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언양을 모르는사람이 거의 없다. 언양이라는 이름을 전국으로 알린 힘은 온전히 불고기에 있다. 전국에 언양불고기라는 상호를 쓴 업체가 몇 군데나 될까.
2018년 11월 현재 포털사이트를 검색해보니 122곳이었다. 언양불고기는 전국에 고루 퍼져 있었다. ‘추억의 언양불고기’, ‘언양전통불고기’라는 상호가 눈에 띠었다. 언양불고기의 명성과 맛을 적극 홍보하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선생님은 머리가 어떻게 된 것 아닙니까?
1936년 여름 조선의 농촌 위생을 조사하기 위한 팀이 울산 달리를 찾았다. 그들은 조선인의 위생 상태를 보기 위해 영양 상태 전반을 조사한다. 그들이 가장 궁금해 한 것은 단백질 섭취량이었다. 단백질 섭취량을 확인하기 위한 결정적이라고 생각한 질문을 던진다.
“댁에서는 소고기를 1년에 몇 번 정도 드십니까?”
이 이야기를 들은 달리 사람의 반문이 압권이다.
“선생님은 머리가 어떻게 된 것 아닙니까?”
질문을 받은 달리 사람의 당황스러운 심정이 짐작이 가는 반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소고기는 중농 이하에서는 거의 제사용이며, 상식용이 아니다. 아이들이 명절, 제사를 기다리고 기다리는 것은 이 눈물만큼의 고기와 약간의 음식을 얻어먹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기 때문이다.13)
소고기는 오랫동안 곁을 주지 않았다. 소는 농사에 필요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가족 같은 존재 였다. 소는 일상적인 먹을거리가 되기는 어려웠다. 그렇다고 해서 소고기 맛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소고기는 늘 먹고 싶어 하는 음식 이었다.
소고기에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쯤 되는 음식이었다. 소고기에 대한 간절함을 알 수 있는 옛이야기가 있다. 옛날에 아들 내외와 함께 사는 한 어머니가 있었다. 고기가 먹고 싶었지만 형편이 좋지 않았다.
어머니는 당장 고기를 먹을 방법을 찾던 끝에 제사상에 올라갈 고기를 생전에 먹겠다는 다소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아들에게 고기를 사 달라고 한다. 결국 아들은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고기를 사 드린다.
얼마 후 어머니가 돌아 가시자 어머니의 유언대로 제사상에 고기를 올리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보니 저승에 간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이 제사상에 오른 고기를 먹으러 갈 때 손가락만 빨고 있었다고 한다.14) 먹고 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데, 미리 먹고 죽었더니 아쉬움 만 크다는 이야기이다.
안타까운 이야기라고 하기도, 우스운 이야기로만 보기도 뭔가 아쉽다. 고기를 하루라도 빨리 먹고 싶었던 마음이 꽤나 강했던 것이다. 이럴줄 알았으면 참고 또 참을걸. 그러나 소고기 앞에서 참는 일은 웬만한 인내력으로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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