다. 이 방법으로는 날씨조건과 장소에 구애됨이 없이 언제 어디서나 많은 량의 물고기를 단번에 처리할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저장하는 과정에 사람들은 같은 온도조건에서도 소금의 농도가 보다 낮으면 일부 수산물들은 삭으면서 특이한 맛과 냄새를 형성한다는것을 발견하게 되였다.

그래서 수산물을 순수 보관을 위해 절이는것과 함께 우정 삭을수 있게 소금의 량을 조절하여 절이기도 하였는데 이것이 후세에 젓갈로 명명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인민들의 식사구성에서 무시할수 없는 밑반찬으로 되게 되였다.

젓갈은 그자체가 직접 찬으로 쓰이기도 하고 김치를 담그는데는 물론 다른 음식을 만들 때 그것의 맛을 돋구기 위하여 적당한 량씩 리용되기도 한다.

♣ 독특한 고기구이 설야멱적

우리 인민의 겨울철특식에서 이채를 띠는것중의 하나는 고기구이이다. 조선사람들은 예로부터 고기구이가운데서도 소고기구이를 가장 고급한것으로 쳤다. 우리 나라에서 소를 집짐승으로 기르기 시작한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7천년전부터이다.

고조선과 부여에서는 말, 돼지, 양, 개 등과 함께 소를 많이 길러 식생활에 리용하였다고 한다. 세나라시기에 와서도 소는 중요한 고기원천으로 되여있었으며 이로부터 소고기음식이 상당한 정도로 발전하었다. 고려시기와 그 이후 조선봉건왕조시기에도 소고기는 중요한 음식감으로 리용되여왔다.

1508년 봉건정부에 올린 건의서중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평안도에서는 소를 잡아 손님을 접대하는것이 하나의 관습처럼 되여버렸다. 례하면 의주와 같은 곳에서는 손님이 왕래하면 소를 잡는것을 닭을 잡는것처럼 하였다.》 이것을 보면 우리 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소를 많이 길렀을뿐아니라 소고기음식을 발전시켜왔다는것을 알수 있다.

소를 주요한 부림집짐승으로 자지의 살붙이처럼 애지중지 키우며 관리해온 우리 인민들이 닭 잡듯이 소를 잡아 식용으로 했다는것이 잘 믿어지지는 않지만 어쨌든 우리 나라의 옛 료리책들에는 설렁탕, 족편, 약산적, 소고기구이를 비롯한 소고기음식들이 적지 않게 올라있으며 그 하나하나가 다 맛이 절묘한 고급음식으로 평가되여있다.

소고기구이는 벌써 고구려때에 《맥적》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져있었는데 《맥적》에서 《맥》은 고구려의 기본주민집단을, 《적》은 구이를 가리켰으므로 맥적은 고구려의 소고기구이를 의미하였다. 맥적은 그후 고려시기에 이르러 《설야멱적》이라는 이름으로 계승되였다.

설야멱적은 고려의 수도였던 개성지방의 명물이였으며 고려시기에 그 가공법이 이웃나라에까지 알려져 그 나라 궁중에서까지 소문이 자자하던 유명한 음식이였다. 이 음식은 처음에 《설야멱》이라고 불리웠는데 이에 대하여 《송남잡지》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있다.

《옛날 어느 임금이 눈오는 밤에 급한 정사를 론하기 위해 한 신하를 찾아가니 마침 그는 숯불화로와 물그릇을 놓고 고기를 굽고있었다. 그후 이 음식이 보급되면서 눈오는 밤에 찾아가 맛본 음식이라는 뜻에서 <설야멱(눈 설, 방 야, 찾을 멱)>이라고 하였다.》

후세에 와서 설야멱은 구이라는 의미에서 《적》자가 덧붙어 《설야멱적》으로 불리우게 되였다. 설야멱적은 명실공히 고구려의 맥적에서 기원된 조선고유의 전통음식으로서 오랜 력사적기간 우리 인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전해내려왔다.

