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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4. 북한 일상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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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명절분위기를 돋구는 흰떡과 찰떡

겨울철에는 우리 인민들이 예로부터 년중 가장 큰 명절로 쇠여 온 설명절이 있다. 력사기록에 의하면 고구려사람들은 해마다 설을 맞으면 강가에 모여서 편을 갈라 돌팔매놀이와 눈끼얹기 등과 같은 명절놀이를 하면서 즐겼다고 한다.

이것은 상무적기풍이 강한 고구려사람들이 활기있는 여러가지 놀이를 하면서 설을 즐겁게 쇠였다는것을 말해준다. 설은 신라와 백제에서도 쇠였다.

신라에서는 정월초하루날이 되면 왕이 조원전에 나와 앉아 백관들의 새해축하인사를 받았으며 민간에서도 서로 축하하고 여러가지 놀이를 하면서 하루를 즐기였다. 한편 《삼국사기》에는 백제에서 261년에 설맞이행사를 하였으며 왕이 정월초하루날에 옷을 단정히 입고 정사를 처리하였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러한 자료들은 세나라시기에 벌써 설명절을 쇠는 풍습이 일반화되여있었다는것을 보여주는데 실상 설명절은 고대시기에 그 연원을 두고 수천년을 내려오는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명절이다.

현대에 와서 쇠고있는 양력설은 우리 나라에 양력력서가 도입되기 시작한 1896년(구체적으로 1896 년 1월 1일, 음력으로는 1895년 11월 17일)부터 생겨난 명절이다. 설명절때가 되면 우리 인민들은 명절 썩 전날부터 집안팎을 깨끗이 거두고 명절기분으로 흥성거렸다.

설날아침에는 집집마다 갖가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웃어른들에게 먼저 드리고 온 식구가 한자리에 둘러앉아 나누어먹었으며 세배군들에게도 대접하군 하였다. 여느 명절들과 마찬가지로 설날에도 명절음식으로서 첫번째로 꼽은것은 찰떡, 절편을 비롯한 갖가지 떡들이였다.

찰기가 나게 잘 친 찰떡은 팥, 참깨, 대추, 밤, 잣, 당콩 등으로 만든 고물을 묻혀 일정한 크기로 잘라 접시에 소복하게 담았다. 예로부터 우리 나라에서는 연백(연안, 배천)지방의 찰떡을 제일로 일러주었다.

이 지방의 찰떡은 콩보숭이를 묻히는것으로 해서 팥고물을 위주로 하는 다른 지방의 찰떡과 달랐다. 이 지방에서는 잔치상에 꼭 찰떡을 올려놓았으며 사돈집에 보낼 때에는 《안반(떡을 칠 때에 쓰는 두껍고 넓은 나무판)만 하다.》고 표현할 정도로 찰떡을 크게 잘라서 고리짝에 담기도 하였다.

찰떡은 어디까지나 《찰떡》이라는 고유한 우리 말로 부를 때만이 졸깃졸깃한 그 독특한 맛이 잘 안겨오는 우리 민족고유의 음식인것이다. 설날에는 설기도 즐겨 만들어 먹었다. 설날에 해먹은 설기가운데서 가장 이름난것은 개성의 소머리떡이였다.

소머리떡이란 떡을 식혀서 썬 모양이 마치 소대가리편육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말이다. 소머리떡은 썰었을 때 겉모양이 독특하고 희환할뿐아니라 맛 또한 특이하였다. 개성지방에서는 이 떡을 자그마한 시루에 쪄가지고 시루채로 사돈집에 설음식으로 보내는 풍습이 있었다.

우리 나라 여러 지방들에서는 설날에 절편, 가래떡, 골무떡, 꼬리떡과 같은 흰쌀떡들도 즐겨 해먹었다. 절편은 떡살을 박아서 끊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인데 지방에 따라 절떡, 달떡, 룡떡, 색떡으로도 불리웠다.

그리고 가래떡은 흰떡을 늘구어 길다랗게 만든것이고 골무떡은 골무만큼씩 짧게 떡을 끊은것이며 꼬리떡은 량귀를 꼬리처럼 뾰족하게 만든것이다. 절편과 꼬리떡은 색소를 넣어 빨갛고 파랗게 물들여서 큰상에 웃기떡으로도 썼으며 가래떡은 떡국이나 떡볶음감으로도 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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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출처 •조선료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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