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여행에는 맛있는 음식이 함께 한다. 그래서 여행을 다녀온 후일담에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가 들어간다. 1925년 12월『개벽』에 영남 지역을 여행한 임원근의 여행기가 실린다. 그의 여행기에는 미나리 이야기가 빠지지 않았다.
이곳은 원래 언양읍으로 지금은 울산군에 편입되어 있는 일개 면역소 소개지에 불과하다. 그런 까닭에 호수나 인구나 기타 모든 것이 양산읍에 비하여는 오히려 소촌락의 느낌이 있다.
그러나 언양 명산 〈미나리〉의 특미는 족히 도회인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조소할 만큼(중략) 그 부근 주민들은 언양을 말할 때는 반드시 〈미나리〉글 연상하고 〈미나리〉를 생각할 때는 동삼설 중에 오히려 그 찍찍한 신조미를 맛볼 수 있는 것을 크게 자랑한다. 텁텁한 동동주에 미나리 생회를 먹는 것도 그다지 취미 없고 맛없는 음식은 아니었다.9)
울산 사람들은 미나리를 ‘신조미’, 즉 새로운 조선의 맛이라고 자랑스러워한다. 소설가 오영수는「고향에 있을 무렵」에서 미나리 예찬을 한다.
언젠가 나의 내 고장 미나리 자랑이 역겨웠던지 익살맞은 친구가 까짓 미나리 따위야 어디 없이 흔해 빠졌는데 여북 자랑거리가 없으면 미나리 자랑일까 하고 퉁을 먹은 적이 있다.
그러나 미나리면 어디 없이 다 같다는 것은 아직 미나리를 잘 모르는 이를테면 창녀와 선녀를 혼동하는 소매에 불과하다. 내 고장은 수원이 가까워 물이 좋다.
게다가 땅이 사질이라 주야 무시로 흐르는 물에서 거의 자생적이다시피 자란 내 고장 미나리의 그 독특한 감미와 향취는 딴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른 봄 미나리가 두세 잎쯤 돋았을 때 뿌리째 뽑아 깨끗이 씻어서 초고추장에 날로 먹는 것이 진미다.
그러나 듬성듬성 썰어서 생선회 밑에 받치면 운치가 그만이고 정골에 섞으면 천하일품이다. 파와 함께 적을 부치면 적중 백미요 살짝 데쳐서 기름장에 무치면 그야말로 선미다.10)
외지 사람들은 미나리가 어디에나 있다고 생각하지만 울산 사람들은 언양미나리의 맛과 향은 쉽게 맛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 맛을 보려면 3~4월 경에 언양을 찾아야 한다. 꽃샘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초봄 언양미나리는 최고의 맛을 낸다. 언양미나리는 겨우내 텁텁했던 입맛을 살리기에 충분하다.
5월 넘으면 미나리 대가 세져서 먹기가 질겨져. 그래서 5월이면 장사하기도 힘들고 가을까지 버티긴 해도 장사는 별루야. 미나리는 한번 심으면 몇 번 올라오는데 조금씩 옮겨 심어 주기도 하자 그래야 잘 자라거든. 너무 키가 크면 질기고 세서 못 먹고, 적당한 키는 한 뼘 정도. 한 20cm 쯤 자랐을 때가 부드럽고 향도 좋고 맛있지.11)
언양미나리는 향긋하다는 표현이 모자랄 만큼 향이 뛰어나다. 언양미나리를 동삼설 이라고 한 것처럼 언양미나리는 겨울미나리 이다. 겨우내 얼고 녹기를 반복하면서 아삭거리는 식감까지 보태지니 천하일미가 된다. 여기에 동동주가 함께 하면 금상첨화이다.
오영수는 이른 봄, 뿌리째 뽑은 미나리를 생으로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이 제일 맛있다고 했다. 언양미나리를 생으로 먹는 것을 ‘미나리 생회’라고 한다. ‘회’는 고기나 생선 따위를 날로 잘게 썰어서 먹는 음식을 말한다.
고기나 생선이 아닌 미나리를 생회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미나리를 초장에 찍어먹기 때문일 것이다. 미나리 생회는 언양미나리 특유의 향을 유지하며 먹을 수 있는 최고의 요리법이다. 꾸밀 때 맛있는음식이 있다. 반면자연 그대로의 맛이 최고인 음식도 있다.
언양미나리는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았을 때 가장 맛있다. 수백 년 전 언양의 풍속을 기록한『헌산지』의 구절이 떠올랐다. “고을의 풍속은 검소하다. 의복의 색은 흰 것을 좋아하고 음식은 간소하다.”12) 꾸밈 없이 간소한 맛, 그것이 울산 음식의 특성이다.
음식 재료 본연의 맛에 자신감이 넘치기 때문이다. 울산사람들이 언양미나리로 다양한 요리를 개발하지 않은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하다. 언양미나리는 그 자체로도 훌륭한 먹을거리 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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