소고기구이는 특히 설명절의 절식이였다. 꿩구이와 참새구이도 소고기구이에 못지않게 겨울철에 즐겨 만들어 먹은 맛있는 특별음식이였다.

♣ 순대

순대는 여러가지 순대껍질에 고기나 남새, 낟알, 양념감 등을 다져서 재워넣고 찌거나 삶아낸 음식이다. 우리 인민들이 순대를 만들어먹은 연원은 익혀먹는 음식의 력사와 더불어 오래였다고 볼수 있다.

그것은 불이 발견되고 익혀먹을수 있는 가마와 같은 조리도구들이 나오면서 고기를 가공하여 찌거나 삶아먹게 되였는데 이 과정에 짐승밸을 리용하여 순대를 만들어 먹었다고 볼수 있다.

순대에 대한 기록자료는 조선봉건왕조시기 문헌들에 쇠곱장, 단고기국, 소밸증, 소창자찜 등으로 씌여있으며 《시의방》에서 처음으로 도야지순대, 어교순대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여있다. 그후 순대는 기본음식감에 따라 돼지밸순대, 소밸순대, 개밸순대, 물고기순대로 불리워지면서 조리방법도 더 구체적으로 소개되였다.

《시의방》에서 돼지밸순대는 돼지밸을 뒤집어 정히 씻은 다음 그속에 록두나물, 미나리, 무우를 데쳐 배추김치와 같이 다져서 두부, 생강, 마늘, 깨소금, 기름, 고추가루, 후추가루 등 갖가지 양념을 돼지피와 한데 버무려 밸에 넣고 두끝을 동여매서 삶아냈다고 씌여있다.

또한 《부인필지》에 소개된 소밸순대는 밸안팎을 깨끗이 씻어 한자길이씩 베고 소고기, 돼지고기, 꿩고기 등에 여러가지 양념장을 섞어 만든 소를 넣고 실로 두끝을 매서 가마에 대나무를 넣고 찐것이다. 소밸순대의 일종으로서 《주방문》에는 소의 큰밸에 선지를 넣고 삶은 선지순대도 있다.

단고기밸순대는 《음식지미방》에 단고기국이라고 씌여있다. 단고기밸순대는 단고기의 밸을 뒤집어 말끔히 빼고 다시 뒤집고 소를 가득 넣어 시루에 담아 쪄낸다. 이때 단고기밸은 전날에 미리 손질해놓고 다음날 쓰는것이 좋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순대는 여러가지 양념감을 피와 함께 버무려 짐승의 밸안에 넣고 가마에서 찌거나 삶아내기도 하였다. 이렇게 만든 순대를 일명 조선순대라고도 하였다. 조선순대를 만드는데서 피는 매우 중시되는 음식감이였으므로 피가 들어가지 않는 순대는 조선순대로 보지 않았다.

우리 나라 순대에는 또한 물고기순대도 있다. 물고기순대는 물고기의 배안을 주머니로 삼아 만든 순대로서 명태순대, 낙지순대를 일러주었다. 명태순대는 명태의 밸을 딴 다음 그속에 소를 넣어서 만들거나 대가리를 가지고도 만들수 있다.

명태순대는 만든 후 인차 먹어도 좋지만 겨울에 싸리꼬챙이에 꿰여 밖에 내걸어 얽어두고 필요할 때 몇마리씩 뽑아다 찌거나 구워서 양념장에 찍어먹으면 그 맛이 정말 별맛이였다.

♣ 21세기의 인기상품으로 당선된 두부

우리 선조들이 창조하고 오늘도 우리 인민의 식생활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있는 두부는 현재 세계적인 관심을 모으는 인기있는 장수식료품으로 알려지고있다. 최근 어느한 국제여론조사기구가 《21세기 사람들에게 제일 인기를 끌 상품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제기하고 여론조사를 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응답자의 대다수가 두부에 대하여 지정하였다. 정보산업의 시대인 21세기에 주요상품들인 콤퓨터, 휴대용전화기같은 각종 전자제품과 미술작품, 오락기구들을 밀어내고 두부가 단연 첫 자리에 오른 리유는 무엇인가.

