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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hapter 2. 태백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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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2mark 천년의 세월을 살아 온 주목의 고장

♣ 태백을 다녀와서...

어머니의 손맛 [강원도] 태백 이야기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 속에서도 인간의 ‘생로병사’는 늘 거기에 있었다. 사람의 힘으로 어찔 수 없는 것들이 우리에게 다가왔다가 역사라는 큰 틀의 궤도 속으로 녹아들며 사라져간다.

인류의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의식주’도 자연의 시간 속에서 많은 변화를 겪으며 오늘날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 되었다. 그 중 과거의 식문화는 생활이 풍요로워지면서 지금은 잊혀진 ‘가난했던 조상들의 음식’으로 기억 속에 남게 되었다.

그러한 현실을 굳이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아마도 ‘사라지는 모든 것에 대한 아쉬운 마음’에 근간이 닿아있기 때문이 아닐까. 시간이 흐를수록 빛을 바래 퇴색해 가는 그 어떤 실체들에 대한 ‘끌림’은 나만의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먹거리’가 풍요로운 요즘 음식을 해 먹는다는 것은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한 행위보다는 맛과 건강에 많은 방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인지 텔레비전의 모든 방송도 경쟁적으로 그 관점으로만 음식을 다루고 있다.

이것도 한때의 유행처럼 지나갈 현상으로 여겨지긴 하지만 음식은 인간 생존의 절대적 존재이므로 인류가 생존하는 한 영원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는 건 자명한 일이다. 연일 폭염과 열대야로 힘겨웠던 날들이 한차례 태풍이 지나고 난 후 조금 씩 가을의 빛깔을 띠기 시작했다.

지난여름의 기억들은 또 우리의 추억 속 으로 자리를 옮겨 앉겠지. 하늘이 저만큼 멀어지고 어느새 선뜻선뜻한 바람에 가을 냄새가 나기 시작 하던 8월 하순, 감자로 막걸리와 소주를 담그는 분이 계시다는 소식을 접하고 열 일 제쳐 두고 길을 나섰다.

우리의 문명사회는 탁월한 능력으로 역사에 영향을 준 사람들에 의해서 변화를 가져오기도 했지만, 평범한 일생을 살아온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 들을, 음식이든 기구이든 편리한 방법으로 취하며 살다가 자손들을 통해 세상으로 넓게 퍼져 전해 온 것이리라.

시작이 어디 인지, 내일은 또 어떤 변화가 찾아올지 알지 못한다 해도 그건 별 의미가 없다. 필요하다면 사람들의 삶을 통해 어떤 모습으로든 이어져 갈 게 아닌가. 태백산 입구에서 청국장을 직접 만들어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윤종필(여)’씨는 고향이 경남 창령이란다.

어머니의 손맛 [강원도] 윤종필(여)
▲ 윤종필(여)

작은 인연으로 알게 된 시아버지의 눈에 들어 얼결에 태백으로 시집을 오게 되었다고 했다. 부모가 지어 준 남자의 이름 탓인지 가녀린 외모와는 달리 그녀는 매우 활달하고 적극적이며 거침이 없었고 사업적인 수완도 탁월해 보였다.

1920년도에 시아버지께선 양조장을 하시기도 했고,늘 부지런하시며 추진력과 상황 판단이 빠를 뿐 만 아니라 시대를 앞서가신 분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녀의 당찬 모습이 시아버지의 눈에 들어온 게 아닐까 싶다.

(시아버님은 연로하신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방문했을 때에도 따가운 햇살 아래에 서 열심히 일을 하고 계셨다) 그녀 또한 시아버님과 다를 바 없이 매사 진취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인 것 같았다.

아들딸 낳고 자식들을 키우며 살던 그녀는 어느 날 진도의 홍주처럼 강원도를 대표할 만한 술을 만들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대학에서 가정학과를 졸업한 경험을 살려 더 체계적인 공부를 해야겠다는 결심에 이른다.

