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은 균형이 필요해
이른 아침의 숲.
부지런한 산새 소리가 가끔 지날 뿐 사방은 조용합니다.
성큼성큼, 키가 큰 할아버지는 뒷짐을 지고도 저만치 앞서 갑니다.
따닥따닥 또다닥. 마른 가지 부러지는 소리.
후~아!
하늘에서 쭉쭉 늘어트린 치맛자락은 숲이 되었습니다.
검은색 줄, 밤색 줄, 흰색 줄로 곱게 줄 내린 치마.
“할아버지, 할아버지 다리 아파요.”
어청어청 앞서 갈 때보다 더 빨리 뒤 돌아오는 할아버지.
“그래? 다리 아프냐? 그럼 쉬었다 가자.”
옹기종기 밑동만 남은 4개의 그루터기.
그루터기에 앉으려다 말고 주변을 살피는 아이의 이름은 자연이 입니다.
“할아버지, 여기 무언가 잔뜩 붙어 있어요.”
“이거 구름버섯이야. 생긴 모양이 구름 같지?”
“이 버섯, 먹는 건가요? 버섯은 먹는 거잖아요.”
“물론 먹을 수 있지. 독이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약용으로만 먹을수 있어.
지금처럼 산에 다니다 보면 곳곳에 버섯이 눈에 띄는데,
다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야. 독이 있는 버섯도 있거든.”
독!
자연이의 버섯에 대한 궁금증은 구름버섯처럼 겹겹이 부풀었습니다.
‘독을 품은 버섯은 어떻게 생겼을까? 버섯 씨는? 버섯은 왜 죽은 나무에서 자랄까?’
산에서 내려오는 내내 자연이의 질문은 계속됩니다.
“껄껄껄. 그래, 그래, 알았다.
그러면 네가 궁금한 것을 죄다 이야기해 줄 사람을 만나러 가자.”
버섯연구실.
연구실 안은 창과 문을 제외하고 모두 책으로 덮여 있습니다.
바닥 여기, 저기 책. 책으로 탑 쌓기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여어~. 귀한 손님이 오셨네.”
깜짝이야.
오른쪽에 서 있던 책장이 스르륵 열리더니 까만 벽에서 유교수님이 나타났습니다.
유교수님은 가리마를 단정하게 6대4로 넘긴 모습입니다.
“바쁘지? 욘석이 갑자기 버섯이 궁금하다 해서 이리로 왔어. 시간이 되나?”
“나야 늘 버섯들과 노는 시간을 빼면 한가하지. 허허허.
우리 자연이가 버섯 박사가 되려나? 뭐가 그렇게 궁금하시죠?”
유 교수님은 자연이의 손을 잡고 조금 전의 까만 벽 속으로 들어갑니다.
쿵쾅! 쿵쾅!
옷 속에 숨어 있던 심장이 튀어나오려는 것을 두 손으로 꾹 눌러봅니다.
까만 벽은 쑤욱 들어가 방을 만들었지요.
“좀 어둡지? 이 방은 버섯을 연구하기 위해 조명과 온도를 낮춘 곳이란다.”
연구실 한쪽에는 현미경과 실험도구, 유리병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뭉게구름 같기도 하고 카네이션 같기도 한 흰색의 무엇이 병위에 피어 있습니다.
“꽃송이버섯이란다. 아름답지?”
꽃송이버섯은 암을 고칠 수 있는 대단한 능력을 가졌고,
인공재배가 가능해 지면서 화장품 재료로도 사용된다는 것.
꽃송이버섯 화장품에는 주름이 쫘악 펴지고
상처가 난 곳의 피부도 감쪽같이 치료할 수 있는 성분이 들어 있다는 사실.
정말 신비한 버섯입니다.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자연이는 그동안 참았던 질문들을 쏟아내었습니다.
“교수님, 버섯은 꽃이 피나요? 한 번도 못 봤어요.
버섯씨도 그렇고요, 그리고 버섯은 왜 죽은 나무에서 자라지요?”
“허허허. 그래, 그래. 허허허.
무엇부터 설명을 할까? 자연아, 핵이 무언지 아니?
이 세상의 생물들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어요.
완전한 핵의 구조가 발달되지 못한 원핵생물과
핵의 구조가 발달된 진핵생물로 말이지.”
“네, 알아요. 생물은 동물계, 식물계, 균계, 원생생물계, 원핵생물계의
5계로 나눌 수 있고, 버섯은 균계에 속한다는 것도 알아요.”
“허허허. 그래, 네 할애비를 닮아 아주 똑똑하구나.
네 말대로 버섯은 균이라서 식물처럼 꽃을 피우지 못한단다.
하지만, 버섯 일생에서는 균사체가 잎, 줄기, 뿌리라면 버섯 자실체는 꽃의 역할을 하지.
그래서 씨앗인 포자로 번식하고 세상에 버섯 씨를 뿌리는 것이란다.
바람이나, 곤충 여러 방법을 이용해서 말이야.”
“아... 그렇구나. 그런데요, 버섯은 죽은 나무에서만 자라나요?”
“아니. 버섯마다 살고 싶은 환경이 조금씩 달라.
우리가 사는 집과 환경이 서로 다른 것처럼 말이야.
포자는 어디든 날아다닐 수 있어요. 나무, 창가, 공원의 의자에도.
자기가 자랄 수 있는 환경만 되면 어디서든 자랄 수 있지.
우리가 주로 보는 죽은 나무에서 자라는 버섯들은 그러니까,
죽은 나무를 분해하는 분해자의 역할을 하는 거지. 아주 깔끔한 청소부처럼.
낙엽이나 죽은 풀에서 자라는 애기낙엽버섯, 회색깔때기버섯 종류들이 그렇고.
나무와 공생하고 있는 버섯들이 있어.
또 흙 속에서 자라는 버섯들도 있고 말이다.
자, 이리와 볼래?”
유 교수님은 모형으로 만든 버섯을 이것저것 보여줍니다.
소나무와 송이, 말라 죽은 나무에서 자라는 벌집구멍장이버섯.
송이는 소나무와 공생관계로 소나무에게 영양분을 공급합니다.
“자연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친구들로 구성되어 있단다. 너도 알지?
자연을 기반으로 생산자인 식물들이 태어나고 그것을 먹는 소비자가 있고,
이 모든 것을 다시 자연으로 되돌려주는 분해자가 서로 균형을 이루며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자연이란다.”
유 교수님은 눈을 찡긋하곤 밖으로 나갑니다.
자연이는 조심스럽게 꽃송이버섯을 들어 불빛에 비추어봅니다.
나무 향기와 차가운 흙냄새.
에에~취이!
에취~
콧물이 주욱 흘러나왔다가 쏘옥!
다시 에이취!
“&%$&%$&@@&%”
“에? 무슨 소리지?”
“&%$&%$&@@&%%$#@&*@”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소리입니다.
“코 간지러워.” 훌치럭.
자연이는 들고 있던 꽃송이버섯을 제자리에 두고 까만 방을 나갑니다.
그 뒤를 먼지처럼 작은 하얀 포자가 따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