새 세기를 맞이하여 건강과 장수에 대한 사람들의 요구는 더 높고 강렬해지고있다. 콩은 사람들의 건강과 장수를 보장하는데서 가장 리상적인 알곡으로서 《밭의 고기》라고 불리우고있다. 이 세상 력대 장수자들치고 콩음식을 좋아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먹기도 좋고 소화도 잘되며 인체에 필요한 영양성분들을 거의 그대로 가지고 있는것으로 하여 사람들은 두부를 리상적인 《장수식품》으로 간주하고있다. 이런 리유로 하여 두부가 21세기 제일 수요가 높은 상품으로까지 된것이다.

21세기에 와서야 세상사람들이 비로소 인정하고 저마다 찾는 두부를 우리 선조들은 이미 1500년전 아니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만들어 먹었다. 두부를 언제부터 만들었는지 정확히 알수는 없으나 우리 나라가 콩의 발원지이고 콩으로 만든 식료가공품이 발전한것으로 보아 대단히 오랜 력사를 가지고있다고 볼수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두부가 기록에 처음으로 나타난것은 고려시기의 《목은집》에서였다. 고려의 유명한 시인 리규보는 두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시를 남기였다.

나물국 오래동안 먹어 맛을 못느껴
두부가 새로운 맛을 돋구어주네
이 없는 사람 먹기 좋고
늙은 몸보신에 더없이 좋네

이 시는 당시 두부가 널리 파급된 대중음식이였다는것을 알수 있게 한다. 고려시기를 이어 조선봉건왕조시기에 와서 두부 만드는 기술이 상당히 발전하여 이웃나라에까지 보급되였다.

우리 나라 두부에는 새끼로 싸서 들고 다녀도 형체가 이지러 지지 않고 단단한 막두부, 처녀의 고운 손 아니고는 문드러진다는 연두부, 굳어지기 전에 건져낸 순두부, 베에 싸서 굳힌 베두부, 명주로 굳힌 명주두부 등 여러가지 종류가 있었다.

두부는 단백질이 많은 음식으로서 고기나 물고기에 못지 않게 영양가가 높다. 특히 하들하들하게 엉긴 순두부를 더운 김에 양념을 잘하여 먹으면 맛이 있을뿐아니라 몸에 좋기때문에 예로부터 즐겨먹는 민족음식의 하나로 널리 알려져있다.

1611년의 《도문대작》과 1815년의 《규합총서》에 두부만드는 법과 두부의 명산지가 소개되여있다.

○ 여문 콩을 해빛에 말리고 돌절구에 봏아서 찬물에 담그고 다시한번 돌절구에서 보드랍게 봏는다.

○ 가마에 물을 끓이고 돌절구에서 봏은 콩을 여기에 넣는다.

○ 이것을 면천자루에 넣고 질그릇의 평평한 그릇우에 눌러 넣으면서 짜낸다.

○ 짜면서 거기에 끓는 물을 두고 눌러서 충분히 짠다.

○ 가루부분이 전부 짜지면 다시 한번 가마에 두고 불을 세게 때서 끓인다.

○ 밥주걱으로 잘 휘저으면서 질그릇에 퍼넣는다.

○ 한번 쉬였다가 서슬을 조금씩 넣어서 굳힌다.

○ 굳혀서 부드럽게 된것을 적당히 절단한다.

○ 서슬을 지나치게 많이 넣으면 쉰 냄새가 난다.

우리 인민들은 두부를 음식감로 하여 국, 전, 튀기, 구이, 탕, 지지개, 볶음, 완자 등 수많은 료리를 만들었다. 두부는 단백질의 질이 좋으며 단백질영양원천음식감들이 가지고있는 일반적특성인 콜레스테롤, 푸린화합물, 포화기름산 등이 적게 들어있고 100g당 열량이 낮으므로 고혈압, 동맥경화증, 비만증치료에 아주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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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출처 •조선료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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