마침 태백시 농업기술센터에서 강좌를 진행 했었는데 그곳에서 ‘강원도 명주 맥 잇기’라는 수업을 들으며 모든 일상을 접고 열심히 공부를 했단다. (일본의 전통주를 담그는 것 까지 배우러 일본 까지 다녀왔다고) ‘미쳐야 미친다는(不狂不及)’ 말과 다름이 아닌 시간을 보낸 것이다.

어머니의 손맛 [강원도] 감자술 담그기 과정

어린 시절부터 시아버지의 양조장 사업을 어깨 넘어 배운 남편의 도움이 컸다고도 했다. 부부는 그렇게 열심히 노력한 보람으로 ‘감자 막걸리’와 ‘감자소주’를 만들었고, 주변의 좋은 반응을 얻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그렇게 술만 잘 담그면 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문제는 술을 대량으로 만들어 강원도 전통주로 이름을 얻어서 시판을 하려하니 판로와 기존 주류업체들과의 경쟁 등에 관한 여러 가지 상황이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눈물을 머금고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세상은 그렇게 많은 것 들이 구조적인 시스템으로 엮여 있어 개인이 자신의 능력을 펼치기엔 역부족인 현실을 부정 할 수는 없었다.

“재미있는 건 우리 부부는 술을 마시지 못해요. 우리에게 술은 그냥 맛있는 음식이에요. 지금까지 취하도록 마셔 본 적도 없어서 술 취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의 변화도 이해를 못하지요. 우리가 술을 음식으로 생각한다는 말을 하면 사람들도 머리를 끄덕이긴 하지만 크게 받아들이는 것 같지는 않더군요.

그렇지만 아무것도 첨가하지 않고 감자로만 만 든 술을 맛보게 하면 모두들 감탄들을 하면서 왜 이 맛있는 술을 마실 줄 모르냐며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곤 하지요, 글쎄, 계속해서 마셔보면 술도 는다니까 시도 해 볼까 생각도 해 봤지만 아직은 내키지를 않네요. 남편이나 나나...”

어머니의 손맛 [강원도] 감자막걸리

그리고는 담근 지 5년 된 감자소주와 1주일 된 막걸리를 내왔다. 일단 맛을 보라면서. 조심스럽게 받아 든 술잔을 앞에 놓자 술 좋아하는 나는 기대감에 설렘을 감출 수가 없었다. 먼저 5년 된 감자소주는 알콜 도수가40% 라는데 목에 걸림이 없이 너무 부드러운 게 놀라웠다.

값비싼 양주를 마실 때도 목에 어느 만큼의 부담감이 있기 마련인데 이 감자소주는 그런 것이 전혀 없이 부드럽게 잘 넘어갔다. 또, 감자 막걸리는 시중에 판매되는 막걸리에서 느낄 수 있는 약간의 탄산수 맛이나 단맛 없이 천연의 감자의 맛만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엔 그 맛이 생경스러웠는데 뒤 끝에 번지는 알싸한 감자의 독특한 맛이 느껴지면서 아, 이게 막걸리의 원래 맛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우리의 입맛은 무엇인가 첨가된 맛에 길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 그녀는 술에 대한 꿈을 접지 못했단다.

그래서 내년부터 조그맣게 ‘하우스막걸리’라는 이름을 걸고 술을 시판 할 계획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이번엔 부디 성공을 해서 사라져가는 우리의 강원도 정통주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기를 바라고, 덕분에 나도 얼치기(?) 농사꾼으로 살다가 밭둑에 앉아 한 사발 들이키게 될 날이 오기를 소망해 본다.

마가목 열매가 빨갛게 익어가기 시작하고 화단엔 백일홍과 벌개미취 피어 있는 마당을 한동안 서성거리다가 사방을 높은 산이 둘러싸고 있어 고개를 바짝 뒤로 젖혀야만 보이는 태백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엔 누룩이 항아리에서 익어가는 모습처럼 구름이 뭉글뭉글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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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출처 •강원도농업기술원 •제주특별자치도농업기술원 서귀포농업기술센터 •서귀포시향토음식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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